퍼주기 포퓰리즘 만개, 나라위해 희생 군인 경찰 보상 바닥...박대통령 경제민주화, 묻지마 반일외교도 위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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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우석 미디어펜 객원논설위원 |
설마설마 했더니 상황이 이렇게 최악으로 치달을 줄은 몰랐다. 그래도 상식과 이성이 살아 움직이고, 사회적 여과 장치가 작동하겠거니 희망했다. 지금 상황은 정반대인데, 박근혜 대통령과 여야 지도부는 10일 청와대 회동에서 ‘세월호 특별법’ 을 16일 국회 본회의에서 통과시키기로 합의했다. 이토록 무책임한 퍼주기식 보상과 지원을 담은 특별법에 여야 지도부가 뜻을 모았다는 게 위험천만한 이 나라의 상황을 여실히 전해준다.
지난 달 초 국회 세월호 국정조사 특위가 “일회성 지원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피해가족들이 생애 전주기에 걸쳐 지속적 지원을 받도록 하겠다”고 거창하게 밝혔을 때만해도 어떻게 하겠다는 것인지 그림이 안 그려졌다. 그랬더니 여야가 마련한 법안을 보니 저들은 제정신이 아니다. 진상 규명은 걸쳐놓은 명분일 뿐이고, 피해자에 대한 국비 지원, 희생자 추모공원과 추모비 건립 등 각종 지원과 보상이 꼬리를 문다. 여기까진 여야 간에 이견이 없다.
세월호 희생자 전원을 의사자(義死者)로 지정하겠다는 발상
논란의 핵심은 희생자 전원을 의사자(義死者)로 지정하고, 피해자에 대한 대학정원 외 특례입학을 규정한 대목이다. 그걸 포함해 생애 주기별 평생지원까지도 주도면밀하게 약속하고 있다. 세월호 사고로 사망한 이들을 국가유공자급 그 이상으로 정부가 예우하겠다는 기막힌 선언이다. 퍼주기 식 포퓰리즘의 꽃이 이 땅에 활짝 피어나려 하는 순간이다. 과연 사망자 전원을 의사자로 하느냐는 여야간 약간의 입장 차이가 있는데, 실은 오십보백보다.
여당은 특별법 발효와 함께 구성되는 심의위원회에서 의사자 지정을 결정토록 하자는 법안을 내놨지만, 사망자 전원을 조건없이 의사자로 지정하는 야당 안에 결국 손을 들어줄 것으로 보인다. 막장 정치권이 벌이는 선심경쟁에는 질적 차이가 거의 없다는 게 핵심이다. 지난 6·4지방선거에서 남경필 경기도지사 새누리당 후보가 의사자 지정안을 꺼내들었지만, 그건 표 구걸에 정신없었던 철부지 정치인의 공약일 뿐이었다.
그랬더니 훨씬 심한 내용의 법안이 통과된다는 건 큰 충격이다. 이변이 없는 한 통과가 확실시되는 다음 주 16일은 ‘떼법 완전승리의 날’ 혹은 ‘포퓰리즘 승리의 날’로 지정해야 하지 않을까? 참고로 그 다음 날이 제헌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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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근혜대통령과 새누리당, 새정치민주연합 원내대표단이 청와대회동에서 세월호 희생자 전원을 의사자로 지정키로 합의했다. 내주 국회에서 관련법을 통과시키기로 했다. 의사자는 직무외의 일로 타인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하고 지켜주려다 사망한 사람에 대해 지정하는 제도다. 세월호 희생자는 대부분 수학여행갔다가 사망한 학생들이 대부분이다. 이들을 의사자로 지정해서 매달 보상금을 주는 것은 과도한 포퓰리즘이다. 국가를 위해 희생한 군인과 경찰 등은 진정한 유공자들은 아직도 낮은 보상금으로 고통받고 있다. 형평에도 맞지 않는다. 이법이 통과된다면 떼법의 극치가 될 것이다. 국민혈세를 함부로 쓰면 안된다. 청와대 정치권은 반성해야 한다. 박대통령이 이완구 새누리당 원내대표, 박영선 새민련 원내대표, 우윤근 새민련 정책위의장, 주호영 새누리 정책위의장과 차례로 악수하고 있다.(왼쪽부터) |
지금 “해도 해도 너무한다”는 목소리가 나오는 이유
지금 그 와중에 세월호 유가족 측이 추진하는 세월호 특별법 제정 1000만 명 서명운동이 벌어지고 있지만, “해도 해도 너무한다”는 반대 목소리가 좌우 이념 구분을 떠나서 조금씩 터져 나오는 것도 당연하다. 저들은 사망자일뿐이지 의사자는 아니기 때문이다. 의사자(義死者)란 무얼 뜻하는가? “직무 외의 행위로서 타인의 생명, 신체 또는 재산의 급박한 위해를 구제하다가 사망한 사람”을 말한다. 그게 ‘의사상자 예우에 관한 법률’에 따른 정의인데, 세월호 사망자들은 수학여행을 떠났다가 참변을 당한 게 전부다.
꽃 같은 어린 학생들을 보호 못해준 건 이 사회와 어른들의 책임이고 그래서 더 없이 가슴이 아프지만, 그렇다고 어울리지 않는 의사자 예우를 해주는 것은 망자(亡子)에 대한 예의가 아니다. 그걸 보는 또래 학생들은 무얼 배우겠는가? 형평성 또한 문제가 된다. 대구지하철 참사나 성수대교 붕괴 사고 때의 사망자는 대체 뭐가 되는가? 제대로 된 기존 의사자들은 또 얼마나 민망할까? 이렇게 무책임한 선심 남발을 지켜보며 학습 아닌 학습을 한 시민들이 앞으로 발생할 다양한 위험상황에서 과연 자기 몸을 던지려 할까?
특별법 통과 즉시로 이땅에 정의는 길바닥에 나뒹군다
지금 상황은 유가족의 떼법에 우리가 굴복했고, 비겁하기 짝이 없는 한국사회 전체가 눈을 감았기 때문에 만들어진 거대한 부조리다. 또 있다. 한국에서는 국가를, 사회를 지키려다가 희생된 군인과 경찰들에 대한 보상과 지원이 바닥이라는 걸 우리가 모두 안다. 세월호 특별법이 통과되는 즉시로 이 땅에 정의는 다시 한 번 길바닥에 나뒹굴고, 앞으로 도덕적 해이가 창궐할 것이다.
실은 세월호 사고를 만나 연신 허둥지둥했고, 최악의 선동 언론에 얼이 빠졌던 박근혜정부는 거의 패닉상태였다. 그때부터 정부는 이미 정상적 대응을 포기하다시피 했는데, 그건 박 대통령도 마찬가지였다. 그가 했던 포퓰리즘 대응의 최대 하이라이트가 사고가 난 4월 16일을 매년 국가안전의 날로 선포해 기념하겠다는 대국민담화였다. 그럼 세월호 사고보다 더 많은 인명이 희생된 삼풍백화점 사고가 난 날은 국가 대(大)안전의 날로 소급 지정해야 옳지 않을까?
포퓰리즘 정서에 이의를 제기하면 불이익 받는다?
걱정은 따로 있다. 천문학적 보상금에 드는 비용을, 그리고 상대적 불이익을 피 같은 세금으로 충당하고 온 몸으로 감당해야 할 국민은 대체 무슨 죄일까? 이제 묻는다. 이럴 바에야 차라리 포퓰리즘을 대한민국의 국시(國是)로 하는 건 어떨까? 몰상식하고 무책임한 제안이라고? 그렇지만은 않다. 지금 이 나라의 모든 사회적 흐름은 우리가 동의하건 하지 않건 포퓰리즘이 아니던가?
일테면 기초연금 7월 25일 드디어 첫 지급을 시작한다. 본디 박근혜대통령 대선공약에서 출발한 이 연금은 그동안 고생해온 산업화 세대에 대한 보상이라는 게 박 대통령의 엉거주춤한 설명이었다. 이 천문학적 금액을 보다 효율적이고 생산적 방식으로 써야 한다는 상식적인 이의제기를 누구 하나 제대로 못해 결국 여기까지 밀리고 말았다. 똬리를 튼 이 나라의 견고한 포퓰리즘 정서에 이의를 제기했다가는 당장 눈 밖에 나고 불이익을 받는다는 걸 서로가 알기 때문이다. 정치인도 그렇고, 지식인 역시 마찬가지였다.
이 나라의 경제철학 으뜸도 포퓰리즘 경제
실은 이 나라의 경제철학 으뜸도 경제민주화, 즉 포퓰리즘의 경제라고 해야 옳다. 최경환 경제부총리의 2기 경제팀은 경기 회복에 모든 수단을 다하겠다고 공언했다. 하지만 박대통령이 취임식에서 만천하에 공언했던 건 대기업을 옥죄고, 영문 모르는 서민들에겐 그럴싸하게 들리는 경제민주화라는 구호였다. 대체 이 정부의 경제정책 방향과 철학이 무엇인지를 위정자들도, 기업인들도 서로가 모르는 판이다. 상황이 그러하니 상반기 기업들의 신규 시설 투자는 2년 전에 비해 3분의 1 토막이 났다. 주식시장 역시 그렇다.
주식시장은 현재보다 미래 가치를 더 중시하는데, 유독 우리나라만 1년 넘게 제자리를 맴돌고 있는 것도 결국 표류하는 경제정책, 포퓰리즘 경제철학의 탓이다. 실은 포퓰리즘이라는 망국병이 가장 거대하게 자리 잡은 건 외교 국방 영역이라는 게 필자의 생각이다. 그게 이 정부 특유의 반일(反日) 외곬의 외교다. 자유민주주의 정치철학과 경제관을 공유하는 이웃 일본을 가상적으로 돌린 채 사사건건 으르렁대고 있는데, 이게 지금은 도를 넘었다.
포퓰리즘이라는 망국병이 거대하게 자리 잡은 외교 영역
이런 ‘묻지마 반일 드라이브’ 배경에는 반일 민족주의라고 하는 대중정서에 편승하려는 대통령의 심리가 자리잡고 있다는 건 더 이상 비밀이 아니다. 결과는 실로 위험천만하다. 시진핑 중국 국가 주석 방한에서 보듯 한반도 전체가 친(親)중국으로 치닫고 있다. 아니 우리는 오래 전부터 중국이라는 자장권(磁場圈)에 깊숙이 빨려들어가고 있다. 이런 포퓰리즘 외교에 제동을 거는 이가, 그리고 사회세력이 드물거나 현저하게 세가 약하다. 누구도 제지 못할 정도로 포퓰리즘의 꽃이 정치-사회-경제-외교의 전방위로 활짝 핀 대한민국의 앞날이 걱정이다.
대체 이 나라는 어디로 가는가? 그걸 되묻지 않을 수 없는 게 어제 오늘 한국사회이다. 글쎄다. 필자는 정말 눈치 없이 이 땅의 이데올로기이자, 암묵적 사회적 합의인 포퓰리즘을 정면으로 건드렸다. 혹시 불이익이 돌아오면 어떻게 하지 하는 생각은 없다. 외려 더 많은 뜻있는 분들의 조용한 공감과 호응을 기다린다. 포퓰리즘으로 나라를 말아먹은 베네수엘라, 아르헨티나 등 라틴아메리카 비극이 이 땅에서 반복되는 걸 책임있는 지식인들은 원치 않으니까 말이다. /조우석 미디어펜 객원 논설위원, 문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