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펜=문상진 기자]오늘은 '원자력의 날'이다. 정확히 말해 '원자력 안전 및 진흥의 날'이다. 이 날은 국내 원자력 분야 종사자의 사기를 북돋기 위해 제정한 법정기념일이다. 2009년 12월 27일 아랍에미리트(UAE) 원전 수출을 계기로 만들어 진 날이다.
10년이 지난 오늘 원자력의 날은 그야말로 '원전 부도의 날'이라는 참담함을 면치 못하고 있다. 60년간 쌓아왔던 세계적인 원전기술은 휴지조각이 되고 있다. 반도체 신화에 버금가는 금자탑을 쌓아올리며 세계를 놀라게 한 '맨손 신화'가 바로 원자력 산업이었다.
세계 6번째로 원전을 수출하며 '원전 강국' 반열에 올랐던 대한민국. 아랍에미리트(UAE) 바라카 원전 수주로 당당히 글로벌 톱 수준을 인정받으며 미래성장산업의 기대를 한 몸에 받던 부러움의 대상이었다. 40여년간 국가 에너지의 중추 역할을 했던 원자력은 대한민국 에너지 안보의 자랑이자 보루였다.
2018년 한 해 불어 닥친 탈원전 광풍은 원전산업의 뿌리를 뒤흔들었다. 한 순간 도태위기에 처해졌다. 영화 '국가부도의 날'과 같은 일이 원전 산업에 일어나고 있다. 실제로 영화 한 편을 보고 탈핵·탈원전을 외친 이들이었으니 영화 같은 일이 현실이 됐다.
지난해 5월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불과 1년 반 만에 월성 1호기 조기 폐쇄와 신규 원전 4기 사업 백지화 등을 일사천리로 진행했다. 대통령 공약사항이니 묻지도 따지지도 말라는 식이다. "탈원전이 세계적인 추세'라는 강변한다. 독일, 대만, 이탈리아, 스위스 등 우리보다 앞서 탈원전을 추진했던 국가들은 들먹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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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8년 한 해 불어 닥친 탈원전 광풍은 원전산업의 뿌리를 뒤흔들었다. 한 순간 도태위기에 처해졌다. 영화 '국가부도의 날'과 같은 일이 원전 산업에 일어나고 있다. 실제로 영화 한 편을 보고 탈핵·탈원전을 외친 이들이었으니 영화 같은 일이 현실이 됐다. 신고리 3·4호기 전경. /사진=한국수력원자력 새울본부 |
하지만 이들 국가들의 탈원전 정책은 현 정부의 막무가내식과는 궤를 달리한다. 모든 국가들이 법률을 기반으로 에너지 정책을 추진했다는 점이다. 투표 등으로 국민의사를 묻고 수십 년에 걸쳐 점진적으로 탈원전 정책을 실행했다는 점이다.
이탈리아는 체르노빌 원전 사고 직후인 1987년 국민투표로 탈원전을 결정했다. 스위스는 33년에 걸친 공론화 논의와 5번의 국민투표를 거쳐 탈원전을 결정했다. 독일은 공론화를 위한 '윤리위원회' 설치 등 25년간의 논의 끝에 탈원전 정책을 선택했다.
대만은 2011년 헌법재판소가 국회의 승인 없는 정부의 일방적인 원전 건설 중단 결정은 위법하다는 판결을 내렸다. 대만 정부는 지난해 초 '2025년까지 가동중인 모든 원전을 중단시킨다'는 조항을 전기사업법에 신설했지만, 지난달 국민투표에서 조항 폐지가 결정됐다.
반면 우리는 한국수력원자력 이사회가 월성 1호기 조기 폐쇄를 결정하고 신규 원전 4기 사업을 백지화했다. 이는 원자력진흥법·전기사업법 위반 가능성이 높다. 유럽국가들은 통합 전력망을 통해 항시 전기를 수입하고 수출할 수 있어 탈원전이 상대적으로 쉬운 국가들이다. 반면 지정학적 요인으로 전기의 수출입이 어려운 우리는 상황이 다르다.
국회 야당을 중심으로 정부의 '탈원전 정책' 추진 여부를 국민투표에 부쳐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원전 단체들이 반대하고 나서면서 격돌하고 있다. 에너지 정책은 국가 안위와 직결돼 있다. 좀 더 숙의 과정을 거친 후 국민의 공감대가 형성된다면 투표에 붙일만한 사안이다.
문재인 정부가 강조하는 탈원전의 명분 중 하나는 안전성이다. 그런 정부가 내세우는 태양광과 풍력 등 신재생에너지 사업이 곳곳에서 안전에 구멍이 뚫리고 있다. 태양광 발전설비 에너지저장장치(ESS)에서 화재가 잇따르고 있다. 안전을 강조하는 정부가 안전성 확보에는 실패하고 있는 셈이다. 문제는 수십건의 화재에도 아직 원인조차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장마철 산사태를 부르더니 이제는 걸핏하면 화재다. 풍력 발전은 시골 마을의 농심을 둘로 갈라놓았다. 보조금을 뿌리며 산허리를 깎아 패널을 설치하는 태양광은 자연환경 훼손의 주범으로 낙인찍히고 있다. 농촌 곳곳에 태양광 반대 현수막이 내걸리고 있다.
한국의 원전은 40여년간 치명적인 사고가 단 한 건도 없었다. 안전에 대한 의지가 그만큼 강했다는 반증이다. 한국의 원전 기술과 안전 기술은 이미 세계에서 그 경쟁력을 인정받고 있다. 탈원전 정책은 안전에 대한 관리를 정부 스스로 포기하는 것이나 다름없는 행위다. 포기를 넘어 한국 원전의 불안감을 세계에 선전하는 자해행위다.
'원자력의 날'이 한 정권의 졸속 탈원전 정책으로 '원자력 부도의 날'로 조종을 울리고 있다. 이미 원전산업 생태계 붕괴는 심각한 상황에 이르렀다. 인력 유출은 물론 원자력 및 양자공학과 전공하려는 후진까지 씨가 마르고 있다. 탈원전 정책에 직격탄을 맞은 관련 기업들은 생존위기에 직면했다.
한국수력원자력과 한국남동·남부·중부·동서·서부발전 등 6개 발전공기업은 탈원전 청구서에 '깡통공기업'으로 전락하고 있다. 수조에서 수천억 원의 이익을 내던 멀쩡하던 기업이 탈원전 1년도 채 안 돼 빚더미에 올라선 모양새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처음이다.
탈원전을 추진하면서 원전 수출이라는 이중성에 세계는 등을 돌리고 있다. 원전 산업자체가 고사 위기다. 원전 산업뿐 아니라 신재생에너지사업마저 외국 기업에 초토화되고 있다. 태양광은 저질 중국산에 잠식당하고 풍력은 덴마크, 독일 외국 기업의 공세에 밀려 국내 업체들은 속절없이 무너지고 있다.
정부의 무리한 탈원전이 에너지 산업 전체를 붕괴로 내몰고 있다. 지금이라도 에너지 안보에 대한 심각성을 직시해야 한다. 전기료 폭탄은 없다는 달콤한 말은 말라. 이대로라면 대한민국이 블랙아웃을 당할 수도 있다. '원자력의 날'이 대한민국 에너지산업의 조종(弔鐘)을 울리는 날이 되지 않기를.
[미디어펜=문상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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