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펜=이원우 기자]지난 2009년 2월 4일부터 시행에 들어간 자본시장과 금융투자업에 관한 법률(이하 자본시장법)이 10년의 역사 속에서도 여전히 ‘한국판 골드만삭스’라는 동일한 목표 속에서 공전하고 있다. 자본시장법이 증권업계의 ‘스케일’을 키워놓는 역할을 해냈지만 규제에 대한 근본적인 마인드를 바꿔놓지 않으면 상황은 계속 그대로일 것이라는 지적이다.

4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한국의 골드만삭스’를 만들겠다며 탄생한 자본시장과 금융투자업에 관한 법률(이하 자본시장법)이 시행된 지 오늘로 꼭 10년을 맞았다. 자본시장법은 2007년 국회를 통과했고 2009년 2월 4일부터 시행에 들어갔다.

   
▲ 미래에셋대우의 자기자본은 약 8조원 수준으로 국내 시장에서는 압도적이지만 글로벌 기준으로는 여전히 갈 길이 멀다. /사진=미래에셋대우


자본시장법은 쉽게 말해 증권사·자산운용사·종금사·선물회사·신탁회사 등 자본시장을 이루는 여러 금융회사들을 ‘하나로 묶는 법’으로 기획됐다. 업종을 엄격하게 구분하던 칸막이를 허물어 우리도 골드만삭스 같은 초대형 금융기관을 배출해야 한다는 아이디어다.

법안의 기둥은 크게 4개다. 금융 투자 상품의 개념을 추상적으로 정의해 다양한 금융 상품의 출현을 유도하는 ‘포괄주의 규율 체제로의 전환’, 증권회사와 신탁회사 등 기관별 규율 체제에서 매매업·중개업·투자자문업 등 ‘기능별 규제’로의 전환, 금융 투자업 상호간에 겸영을 허용하는 등 업무 범위 확대, 투자권유 규제제도를 도입해 설명 의무를 신설하는 등 투자자 보호 제도 선진화 등이다.

이와 같은 아이디어에 따라 나온 것이 바로 초대형IB(투자은행) 구상이다. 2011년 정부는 자기자본이 큰 대형 증권사를 ‘종합금융투자사업자’로 지정하기로 결정했다. 2년 뒤인 2013년 자기자본 3조원 이상을 갖춘 5개 증권사(삼성증권·현대증권·대우증권·우리투자증권·한국투자증권)가 ‘종합금융투자사업자’로 지정됐다. 

이들에는 기업 신용공여와 프라임 브로커리지 서비스(PBS, 헤지펀드 운용에 필요한 대출, 증권 대여, 자문, 리서치 등 관련 종합 서비스)를 신사업으로 허용했다. 이윽고 2015년에는 기업금융을 강화하기 위해 기업 신용공여 한도를 확대하는 ‘자본시장법 개정안’이 국회에 발의됐다. 

이후 2016년 8월 금융위원회는 자기자본 규모 4조원 이상을 기준으로 ‘초대형 IB 육성을 위한 종합금융투자사업자 육성 방안’을 내놨다. 미래에셋대우·한국투자증권·NH투자증권·삼성증권·KB증권 5개 증권사가 초대형 IB로 지정된 것도 이 무렵이다. 이미 국내 증권사들의 덩치는 과거와는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커졌다.

무려 5개의 증권사가 자기자본 규모 4조원을 넘어선 상태다. 미래에셋대우의 경우 2018년 8월 기준 자기자본이 8조원을 넘어서기도 했다. 국내 증권사 수는 2008년 61개에서 현재 56개로 감소했지만 자본총계는 2009년 36조원에서 56조원까지 불었다.

그럼에도 여전히 갈 길은 멀다. 우리가 목표로 삼고 있는 골드만삭스의 경우 자기자본은 100조원을 넘어선다. 비단 금전적인 측면만 문제인 것도 아니다. 자본시장업계의 목표가 ‘한국판 골드만삭스’로 공전하고 있는 점에 대해 많은 전문가들은 ‘규제’를 이유로 꼽는다.

2009년 당시 자본시장법의 가장 큰 변화로는 ‘포괄주의(네거티브) 규율 체제로의 전환’을 꼽을 수 있다. 모든 사항을 자유화하고 제한하거나 금지하는 사항만 나열하는 게 포괄주의의 핵심이다. 그러나 이후 글로벌 금융 위기를 겪으며 자본시장법은 사실상 ‘무늬만 포괄주의 규제’에 그치며 많은 한계를 노정했다. 

금융투자협회가 지난달 21일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현재 국내 자본시장 내 금융투자업자에게 적용되는 전체 규제 건수는 총 1407건이나 된다. 이 중 자본시장법과 관련한 규제는 무려 1005개나 된다. 최근 권용원 금융투자협회장이 “규제 간 충돌 문제 등이 있을 수 있기 때문에 시간이 걸리더라도 종합적인 검토가 필요하다”고 말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최근 업계는 시행 10년을 맞은 자본시장법을 다시 한 번 손보는 문제에 집중하고 있다. 핵심은 ‘무늬만 포괄주의’에서 벗어나 실질적인 ‘포괄주의 규제’로 가야 한다는 문제의식이다. 소매를 걷어붙인 사람은 역시 권용원 금투협회장이다.

권 회장은 올해가 시작되자마자 국내 증권업계 최고경영자(CEO)들과 미국 실리콘밸리와 시애틀 등을 돌아보며 골드만삭스와 블랙록, 구글X·아마존 등 혁신 기업을 방문했다. 같은 달 15일에는 더불어민주당이 개최한 ‘금융 투자업계 현장 간담회’에 참석해 자본시장 활성화를 위한 입법을 촉구했다.

권 회장은 “세계에서 가장 큰 혁신 클러스터인 실리콘밸리만 하더라도 활발한 투자가 뒷받침되는 곳에 기업가 정신이 꽃피울 수 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며 “이를 위해서는 단순히 규제 완화가 아니라 미래를 위해 이해관계인들이 새로운 규제를 완성해 나가는 국가적인 노력이 필요하다”고 힘줘 말했다. 

최근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은 증권거래세 등 투자 세제 개편과 자본시장 혁신 과제 등의 입법화를 위한 태스크포스(TF)로 ‘자본시장특위’를 출범시켜 기대감을 자극하고 있다. 자본시장특위 위원장을 맡고 있는 최운열 의원은 “법의 체계를 현시대에 맞게 바꾸지 않으면 금융시장의 희망은 없다”며 “열거주의에서 포괄주의로 가는 것은 물론 규제 중심에서 원칙주의 중심으로 법의 체계를 전면적으로 바꾸지 않으면 금융 산업이 살아나지 못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미디어펜=이원우 기자] ▶다른기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