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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병희 서원대 광고홍보학과 교수 |
문화예술 마케팅 활동을 전개할 때 작품의 예술성은 성공의 기본 조건이다. 마케팅 활동을 체계적으로 전개하더라도 작품의 예술성이 뒷받침되지 않는다면 예술 소비자의 공감을 얻기 어렵다. 관객이나 관람객들은 문화예술기관이나 단체를 보기 위해서가 아니라 작품을 보려고 전시장이나 공연장에 가기 때문이다.
종합 상품의 형태로 소비되는 문화예술작품은 보통의 상품과는 성격이 본질적으로 다르다. 문화예술작품은 관객이나 관람객이 구경하는 과정에서 작품이 소비되고 작품성이 완결된다. 무형성, 비분리성, 이질성, 소멸성이라는 문화예술작품의 4가지 특성을 공연과 전시의 맥락에서 살펴보자.
무형성(intangibility)은 관객이나 관람객이 문화예술작품을 실제로 경험하기 전에는 실체를 보거나 만질 수 없고 상상하기도 어렵다는 개념이다. 작품을 공연하거나 전시하기 전까지는 물리적인 형태를 갖추기 어렵고 무대에서 실연(實演)하는 과정에서 작품이 완성된다. 따라서 관객들이 공연장을 찾아 작품을 감상하고 현장에서 경험하기 전까지는 작품의 완성된 형태를 상상하기 어렵다.
문화예술작품의 무형성은 예술 소비자들에게 부담감을 느끼게 하는 요인으로 작용한다. 공연이나 전시에 참여하기 전까지는 그 작품의 품질을 알 수 없기 때문이다. 문화예술 마케팅 기획자들은 예술 소비자들이 사전에 느끼는 위험 부담을 줄여주는 방안을 제시해야 티켓 판매로 연결할 수 있다. 공연이나 전시에 참여한 소비자들이 구경한 다음에 작품성에 불만을 나타낼 때는 만족할만한 다른 방안을 제시하면서 서비스의 복구를 시도해야 한다.
비분리성(inseparability)은 작품의 생산과 소비가 따로따로 분리되지 않고 작품을 감상하는 현장에서 동시에 발생한다는 개념이다. 실제 공연과 관객의 관람이 동시에 이루어진다는 사실을 생각해보면 비분리성의 개념을 쉽게 이해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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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켈란젤로의 '아담의 창조' (1508-1512), /자료=김병희 교수 제공 |
관객이나 관람객이 문화예술작품이 존재하는 현장에 가서 직접 감상하거나 관람하면서 감동을 느껴야 문화예술을 제대로 소비하는 것이다. 작품 역시 공연이나 전시 현장에서 소비자를 만나야 예술가의 창의적인 생산 과정이 비로소 완결된다. 이때 관객이나 관람객들은 박수갈채나 환호를 통해 공연이나 전시의 전 과정에 참여하게 된다.
예를 들어, 독일의 극작가 괴테는 미켈란젤로의 <아담의 창조>라는 그림을 보고 나서, 그 감동을 다음과 같이 표현했다. "그 순간 나는 미켈란젤로에 반했으며 자연조차도 그 거장만큼의 취향을 갖지 못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무래도 나는 그런 거장의 위대한 눈으로 자연을 볼 수 없기 때문이다…시스티나 예배당을 보지 않고서는 한 인간이 무엇을 할 수 있는가를 이해할 수 없다."(괴테의 <이탈리아 기행>에서).
결국 괴테는 작품(그림)이 존재하는 현장(시스티나 성당)에 직접 가서 그림을 감상하고, 원작의 아우라(aura)를 느끼면서 문화예술작품을 소비하고 미켈란젤로의 창의적인 생산 과정을 완결하는데 참여했다고 할 수 있다.
이질성(heterogeneity)은 전시 공간은 물론 참여 인력의 개인적 능력이나 인지도에 따라 문화예술작품의 내용이나 질이 달라진다는 개념이다. 똑 같은 작품을 전시하더라도 관람객들은 전시 공간의 구성에 따라 작품을 다른 각도에서 바라볼 수 있다. 똑 같은 작품을 공연하더라도 관객들은 참여하는 배우의 인지도나 능력에 따라 작품의 수준이나 품질을 다르게 느낄 수 있다.
배우나 연주자의 기분이나 숙련도에 따라 작품의 질이 다르고, 공연장의 규모나 시설에 따라서도 관객들은 작품의 완성도를 다르게 느끼게 마련이다. 이처럼 전시나 공연의 품질이 고르지 않기 때문에 작품의 표준화와 규격화가 어렵다는 뜻으로 이질성을 이해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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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엄기준, 조승우, 규현의 '베르테르' 포스터 (2015). /자료=김병희 교수 제공 |
창작 뮤지컬 <베르테르>의 사례를 보자. 괴테의 소설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을 원작으로 만든 이 뮤지컬은 지난 2000년에 초연한 이후 25만 명의 관객을 동원하며,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창작 뮤지컬로 자리매김했다. 창작 15주년 기념 공연에서는 엄기준, 조승우, 규현이라는 세 명의 베르테르가 각각 주연을 맡았다(2015. 11. 10 ~ 2016. 1. 10).
뮤지컬을 소개한 홈페이지에서는 "완벽에 가까운 싱크로율, 엄기준!", "베르테르 전설의 귀환, 조승우!", "새로운 베르테르의 탄생, 규현!"이라는 카피로 배우에 따라 작품의 느낌이 다를 수 있음을 알렸다.
실제로도 주연배우들은 각각 다른 세 명의 베르테르를 연기했다. 오래 전 공연에서 베르테르 역을 맡았던 배우 조승우는 순수하고 뜨거운 열정을 지닌 베르테르의 애절한 고뇌를 연기했다. 직전 공연에서 베르테르를 연기했던 엄기준은 베르테르의 깊고도 풍부한 사랑을 강조했다.
처음으로 베르테르 역을 맡게 된 규현은 막 움튼 풋풋한 사랑의 감정으로 가득 찬 베르테르의 설렘과 황홀감을 관객들에게 보여주었다. 이처럼 공연예술작품은 배우의 개성에 따라 느낌이 달라지기 때문에 품질이 고르지 않고 표준화와 규격화가 어려울 수밖에 없다. 이것이 문화예술작품의 이질성이라는 특성이 다.
소멸성(perishability)이란 공연의 내용이나 생생한 현장감을 보관하거나 저장할 수 없어, 공연이 끝나면 실제로 공연했던 내용이 사라져버린다는 개념이다. 그림의 경우에는 벽에 걸어 전시하기 때문에 경우가 다르지만, 어떤 전시나 공연에서는 생생한 현장의 내용을 보관하거나 저장할 수 없어 공연이 끝나면 사라져버리는 경우가 많다. 관객들이 어떤 공연을 수차례 관람했다 하더라도 실제의 공연 내용은 1회로 소멸될 수밖에 없다.
서비스 마케팅에서도 어떤 서비스를 소비자가 계속 가지고 있을 수 없고, 서비스를 재고 형태로 보존할 수 없다는 점을 강조한다. 서비스를 즉시 사용하지 않으면 사라져 버리고, 서비스를 다른 곳으로 수송할 수 없다고 하면서 서비스의 소멸성에 대해 설명한다.
문화예술작품의 소멸성 개념에서 보면 똑같은 출연진이 공연하는 내용이라도 매 회마다 다른 공연이 이루어지고 있는 셈이나 마찬가지다. 더욱이 공연 시간 외에는 관객들이 공연을 관람할 수 없기 때문에, 공연되지 않는 문화예술작품은 소멸성의 개념이 적용되지 않는다.
문화예술 마케팅 믹스 과정에서 무형성, 비분리성, 이질성, 소멸성이라는 문화예술작품의 4가지 특성이 예술 소비자의 티켓 구매에 영향을 미치게 마련이다. 공연하거나 전시하는 문화예술작품의 내용이나 장르가 문화예술 소비자의 티켓 구매에 본질적인 영향을 미치겠지만 문화예술작품의 4가지 특성에 따라서도 달라질 수 있다. 따라서 좋은 문화예술작품을 발굴한 다음, 4가지 특성을 고려하면서 문화예술 마케팅 활동을 다각도로 전개할 필요가 있다. /김병희 서원대 광고홍보학과 교수
[김병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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