방민준의 골프탐험(14)- 골프의 철칙은 없다.  스윙교본은 무상할 뿐.

국내 최고의 골프칼럼니스트인 방민준 전 한국일보 논설실장의 맛깔스럽고 동양적 선(禪)철학이 담긴 칼럼을 독자들에게 배달합니다. 칼럼에 개재된  수묵화나 수채화는 필자가 직접 그린 것들이어서 칼럼의 운치를 더해줍니다. 주1회 선보이는 <방민준의 골프탐험>을 통해 골프의 진수와 바람직한 마음가짐, 선의 경지를 터득하기  바랍니다. [편집자주]

   
▲ 방민준 골프칼럼니스트
흔히들 인생의 덧없음을 얘기할 때 무상(無常)이란 말을 쓰지만 불교에서의 무상의 의미는 진리 그 자체다. 붓다도 “오직 변하지 않는 진리는 모든 것은 변한다는 것”이라고 설파했다. 윤회와 함께 불교의 핵심 테마다.
 

골프 역시 모든 면에서 무상함을 절감케 한다. 골프의 세계를 아는 정도가 깊어갈수록, 핸디캡이 낮아질수록, 나이가 들어갈수록 골프의 무상성을 진리로 받아들이지 않을 수 없다.  바로 이 골프의 무상성이 골퍼들에게 부단한 자기혁신을 요구한다.

기술 측면에서 누구에게나 시공을 초월해 적용되는 철칙은 없다. 수많은 골퍼들이 보다 멀리 그리고 정확하게 볼을 날리기 위해 많은 교습서를 읽으며 스윙을 갈고 닦는다. 젊어서는 물론 몸이 굳어 제대로 말을 듣지 않는 나이에도 보다 나은 스코어에 대한 희망을 버리지 않는다. 서점의 서가에 꽂힌 수많은 골프 교습서를 뒤적이며 나의 고질병이 무엇인지, 어디에 문제가 있는지 찾아내려는 노력을 게을리 하지 않는다. 이런 수요에 맞춰 골프전문가들은 헤아릴 수 없이 많은 교습서를 썼고 지금도 써내고 있다. 골프가 존재하는 한 새로운 교습서는 계속 나올 것임에 틀림없다.

가끔 신통치 않은 스윙에도 불구하고 싱글이나 이븐 파를 치는 아마추어 골퍼를 목격하게 된다. 이들에게는 비슷한 공통점이 있다. 무엇보다도 아름다운 스윙을 만들기 위해 엄청난 노력을 기울인 사람들이다. 그리고 소기의 목적을 이루지 못하고 자기화한 나름대로의 스윙에 정착한 사람들이다. 대신 자기만의 스윙에 정통하기 위해 보통 골퍼들이 상상할 수 없는 연습을 한 사람들이다. 이들은 아름다운 스윙을 가진 골퍼를 만나면 결코 흉내 내려 하지 않는다. 다만 칭찬을 할뿐이다. 이들을 일러 ‘한 경지에 이른 골퍼’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아일랜드 골퍼들은 교습서를 멀리 하는 전통이 있었다고 한다. 19세기 중엽 헨리 B. 패니 라는 한 에든버러의 인쇄소 주인이 쓴 ‘The Golfer's Manual’이란 책에서 아일랜드 골퍼들이 교습서를 기피하는 까닭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다.
“샷이란 클럽을 올렸다 내리는 것일 뿐, 너무 세세히 신경을 쓰면 전체의 리듬이 파괴되어 진보가 저해된다”는 것이 샷에 대한 저자의 정의다. 군더더기와 기교가 완전히 제거된 샷의 원형을 보는 듯하다. 크리스티 오코너라는 골퍼는 “골프는 볼의 중심을 맞히는 게임이다. 모습과 모양은 묻지 말라”고까지 말했다.

1862년 로버트 첸버스 라는 골퍼가 ‘두서없는 골프이야기(A Few Rambling Remarks on Golf)’라는 책을 냈다. 그는 이 책 서문에서 “레슨서는 바이블과 다르며 누구에 대해서도 복음을 전해줄 수는 없다. 왜냐하면 성격 체형 연령 운동신경 사고력 등이 서로 다른 사람에게 동일한 행위를 요구하는 것은 횡포이기 때문이다. 가르치는 사람이야말로 겸허하지 않으면 안 된다. 따라서 여기에 소개하는 타법은 나 자신이 이렇게 하니까 잘 되더라고 하는 보고서이며 하나의 참고로 제공할 뿐이다. 그렇게 알고 읽어주기 바란다”라고 조심스럽게 썼다.

1907년 브리티시 오픈에 처녀 출전해 당시 골프의 세 거인이라는 해리 바든, 존 헨리 테일러, 제임스 브레이드를 꺾고 깜짝 우승을 한 바스크 출신의 알루누 메시는 “골프의 스윙은 자유이다. 골프는 과학적인 용구를 가지고 비과학적으로 하는 게임이다. 개성을 소중히 여겨야 한다”고 일갈했다.

어느 날 다윗 왕이 보석세공 장인에게 “나를 위해 반지를 하나 만들어라”고 명령했다. 그러면서 왕은 “반지에는 내가 큰 승리를 거둬 기쁨을 억제하지 못할 때, 그것을 조절할 수 있는 문구를 새기도록 해라. 또한 그 글귀는 내가 큰 실망에 빠졌을 때 용기를 함께 줄 수 있는 것이어야 하느니라”고 조건을 달았다.
 

장인은 고민에 고민을 거듭했으나 왕의 반지에 새길 적당한 글귀가 떠오르지 않자 지혜롭기로 소문난 솔로몬 왕자에게 도움을 청했다. “솔로몬 왕자님, 왕의 큰 기쁨을 절제케 하는 동시에 크게 낙담했을 때 용기를 줄 수 있는 글귀가 어떤 것이겠습니까?”
 

그러자 솔로몬 왕자가 잠시 생각한 뒤 말했다. “반지에 이렇게 새겨 넣으세요. ‘그것 또한 곧 지나가리라.(Soon it shall also come to pass.)’” 눈앞의 회로애락이 영원히 지속되리라는 미망에서 벗어나 교만과 좌절을 경계하며 담담하게 살아가라는 지혜의 명귀다. 붓다가 설파한 무상함의 다른 표현이다.

솔로몬의 지혜는 골프의 진수에 접근할 수 있는 키워드다. 철칙이라고 믿었던 스윙 문법이 변하고 개개인의 신체조건 또한 시간의 흐름과 함께 변한다. 모든 샷이 처음이자 마지막인 골프를 제대로 즐기기 위해선 골프의 무상성을 깨닫고 그 무상성에 순응할 줄 알아야 한다. 끊임없이 변하는 무상성에 순응한다는 말은 곧 끊임없이 자기혁신을 해야 한다는 뜻이다.
 

30년 구력의 70대 골퍼가 라운드에서 돌아와 골프가방을 풀 때마다 아내에게 “이제 겨우 골프가 뭔가 알 것 같아!”라고 털어놓는 것은 골프는 구력과 관계없이 자기성찰과 자기혁신을 요하기 때문이다. /방민준 골프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