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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좌승희 한국제도학회 이사장, 미디어펜 회장 |
주류 신고전파경제학은 개별경제의 국적성을 중시하지 않는다. 예컨데 실제 대기 중에는 공기의 마찰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마찰이 없는 진공이라고 가정하는 것과 같이 마찰이 없는 경제를 가정하는 진공속의 경제학이다.
그러나 현실경제는 나라마다 서로 다른 종류의 경제적 마찰로 인해 다른 조건이 다 같다하더라도 서로 다른 경제적 성과를 시현하게 된다. 그래서 현실경제의 성과는 항상 국적성을 벗어나지 못한다. 그러니 주류 신고전파 주류경제학이 현실경제를 설명하지 못하는 딜레마에 빠질 수밖에 없다.
그동안 주류 경제학은 인간을 사회와는 동떨어진 진공 속에 놓고, 시공을 초월하여 적용되는 절대적 인간합리성을 정의하려 노력했다. 그렇게 해서 얻어진 합리적 인간상에 기초한 경제학은 점점 현실과 괴리되어 왔다. 이에 대한 반작용이 인간은 덜 합리적이라는 소위 제한된 합리성가설로 나타났다. 물론 정보인지능력의 한계가 그 원인이다. 그러나 이 또한 주류경제학의 완전한 합리성가정에 비해서는 보다 현실적인 제한적 합리성을 가정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합리성을 여전히 항상 어디서나 통용되는 절대적 개념으로 접근하고 있다.
그러나 인간은 정보 인지능력에 관계없이 항상 사회적 동물이며 사회경제적 제도 속에서 생존을 극대화하기 위해 노력한다. 아무리 천재라도 둔재와 같이 소통하지 못하면 사회에서 도태된다. 인간의 합리성, 즉 인생성공가능성을 높이기 위한 행동패턴은 그 경제사회제도가 요구하는 인간관과 인간의 진정한 본성과의 상호작용을 통해 나타나는 하나의 표현형(phenotype)이다. 표현형으로서의 인간의 합리성은 어떻게 정의하던 경제제도의 산물이며 하나의 내생변수이다.
인간의 합리성은 절대적인 외생적 조건이 아니라 제도와 환경에 따라 변하는 상대적 개념일 수밖에 없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인간 본성의 영향을 무시할 수 있다는 말은 아니다. 단지 그동안 경제학은 그 본성적 합리성을 정의하는데 너무 치중하다보니 사회적, 경제적 맥락이 없는 인간과 현실성 없는 모형경제연구만을 양산해왔다는 점을 지적하는 것이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경제학의 과제는 어떤 제도적 환경이 어떤 인간상, 어떤 경제적 행동패턴을 만들어 내는지를 규명하는 것이어야 할 것이다. 이와 관련하여 문제를 하나 제기한다면, 1960년대까지의 한국 국민은 대단히 게을러서 희망이 없는 민족이라 묘사되어왔다. 그러나 이들의 경제행태가 그 이후 20여년 만에 전혀 다른 모습, 세계에서 가장 부지런하고 역동적인 국민으로 바뀌었다. 그러나 북한의 같은 민족은 지금 세계에서 가장 생산성이 낮은 국민으로 남아있다.
이러한 남한과 북한의 경제적 결과의 차이는 국민들이 자신들에게 주어진 사회경제적 제도적 환경에, 즉 주어진 인센티브구조에 가장 “합리적”으로 적응한 결과라고 볼 수 있다. 남한의 국민은 합리적이고 북한의 국민은 합리적이 아니라고 할 수 있을까? 그럼 여기서 사회경제적 맥락이 없는 절대적 합리성을 얘기하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는가?
근래 사회경제적 맥락으로서의 현실경제제도에서 개별경제의 국적성, 즉 서로 다른 고유의 경제적 마찰, 그로인한 서로 다른 경제적 행동, 그리고 그로인한 서로 다른 경제적 성과의 원인을 찾는 ‘신제도 경제학’이 등장하면서, 경제사회의 문제를 보는 보다 높은 차원의 실사구시적 접근이 보편화되고 있다. 이하에서는 간략하게 신제도 경제학의 구조를 설명해 보고자 한다.
경제의 성과는 시장의 경기규칙인 경제제도 하에서 경제주체들이 자기이익을 극대화하기위해 치열하게 벌이는 경기의 최종결과로 나타난다. 여기서 시장은 경제제도의 집합에 의해 정의되는데, 제도는 바로 그 사회의 인센티브구조를 결정하게 된다. 어떤 경기규칙은 경기의 성과를 높일 수도 있지만 어떤 규칙은 오히려 경기력을 떨어뜨리고 경기의 성과를 악화시킬 수도 있다는 의미이다.
그런데 경기규칙인 제도는 나라마다 다르다. 현실의 시장은 국적이 있다는 말이다. 왜냐하면 시장을 규정하는 제도, 경기규칙은 그 사회가 선택하기 나름이기 때문인 것이다. 그래서 한국의 시장경제와 미국의 시장경제는 다른 것이다. 축구에는 두 가지가 있다. 발로 차는 사카 축구와 손으로 들고튀는 미식축구가 있다. 왜 서로 다른가? 그 경기 규칙이 다르기 때문이다.
현실의 시장경제는 우선 개인과 개인들의 집단이 구성하는 기업 등 사조직과 정당, 정부등 공조직이 주요 경제주체이며, 이들은 주어진 시장의 경기규칙인 제도 하에서 인생성공, 기업, 조직성공을 위해 경기를 벌이는 것이다.(그림참조) 경기규칙을 어기면 퇴장당하기 때문에 이를 지키는 것이 중요한데 그렇기 때문에 제도에 의해 경기주체들의 행동이 달라지고 나아가 경기결과, 즉 경제성과도 달라지게 된다. 경제제도는 그래서 부처님이나 다름없다. 우리 모두는 부처님의 손바닥위에서 사랑을 받으려 재롱 피우는 손오공과 다름 아닌 셈이다. 제도가 선택해 주지 않으면 성공은 없기 때문이다.
그럼 경제제도에는 무엇이 있고 어디서 오는가? 우선 경제제도에는 국회나 정부에서 만들어내는 헌법, 법령, 규칙 등 공식적 법규가 있고, 그 다음으로는 공식적 법규는 아니지만 우리가 한 사회의 구성원으로 살기위해 공유하고 지켜야하는 문화, 관습, 가치관, 정서, 이념등 비공식적 규칙이 있으며, 이들 규칙들은 엄격히 집행되고 혹은 서로의 감시 하에 엄격히 따르지 않으면 아무 의미도 없기 때문에 제도의 집행정도가 제도의 성패를 결정하는 제3의 제도가 된다.
<신제도 경제학이 보는 현실의 시장경제와 주류경제학의 시장경제>
바로 이런 제도가 각 시장경제의 민얼굴인 셈이다. 얼마나 부의 창출에 유리한 제도를 가지고 있느냐에 따라 경제적으로 흥하는 사회가 되기도 하고 망하는 사회가 되기도 한다. 부자가 되려고 노력하는 개인과 성장하는 기업들에 불리한 규칙을 만들어 내는 사회는 가난한 사회가 되기 쉽고, 개인재산권 보호 장치나 개인과 기업의 경제적 자유 등, 부의 창출과 축적에 도움이 되는 제도를 선호하는 사회는 부국의 길로 갈 수 있다.
스스로 돕는 자를 우대하는 제도를 가진 사회는 자조하는 국민을, 가난한 자를 우대하는 제도를 가진 사회는 가난한 국민을 만들어낼 수 있다. 작은 기업만을 우대하는 제도를 가진 사회는 중소기업천국을 만들어낼 수 있지만, 성장하는 기업을 우대하는 제도를 가진 사회는 대기업을 만들어낼 수 있다.
그런데 주류 신고전파 경제학은 현실시장의 제도도 없고 심지어 기업도 없는, 진공 속의 개인만 있는 시장경제를 다루는 경제학이다.(그림참조) 그러니 왜 한국기업과 미국기업의 행태가 다른지 설명하기가 도통 어렵게 된다. 예컨대 왜 미국기업들은 공을 들고 튀는데, 한국기업들은 어렵게 발로 차려하는지를 모르고, 한국기업들을 비판하는 꼴이 벌어진다. 사회의 문화, 전통, 이념과 정부규제행태, 법령 등 한국기업시장규칙이 미국과 다름을 이해하고 그 원인을 고치려하기보다는 무조건 규제하면 된다는 규범경제학적 발상이 나오게 되는 것이다.
경제인들은 같은 사람이라 하더라도 주어진 제도, 즉 인센티브구조에 따라 전혀 다른 행동을 하게 된다는 신제도경제학의 도움 없이 경제를 이해하기는 어렵다. 신고전파 주류 경제학에 매몰된 한국경제학계도 보다 더 현실성 있는 경제학을 할 때가 되었다고 생각한다. /좌승희 KDI국제정책대학원교수, 한국제도경제학회이사장, 미디어펜 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