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민족끼리'는 가짜민족주의 널리 알려야

 전우현의 민족과 자유의 새지평(7)-북한의 “우~리 민족끼리”는 가짜 민족주의

민족주의는 우리 근현대사를 이끌어온 핵심 키워드이다. 일제의 36년간 식민지지배와 해방, 그리고 6.25북한의 남침, 남북분단 상황 등...민족주의와 민족이란 개념은 항상 보수와 진보, 우파와 좌파의 이념갈등에서 가장 첨예하게 부딪치게 만드는 핵심용어이다.  자유와 자유주의도 마찬가지다. 프랑스 대혁명이후 본격 발현된 자유주의는 서구의 근현대사를 추동한 핵심 키워드였다. 자유는 천부인권, 사유재산보호와 함께 서구의 시장경제와 자본주의 발달을 이끌었다. 반면 공산주의는 급진적 민족주의, 전체주의, 사유재산권 부정 등으로 인류사에서 끔찍한 재앙을 초래했다.  전우현 한양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가 한국에서 나타나는 민족주의와 자유주의 이데올로기를 분석하는 시리즈를 연재한다. [편집자주] 

   
▲ 전우현 한양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며칠 전 대한민국이 중국 시진핑 주석과 화기애애한 분위기를 띄우는 동안 북한은 아베총리의 일본과 납치자 문제해결을 미끼로 짝짓기를 했다. 70년 동안 이어온 한국-미국-일본 대(對) 북한-중국의 기본대립축과는 180도 달라진 모습이다. 국민들은 온통 머리가 어지럽다.

북한은 과연 민족의 미래를 위한 선택을 하는 것일까? 그러나, 단언하건대 하루가 멀다하고 동해안으로 미사일, 방사포를 쏘아대는 북한이 외치는 “우∼리 민족끼리”는 가짜 민족주의다. 북한 정권이 첫 단추를 끼울 때부터 조만식 등 민족주의 세력은 안중에도 없었다. 오히려 첫번째 제거 대상이었다.

아시아에서도 가장 보수적인 나라의 북쪽에 공산정권이 성립한 것은 소련의 권력을 통한 이식일 뿐이었다. 북한은 토착적인 혁명을 통해서도 아니요, 공산주의와 민족주의의 단합을 통해서도 아닌 소련군대의 등에 업힌 공산주의 국가로 출발했다. 오늘날 북한 당국자들은 이 역사적 사실을 은폐하고 마치 김일성에 의해 북한이 ‘해방’되었고 김일성의 민족주의적 주체사상에 의해 공산정권이 독자적으로 세워진 것으로 선전하고 있다.

사실 공산주의자 등 좌파는 민족의 이념(민족주의)에 별 관심이 없다. 민족의 이익보다 계급 이익이 우선이다. 프롤레타리아(무산자)의 이익은 민족전체 이익 중 극히 작은 부분(부분 집합)에 불과한데도 이를 민족 전체보다 앞세운다. 매우 속좁은 집단 이기주의(集團 利己主義)다.

사실 좌파(左派)가 민족주의를 찾는 것은 중간지대의 민중들을 우파(右派)로 가지 않도록 끌어당기기 위한 것이다. 전술적 수단일 뿐이다. 그러니 계급주의(階級主義)와 민족주의(民族主義)의 결합은 부자연스럽다. 언제든지 헤어질 수 있는 위장결혼(僞裝結婚)이다. 북한이 내세우는 “우~리 민족끼리”가 바로 그 예이다.

북한의 김일성도 중국의 모택동, 베트남의 호치민처럼 공산주의와 민족주의의 결합을 시도하기는 했다. 1945년 이후 민족주의가 갖는 정서적 효과를 전술적으로 활용하고자 한 때문이다. 그래서 중소 분쟁 사이에서 북한체제를 지키려고 했다. 1990년대 사회주의권 붕괴 이후의 충격을 막을 때에도 이 감초(甘草)가 긴요했다.

북한에서 말하는 민족이란 본시 공산주의의 큰 틀에서만 양념으로 허용되었다. 민족주의를 공산주의의 조미료(調味料)로 적절히 이용한 원조(元祖)는 소련의 스탈린이었다. 스탈린에 의한 군사 점령으로 공산화된 북한이 민족을 말할 때 스탈린의 도식을 받아들인 것은 당연하다. 그래서 북한의 마르크스주의자들은 민족주의를 비현실적, 과도적으로 존재할 뿐이라고 업수이 여겼다. 세계혁명이 완수되는 날에는 결국 해체될 것이라고 보고 내심으로는 민족주의를 반(反)혁명 요소로 깎아내렸다.

그럼에도 북한에서 좌익의 민족주의는 이른바 ‘애국주의’라고 스스로를 미화한다. ‘애국주의’라, 이름은 거창하고 그럴 듯하다. 그러나, 알고보면 ‘극좌파 민족주의’인 이것은 자신과 입장이 다른 모든 민족주의를 깎아내린다. 좌파 민족주의를 ‘애국주의’라고 자화자찬‧극찬한 것은 우파 민족주의를 반(反)애국주의로 내몰기 위해서다.

아예 좌파 민족주의가 아니고서는 민족주의 근처에도 오지 말라는 입도선매(立稻先賣)다. 다른 입장에 있는 민족주의는 ‘민족반역자의 사상’이라고 매도하기까지 한다. 좌파 민족주의가 아닌 민족주의는 미제 침략자를 도와주는 것이라고까지 말한다. 비(非)공산주의적, 비(非) 좌파적 담론 일체를 친(親)제국주의, 반(反)민족주의로 덮어씌운다. 공산주의 또는 좌파 지상의 떼쓰기이고 ‘민족’, ‘민족주의’의 독점공급 주장이다.

북한의 소위 ‘애국주의’ 또는 ‘좌파 민족주의’는 온 세상을 좌파의 정치 이데올로기로만 바라본다. 그 색안경으로만 민족주의를 설명하는 편집증(偏執症), 독식욕(獨食慾)이다. 그 독식욕은 우리 민족처럼 강대국 틈바구니에서 생존을 위협받는 경우, ‘민족주의 정서’가 핵폭탄과 같은 에네르기를 갖고 있음을 간파한 데서 나온다. 북한은 1957년 당 중앙위원회 12월 확대 전원회의 이후 이 ‘애국주의’를 ‘사회적 애국주의’라는 말로 바꾸었다. 민족주의는 반드시 사회주의적인 내용을 가져야 한다는 뜻이다. 이로써 북한의 민족주의는 사회주의(공산주의)의 보조도구에 지나지 않음을 스스로 보여주었다.

북한에서는 한국 사회가 미제의 신식민지로 전락했다는 인식틀이 조금도 변하지 않았다. 전략‧전술 차원에서 사용하는 위장된 민족주의 이론도 이 맥락과 닿는다. 즉, 해방에서부터 한국 전쟁에 이르기까지 북한은 민족주의를 사회주의 혁명 수단으로 적극 이용했다. 그러나, 반제‧반봉건주의를 강력히 표방하면서 노동자‧농민 중심의 계급주의 성향이 민족주의보다 우선임을 고수했다.

북한의 주체사상은 ‘조선민족 제일주의’ 혹은 ‘우리식 사회주의’를 내세운다. 이는 맑스 레닌주의에 입각한 전통적 사회주의와의 결별을 가속화시켰다. 사실 그 후 북한은 주체사상에서 사회주의가 퇴조하고 계급적 관점이 약화되는 대신 민족주의 개념을 전면화하였다. 또, 민족적 동기를 크게 강화하는 이념적 변신을 모색하기도 하였다. 그 대표적인 결과가 1990년대 이후 통일 정책에 있어서 ‘민족 대단결론’의 제시와 단군릉 발굴을 비롯한 민족전통 문화의 계승과 발전노력이다.

그러나, 북한의 민족적 동기 강화 정책은 공산주의 종주국과 위성국이 모두 망한 가운데 나온 고육책(苦肉策)에 불과했다. 김일성 사후 김정일 후계 체제의 공고화 작업에도 이것이 있어야 했다. 이미 지금 마르크스-레닌주의나 김일성 수령주의 자체는 인기를 잃었다. 프롤레타리아트 혁명론에 이어 위장(僞裝) 민족주의 깃발을 번갈아 이중(二重)으로 들어보여 체제 정당성을 홍보·선전해야 하는 북한의 고민과 취약성이 바로 여기에 있다.

그러나, 해방 이후 박헌영 남로당처럼 여전히 평양정권을 숭배하는 주사파는 이를 똑바로 보지 못하는 외눈박이다. 정신지체아(精神遲滯兒) 내지 무뇌아(無腦兒)가 아닌가? 이 좌파 민족주의가 사이비 민족주의임은 더 말할 것도 없다. 북한의 “우~리 민족끼리”는 가짜 민족주의임을 널리 알리자. 다시는 이런 외눈박이가 나오지 않게 하자. /전우현 한양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