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펜=김소정 기자]하노이회담 결렬 이후 북한과 미국은 대치 상태를 유지하면서 우군 다지기에 나선 모양새다. 북한은 중국 및 러시아와 정상회담을 추진하는 정황이 포착되고 있고, 미국은 유럽 주요국과 공조 다지기에 나섰다.

반면, 남북 간 핫라인은 올 스톱된 것으로 보인다. 하노이회담 이후 개성에 설치한 공동연락사무소 소장회의를 단 한번도 열지 못했다. 개성공단 기업인 방북신청도 8번째 무산됐다. 기업인 방북은 공단 점검이 목적인데도 북한에 엉뚱한 메시지가 전달될까 우려하는 한미워킹그룹회의 결과에 따라서다. 

이런 와중에 미국은 남한에 대해서는 한미공조를 압박하면서 북한에 대해서는 저강도 경고를 보내고 있다. 19일 미 17개 정보기관 수장이자 북한 비핵화에 회의론자인 댄 코츠 국가정보국장(DNI)가 전격 방문해 문재인 대통령을 비롯해 외교안보라인을 만났다. 동시에 전략폭격기 B-52 2대를 한반도 주변까지 전개하면서 훈련을 벌였다. 

미국의 유럽국가에 대한 공조는 대북협상 주책임자인 스티브 비건 미 국무부 대북특별대표를 통해서 이뤄졌다. 그는 19일(현지시간) 영국 런던에서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이사국인 영국과 프랑스, 독일의 카운터파트를 만났다. 2차 북미정상회담 결과를 공유하면서 대북 압박의 고삐를 조이는 데 동참해달라고 요청한 것으로 보인다. 

이에 앞서 유엔 안전보장이사회가 연차보고서를 발표하고, 북한의 석유 정제품의 불법 환적 등 국제사회의 대북제재의 이행에서 구멍이 있다는 점을 낱낱이 밝힌 바 있다. 자유아시아방송은 20일 독일 외무부가 “북한이 CVID를 향한 구체적이고 충분한 조처를 하지 않는 한 대북제재는 유지돼야 한다”고 말했다고 보도하기도 했다. 

북한은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집사’인 김창선 부장을 21일 모스크바에 파견하면서 북러 정상회담을 예고했다. 이에 앞서 러시아 상원 대표단의 북한 방문도 있었다. 방북했던 러시아 대표단은 북한 대외경제성 인사들과 만나 두만강을 가로지르는 북러 연결자동차 전용 교량 건설, 러시아 내 북한상품관 개설 등을 논의했다고 타스통신이 전했다.

   
▲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오른쪽)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VTV


중국의 시진핑 국가주석도 북중 수교 70주년을 맞는 올해 김일성 주석의 생일인 4월15일을 전후해 평양을 방문할 것이라는 말이 나오고 있다. 김정은 위원장이 벌써 3차례나 중국을 방문했으므로 시 주석이 답방할 차례인데다 미국과의 협상이 결렬된 북한으로서는 ‘중국 카드’가 절실한 만큼 추진될 가능성이 높다.

한편, 시 주석이 방북할 때 남북한을 동시에 방문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는 가운데 시 주석의 방북은 미중 간 벌어지고 있는 무역협상에 영향을 줄 수밖에 없어서 우선 미중 정상회담이 성공적으로 치러져야 시 주석의 평양 방문도 성사될 것이라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여기에 내달 말 베이징에서 ‘일대일로’ 정상 포럼 개최가 예정돼 있는 것도 북미 간 비핵화 협상 구도에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이 포럼에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참석할 예정인 것으로 알려졌으며, 김정은 위원장도 초청받았다는 얘기가 흘러나오고 있다. 김 위원장이 방중할 경우 베이징에서 북‧중‧러 간 연쇄 정상회담에 3자 정상회담도 성사될 수 있다.

이런 가운데 미국 정치권 안팎에서는 문재인정부의 중재자 역할을 거부하는 움직임이 노골적으로 드러나고 있다. 북미 비핵화 협상의 막후 채널을 맡았던 앤드루 김 전 미 중앙정보국 코리아미션센터장은 최근 방한해 비공개로 열린 스탠퍼드대 동문 초청 강연에서 “비핵화 논의에서 한국의 역할이 부각되는 것과 관련해 미국이 상당한 불신을 갖고 있다”며 “백악관은 청와대에 비핵화 문제를 중재해달라고 한 적이 없다”고 했다. 

또 그는 지난 북미협상에 대해 “김 위원장 외에 북한 실무협상단은 ‘비핵화’라는 단어 자체를 사용할 수 없었다”면서 특히 “북한이 주장하는 ‘조선반도의 비핵화’는 미국의 비핵화 개념과 대단히 달랐으며, 북한은 괌, 하와이 등 미국 내 전략자산을 없애야 한다는 주장을 싱가포르회담 때부터 했다”고 밝혔다.

‘포스트 하노이’에도 북미는 일단 상대방을 자극하지 않으면서도 각자 우방국과 접촉면을 확대하고 있지만 남북경협을 추진해온 문재인정부는 어느 쪽 공조 대열에도 끼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이와 관련해 앤드루김과 함께 방한한 미 스탠퍼드대 월터 쇼렌스틴 아시아태평양연구소의 신기욱 소장은 한 언론에 기고한 칼럼에서 “하노이회담을 보면 미국은 완전한 비핵화, 북한은 제재 완화, 한국은 남북경협이라는 다른 꿈을 갖고 협상에 임해왔음이 명백해졌다”며 “이 과정에서 한국이 가장 큰 타격을 입을 가능성이 크다”고 지적했다.

그는 이어 “한국이 지금 해야 할 일은 임기응변식의 어설픈 중재가 아니라 북한에 완전한 비핵화를 설득하고 대신 체제보장 등 북한이 불안해하는 부분에 대해서는 미국, 중국과 만나 이를 해소하는 방안을 강구하는 것이어야 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당장 문재인정부가 북한을 설득하는 기조로 돌아서려고 해도 북한이 우리와의 대화 채널을 닫아놓고 있다는 징후가 곳곳에서 감지되고 있다. 조명균 통일부 장관은 21일 남북경제협력특별위원회 전체회의에 참석해 지난 15일 최선희 외무성 부상의 기자회견과 관련해 “원문을 다각도로 분석중”이라고 했다. ‘북한에 특사 파견 등 실무접촉과 관련해서도 “그런 필요성을 저희가 느끼고 있지만 아직까지 북측의 입장을 정리하는 시간이 필요하기에 기다리고 있다”고 말했다. 

남북은 22일에도 남북공동연락사무소 소장회의를 열기 위해 남측에서 천해성 통일부 차관이 개성으로 올라갔지만 북측에서는 소장인 전종수 조평통 부위원장이 또 불참했다. 통일부는 “북측에서 소장대리인 김광성 조평통 부위원장이 내려오는 것으로 통보받았다”고 밝혀 지난 3주째 소장회의가 불발한 끝에 이날에는 소장대리 회의를 겨우 이어갈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