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마사상, 화랑도 풍류 통합 초자연사상 영화드라마 한류킬러콘텐츠로 활용해야

   
▲ 심상민 성신여대교수
“경주가 슬럼화되고 있어요. 어서 모여 해법을 찾읍시다.”
10여년 전 영화감독 이창동 문화부 장관 때 광주를 위한 아시아 문화수도와 경주를 살릴 역사문화도시라는 두 개 수레바퀴가 끼익 하고 돌기 시작했다. 광주는 민주항쟁 30주기 2010년에 맞춰 전남도청 자리에 들어설 랜드마크 아시아 문화전당을 그렸다.

경주는 달리 너무 어려웠다. 새 건물 하나 조직 한 개로 뚝딱 해결할 사안 자체가 아니었다. 이미 있을 건 다 있는 야외 박물관이 아닌가. 보존만 해도 힘든 데 무얼 덧입히고 헤집는다는 발상은 그야말로 난센스일 테고. 고민 끝에 문화부 대책반 일행은 곧장 경주 쪽샘으로 향했다. 쪽샘 지구는 경주 대릉원 옆 시내 복판 올드타운이다. 가보니 주민들 생활 여건이 말이 아니었다.

경주 도심이 뉴욕 할렘 마냥 망가졌다는 풍문이 결코 과장이 아니었다. 화장실 증개축도 못하고 주택 수리도 규제와 돈에 묶여 옴짝달싹 못하니 그야말로 속빈 강정이었다. 90년도 채 못 된 전주 한옥마을 같은 발전상과 비교해보면 그저 1,500년 역사가 초라하고 무색할 지경이었다. 웬만하겠거니 했던 경주였건만 실상은 잊혀져가는 고도로 퇴락하고 말았다. 사람으로 치면 뒷방 늙은이요 집이라면 명절에 한 번 올까 말까한 낡은 고향집으로 스러져갔다. 
 

   
▲ 천년고도 신라와 경주가 뉴욕할렘처럼 슬럼화하고 있다. 경주와 신라의 정체성과 진취성 풍류 통합 초자연사상 등 5개콘텐츠를 바탕으로 미디어와 드라마 게임 등으로 만들어 한류와 오리엔탈킬러콘텐츠로 재창조해야 한다. 박대통령이 석굴암을 둘러보고 있다.

경주는 이처럼 거의 빈사상태까지 떼밀렸다. 때문에 새천년 밀레니엄 이후 10여 년 동안 몸부림을 쳐왔다. 공적 자금도 아낌없이 투입되었다. 한낱 술과 떡 잔치 따위 동네 축제 판이 이스탄불-경주 세계문화엑스포와 같은 글로벌 교류로 거듭 나기도 했다. <1박2일>류 현장 소개 예능도 부쩍 늘어나 경주를 한국인 성지순례 모꼬지로 열심히 띄웠다. 지난 7월 12일에는 KBS 1이 정통 사극 <정도전> 빈자리에 <역사저널 그날>을 들여와 경주와 신라문화를 잘 다루었다. ‘유네스코 세계유산 2편 - 신라인, 부처의 나라를 세우다 - 불국사와 석굴암’을 타이틀로 아예 불국사 앞마당에서 여름밤 정겨운 대화를 나눈 프로그램이 아주 맛깔스러웠다.
 

이러 저러하게 나름대로 경주 구하기 신라 알리기가 되살아나고 있다. 다시 봐도 아무리 뜯어 봐도 들여다볼수록 경주는 내 마음의 고향임을 자각케 해주니 고맙다. 하지만 현실은 너무 야박하다. 경주를 밀어내는 인식이 안타깝기만 하다. 사람들은 수학여행 이후 경주 재방문을 꺼려한다. 기껏 들른다 해도 보문 단지 벚꽃 구경이고 골프 투어 정도다. 경주 가느니 제주 가고 더 모아서 괌, 사이판 해외여행 찾아보는 쪽이 더 낫다고 퍼뜨린다. 여름엔 너무 덥고 겨울도 몹시 춥다고 미워도 하면서.

이러니 지금 2014년 여름 경주는 여전히 애정결핍이다. 숭유억불까지 본다면 600여 년 된 묵은 소외요 별거라고나 할까. 말 할 것 없이 경주와 별거하고 빈사상태와 슬럼화 조장하고 애정결핍 외톨이로 경주를 끌어 내린 자는 우리 한국인들이다. 어느새 모르게 부지불식간에 경주를 지워 왔으니까. 미디어 영상쯤으로만 쳐다볼 뿐 살아 움직이는 내 생활, 내 마음 안으로 경주를 받아들이지는 않는다.

덩달아 한국인의 마음도 갈수록 무거워 지고 있다. 경주 없음은 뿌리 뽑힘으로 비화되고 신라 모름은 할리우드 SF 마니아들만 양산하게 되었다. 역사 외경이 아닌 외면은 전통지식 없는 얼치기 콘텐츠, 디자인, 기획 같은 짝퉁 창조경제만 바라볼 따름이다.
 

이에 뿌리 깊은 나무 경주, 내 마음의 고향 경주를 온전히 살려낼 신라 문화콘텐츠 5선을 뽑아 본다. 이 5개 키워드들은 제대로 된 경주학(學)으로 가기 위한 걸음이요 한 동안 잊었던 국학을 되찾는 여정이 될 터이다. 한류도 디지털, 글로벌 경영도 모두 나 스스로와 우리 자신을 새롭게 만들어나가는 경주학과 국학을 통해 아주 쓸모 있게 견고해질 수 있다. 너무 오랫동안 변변한 마케팅 광고 홍보 한 편 없고 버젓한 브랜드, 슬로건, 캐릭터 하나 못 내놨던 대한민국 1호점 경주를 위한 신라 문화콘텐츠 기획안이다. 
 

첫째 정체성이다. 황금을 숭상했던 북방 기마민족의 유목경제와 삼한 시대 농경경제가 신라에서 융합된다. 천마사상은 유라시아 알타이 문화 핵심이고 고구려, 발해와 함께 신라가 품었던 웅대한 포부이며 강인한 기질이었다. 

   
▲ 박대통령이 지난해 12월 불국사 석굴암 본존불을 찾아 불교계 인사들과 담소하고 있다.

둘째 진취성이다. 후발 주자 꼴찌였던 신라는 화랑도와 여성 결사체 원화를 통해 순응이 아닌 정복과 도전을 감행했다. 삼국 통일과 당나라 축출도 화랑도 정신과 여왕까지 배출한 평등주의가 길러낸 진취성 승리였다. 국제교류도 개척해냈다. 실크로드 동쪽 종점으로서 경주는 중국 시안과 또 다른 최종 완결성을 지녔다. 시안 국제 시장보다 더 많은 30명 가까운 거래 단속관이 경주 실크로드 장터에 있었다고 전한다.
 

셋째는 풍류다. 화랑이 국토를 달리며 탐닉했던 풍류는 오늘날 다도나 커피문화에까지 스며있다. 전사들이 피비린내를 쫓으면서도 대관령에 올라 바다를 보며 끽다했다는 기록은 천년이 흘러 명품 강릉커피축제 기반이 되어 주었다. 격 높은 자아숭상과 문화애호가 아닐 수 없다. 김대성, 아사달, 에밀레종 등 세계 최고 최강 만듦새로 명품을 창작했다. 2013년 10월 개막한 뉴욕 메트로폴리탄 박물관 ‘황금의 나라, 신라’ 특별전은 20만 명을 운집시켰다. 국보 83호 금동미륵반가사유상이 서방을 홀렸고 금관, 금허리띠, 철불상 등 신라 명작들은 “그리스, 로마 미술품에 뒤질 것 없고 그 이상”이라는 반응을 이끌어 냈다.
 

넷째는 통합이다. 가장 불리했던 신라가 전쟁을 이기고 내, 외부 역량을 모은 리더십과 수시로 연대하고 창조적으로 통치해온 발군의 능력을 배워야 옳다. 분단에다 지역주의와 파벌 학벌에 시달리는 한국의 국가개조, 국가혁신을 성사시킬 부활 모형이 신라에 있다. 삼국통일을 이룩하고 갈등을 해소하고 경제발전을 실천하여 태평성대를 이루었다. 진정 신라는 점령국, 타 지역을 포용할 줄 아는 열린 사회였다. <로마인 이야기>가 그토록 칭송했던 오픈 시스템이 동방에도 있었다. 그러니 쳔년왕국 신라는 조선이나 고려, 다른 세계사 왕국보다 우월한 지속가능성을 실현할 수 있었다.
 

다섯째는 초자연 사상이다. 신라 불교문화나 토우, 자연 친화 사상 등은 특정 종교나 지역과 시기에 국한된 신드롬이 아니다. 현생 부모와 전생 부모를 기리고 초자연적 신선계를 우러러 왔던 높은 이상과 꿈은 훗날 선비정신, 동학사상으로도 이어진다. 자연을 재창조하고 넘어서려는 노력과 불멸의 신선사상, 초탈하는 불교사상과 같은 초월적 정신세계는 숱한 위기와 시련을 극복하게 해준 한민족 수호신으로 오롯이 살아 있다.
 

이들 신라문화콘텐츠 5선은 곧이어 우리 영화, 드라마, 게임은 물론 현실 실물경제로 꽃피울 자원들이다. 한중 정상 만남에서 양국 합작 드라마 <임진왜란>을 제작키로 했다는데 그보다 먼저 혜초 스님, 해운 최치원, 신라 왕자 김교각, 해상왕 장보고와 중국 그리고 실크로드를 다루는 오리엔털 킬러 콘텐츠를 제안해본다.

중국은 모르겠으나 우리 한국 사람에게 지금 바삐 필요한 것은 바로 진취와 창조의 표상으로서 신라문화 그리고 마음 속 심지로 또렷이 세워야 할 경주학(學)이라 보기 때문이다. 그래야만 경주 못지않게 슬럼화 된 한국인 마음속도 깨끗하고 통쾌하게 씻어낼 수 있다. 우리네 발달한 미디어와 문화콘텐츠가 기여할 썩 좋은 캠페인이자 사회 운동이 신라의 달밤을 수놓는 즐거운 상상에 미리 웃어 본다. /심상민 성신여대 교수, 미디어펜 객원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