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류승룡, 영화 '극한직업'서 마약반 고반장 역 맡아
"시나리오의 힘, 훼손하지 말고 배가시키자는 사명감 있었죠"
"가진 것에 비해 많은 사랑 받아…배우는 내게 극한직업 NO"
[미디어펜=이동건 기자] 미칠 듯이 선 굵은 외모로 누구보다 섬세한 취미를 즐긴다. 가벼운 화두를 던지면 깊이를 헤아릴 수 없는 눈빛을 금세 바꾸고 애교스럽게 눙친다. 배우 류승룡(50)의 이야기다. 말 붙이기 어려운 지천명의 사내인 줄 알았는데 이야기를 나눠보니 웬걸, 소년 감성이 그득하다.

류승룡은 휴식 시간이면 직접 준비한 차를 꺼내 동료 배우들과 다도를 즐기고, 촬영이 없는 날에는 트래킹과 목공예를 즐기는 풍류객이다. 오랜 벗들을 위한 선물로 테이블이나 플레이트를 만들기도 한다. 가진 것에 비해 너무 많은 사랑을 받았다는 그는 더불어 살아가는 것의 의미를 삶의 지표로 삼고 있었다. 팀워크가 중요했던 '극한직업' 역시 그 연장선이었다.

영화 '염력'(감독 연상호), '7년의 밤'(감독 추창민)으로 지난해를 바쁘게 보냈던 류승룡은 이병헌 감독의 신작 '극한직업'으로 새해 극장가에 돌아왔다.

'극한직업'은 해체 위기의 마약반 5인방이 범죄조직 소탕을 위해 위장 창업한 '마약치킨'이 맛집으로 입소문을 타게 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그린 작품. 류승룡은 마약반의 만년반장 고반장으로 분해 마약반 5인방의 만담을 진두지휘하고, 제대로 망가지며 어느 때보다도 강력한 웃음 폭탄을 터뜨린다.

영화 개봉에 앞서 서울 종로구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만난 류승룡은 "이런 코미디 연기는 처음이었다"고 밝혔다. 여러 명의 배우가 호흡을 주고받는 협동 코미디는 그에게도 신선한 경험이었다고 한다.


   
▲ 영화 '극한직업'의 배우 류승룡이 미디어펜과 만났다. /사진=CJ엔터테인먼트


▲ 언론시사회서 '극한직업'을 처음 본 소감은.

"배우들끼리 서로 응원하며 영화를 봤어요. 미처 같이 안 나오는 장면에서는 '나 없을 때 저런 촬영 했구나', '저런 고생 했구나' 하면서. 시나리오에서 상상하면서 읽었던 것들이 고스란히 구현돼서 재밌는 장면도 있고, 미처 상상하지 못했던 장면들도 있더라고요. 음악 선곡이나 교차 편집이 너무 재밌었고요."


▲ '스물', '바람 바람 바람' 등 이병헌 감독의 전작에서 유머 코드에 대한 관객들의 호불호가 명확했다.

"이병헌 감독의 전작들은 19금 코미디였잖아요. 불호가 있을 수 있고, 그게 이해가 되는 지점도 있고… 그런데 이번에는 '이거 세지 않나' 싶은 건 시나리오 단계에서 다 걷어냈어요. 그래서 많은 관객들이 보고 편하게 즐길 수 있는 코미디이지 않을까. 그게 차별점 같아요."


▲ 이병헌 감독표 코미디를 소화하는 데 어려움은 없었나.

"5년 동안 '난타'라는 공연을 했는데, 매번 공연이 다르거든요. 타이밍과 호흡 때문에요. 그땐 힘들었지만, 그 경험이 굉장히 도움이 많이 됐어요. 그리고 장진 감독이라는 훌륭한 은인이 있죠. 장진 감독과 '서툰 사람들', '박수칠 때 떠나라' 같은 연극을 하면서 말맛을 배웠어요. 경험이 전무한 채 이병헌 감독을 만났다면 '어버버' 했을 것 같아요."


▲ 영화 속 '지금까지 이런 맛은 없었다'는 캐치프레이즈가 화제다. 대사를 소화한 노하우가 있다면.

"정말 신기한 건 영화 속 대사는 시나리오를 처음 읽었을 때의 운율대로 한 거예요. 다른 시도를 해본 적도 없어요. 대본 리딩 때 그렇게 대사를 뱉었는데, 감독님이 너무 재밌어하는 거예요. 리허설 때도 그렇게 하고 슛 때도 마땅한 게 없어서 그대로 했는데… 운명처럼 다가온 대사에요.(웃음)"


   
▲ 영화 '극한직업'의 배우 류승룡이 미디어펜과 만났다. /사진=CJ엔터테인먼트



▲ '극한직업' 대사의 말맛을 살리기 위해 가장 주안점을 둔 부분은?

"시나리오를 읽을 때 엄청 웃으면서 봤거든요. 근데 이 주옥같은 텍스트와 상황을 못 살리면 제 책임이잖아요. 그래서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던 것 같아요. 아무리 현란한 드리블을 하더라도 경기 흐름을 봐야 하니까요. 그래서 왜 이 상황이 재밌는지 고스란히 전달됐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텍스트의 훌륭함을 훼손하지 말고 배가시키자는 사명감이 있었어요. 그래서 배우들끼리 상의를 많이 했어요. 오버하지 말자. 대신 자신의 몫은 충실히 해내자. '드리블하다 볼 뺏기지 말자' 이런 거 있잖아요."


▲ 다섯 배우의 호흡은 더할 나위 없이 좋았다.

"그래도 다행이고 감사한 건 다섯 명 중 누구 하나가 너무 도드라지거나 빠지지 않았다는 것. 팀워크로 딱 묶여서 다행이고. 극 전체로 봤을 땐 다섯 명의 배우뿐만이 아니라 신하균 씨, 오정세 씨, 양영민 씨 등 다른 배우분들이 나오는 장면이 다 웃기더라고요. 김종수 선배님도, 김의성 선배님도, 신신애 선배님도 그렇고… 모든 분들이 너무 재밌었어요."


▲ 현장에서 동료 배우들과 다도를 즐겼다고. 차에 대한 사랑이 남다른 것 같다.

"'일상사 다반사'라는 말이 있듯 옛날에는 일상처럼 밥과 차를 마셨는데, 어느 순간 그게 뚝 끊겼어요. 어려운 퍼포먼스가 들어가고 예가 들어가면서 점점 거리감이 생긴 거예요. 마치 차는 특별한 의식을 갖고 마셔야 하는 것처럼. 근데 그런 게 아니거든요. 현장에서 차를 함께 마신 건 저도 이번이 처음이었어요. 아이들이 좋아하길래 차 꾸러미를 들고 다녔죠."


   
▲ 영화 '극한직업'의 배우 류승룡이 미디어펜과 만났다. /사진=CJ엔터테인먼트


▲ 류승룡에게 배우라는 직업은 극한직업인가.

"제가 가진 것에 비해 너무 많은 것을 받았어요. 그래서 전 배우를 극한직업이라고 생각해본 적은 없어요. 연기할 때가 가장 행복하고, 이 정도는 누구나 감수하고 겪는 일이라고 생각하고… 다만 이성으로 감정을 쇄공하고, 정답은 없는데 그 중 최상의 것을 뽑아내야 하는 연기 고민은 늘 힘들어요."


▲ 작품 활동 중 가장 중시하는 것은.

"연기는 자신으로부터 시작하는 것 같아요. '7번 방의 선물'이나 '시크릿' 같은 작품의 배역은 '류승룡이 저 시대, 저 환경에서 살았다면 어땠을까'로 시작하는 경우가 많거든요. 다만 이 작품이 전달하고자 하는 것에서 어떻게 중용을 지키느냐, 어떻게 적합하게 녹아드는지가 가장 관건이고 힘든 것 같아요."


▲ 한 해도 쉬지 않고 다작을 이어오고 있다. 작품을 선택하는 원칙은?

"시나리오를 읽었을 때 마음을 움직이는 작품을 선택해요. 그런데 항상 제가 생각하는 것 이상의 콘텐츠들이 나오더라고요. 제가 만주어를 할 지도, 변발을 할 지도, 7살 지능의 어른을 연기할 지도 몰랐거든요. 조폭, 마약, 형사물 등도 어떻게 보면 제가 기피하는 소재인데 다른 지점으로 묶어내셨고요. 뛰어난 작가, 기획자, 관객분들이 제 부족한 고정관념을 깨주시는 것 같아요. 그래서 어떤 재간둥이들과 어떤 이야기꾼들이 어떤 이야기와 인물, 인생을 갖고 올 지 늘 설레요."

[미디어펜=이동건 기자] ▶다른기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