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일 민족주의, 친중사대주의 도넘어, 박근혜정부 조중동 문화계 주도. 한일관계 복원해야

   
▲ 조우석 미디어펜 객원논설위원
대중가수 조영남은 꼭 10년 전 단행본 <맞아죽을 각오로 쓴 친일 선언>(중앙M&B 펴냄)을 쓴 뒤 정말 맞아죽을 뻔했다. 책을 펴낸 직후 일본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독도에 대한 대응 방식에서 일본이 한국보다 한 수 위”라고 했던 발언이 화근이었다.

반일 민족주의 정서를 거슬렀다는 이유만으로 그는 가수생활 하차 위기에 몰렸다. 지금도 조영남에게 네티즌들은 친일파 딱지를 붙여놓고 있다. 실은 그 책의 기획은 조영남과 필자가 함께 하다시피 했으니 절반의 책임이 내게도 있다는 걸 이 자리에서 고백한다.
 

눈먼 대중정서라는 게 그만큼 무섭다는 걸 알면서도 오늘 나는 맞아죽을 각오로 이 글을 쓴다. 이 땅의 맹목적 반일(反日) 민족주의, 친중(親中) 사대주의 정서가 너무도 비정상적이라는 판단 때문이다. 꼼짝 못할 지배적 정서로 자리 잡은 두 개의 집단정서는 심하게 균형을 잃었을 뿐 아니라, 자칫 이 나라의 안보와 외교환경까지도 위태롭게 할 수 있다는 게 필자 생각이다. 10년 전 조영남과 필자의 반일 외곬 상황에 대한 우려보다 지금의 상황이 훨씬 안 좋다.

철부지 네티즌에 아부하는 조중동의 섵부른 '민족주의' 지면
이유는 ‘묻지마 반일 드라이브’와 친중 사대주의 모드는 철부지 네티즌은 물론 그들에 아부하는 조중동을 포함한 선동 언론과, 문화계 거의 전체가 군불을 지피고 있는 구조라는 판단 때문이다. 결정적으로 대통령을 포함한 최고 정치지도자까지 이 판에 가세하고 있다. 미국 일본 중국 러시아 사이에 한반도를 둘러싼 패권경쟁이 재현되는 이 비상한 와중에 한국사회가 이렇게 나태하고(지적으로), 무책임해도(정치적으로나 전략으로)되는 걸까? 왜 누구 하나 나서 “이건 아니다” 소리를 못할까? 

   
▲ 반일 친중국 경향이 확산되고 있다. 박근혜정부와 조중동, 문화계가 반일민족주의, 친중국사대주의 모드를 확대시키고 있다. 동북아 정세에 대한 냉철한 분석이 필요하다. 미국과의 굳건한 동맹은 균열이 가지 않게 해야 한다. 한반도정세가 급변하는 상황에서 우리 모두가 무책임하고 나태해선 안된다. 박근혜대통령과 시진핑 중국국가 주석이 정상회담을 마친 후 기자회견을 갖고 있다.

필자가 유심히 본 것은 25일자 신문이다. “일 자위대 기념식 취소했던 롯데호텔 6.25전쟁 한 중 인민군 행사는 열기로.”(조선일보 10면) 이건 너무도 말이 안 된다. 지난 7월 11일 롯데호텔이 일 자위대 창설 60주년 리셉션을 일방적으로 취소했던 것은 그 전날 동아일보가 “이 와중에 자위대 기념식”이란 기사를 1면에 쓴 직후였다. 조선일보도 못마땅한 어조로 “한일 관계 '찬바람' 와중에 서울에서 자위대 창설 기념식”이라는 기사를 같은 날 실었다. 민족주의 정서 부채질이야말로 조중동이 가장 잘하는 짓의 하나다.

일본 자위대는 안 되고, 중국 인민군은 된다는 이중잣대

그러나 왜 그들은 같은 호텔에서 중국인민해방군 건군 리셉션이 열렸던 것을 문제 삼지를 않을까? 인민군 리셉션은 5년 전에도 이 호텔에서 열렸고, 지난해도 같은 장소에서 열렸다. 일본에게는 발끈해서 외교적 결례를 범해도 무방하고, 큰나라 중국 앞에는 벌벌 기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일까? 오래된 사대주의 DNA가 100여 년만에 다시 한 번 도지는 것일까? 하긴 며칠 전 중국 시진핑 주석의 방한 때 한중 두 나라 정상은 일본이 추진하는 집단적 자위권 추진과 우경화에 반대한다는 뜻을 밝혔는데, 이것도 실은 좀 이상했다.

일본의 움직임이란 미국이 그리고 있는 큰 그림(아시아 중시 정책)과 부합되는 것이다. 즉 아베총리의 농간 식으로 이해하는 것은 저차원의 민족주의적 시각에 불과하다. 국제정세의 변화 뉘앙스를 고려하는, 균형 잡힌 시각을 가진 이는 한국사회에 드물다. 그렇게 말했다가는 가서 조영남처럼 큰코 다칠까봐 두려운 것이다.

하지만 세계정세는 우리 생각과 다르다. “세계에서 일본의 집단자위권 행사를 반대하는 나라는 사실 한국과 중국 두 나라밖에 남지 않았다”는 게 국제정치학자 이춘근 박사가 신간 <격동하는 동북아, 한국의 책략>(백년동안 펴냄, 91쪽)에서 밝힌 진실이다.

반일 민족주의는 지금 문화적 히스테리로 무섭게 확대되는 중

상식이지만 미국의 아시아 중시정책을 중국은 자신에 대한 봉쇄전략으로 받아들이고 있고, 이걸 뚫기 위해 한국을 말(馬)의 하나로 쓰고 있다. 한국은 동맹국 미국의 심기를 거스르면서까지 이런 음험한 중국 쪽에 바짝 다가서고 있는 모양새이다. 내 눈에는 너무도 위태로운 친중 사대주의 정서다. 이게 전부가 아니다. 친중 사대주의는 반일 민족주의 정서와 짝을 이룬 채 사회문화적 히스테리로 확대되는 양상을 보이고 있어 더 걱정이다. 롯데호텔의 움직임에 이어 내가 주목한 건 지난 23일 국립발레단의 결정이었다.
 

국립발레단은 작곡가 푸치니 오페라 ‘나비부인’ 내년 공연을 돌연 취소했다. 완성도에 대한 문제제기도 일부 있었지만, 일본색에 대한 지적이 결정타였다. 일본 냄새나는 건 모두 다 싫다는 투인데, 반일 히스테리가 이 정도 쯤이 됐다면, 조만간 ‘나비부인’에 나오는 아리아 ‘어떤 개인 날’를 FM방송에서 들을 기회가 없어지고, 음반판매도 불법화될 지도 모른다. 국립발레단 뿐인가? 반일 민족주의 정서를 파는 대표적 작품이 뮤지컬 ‘명성황후’라는 건 상식에 속한다.

   
▲ 박근혜대통령이 최근 방한한 마쓰조에 일본 도쿄지사의 예방을 받고 있다.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 철학을 공유하는 한일외교의 복원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반일을 조장하는 정치 사회 문화적 행태는 신중해야 한다.

일본색 오페라 '나비부인' 은 안 되고, 뮤지컬 '명성황후'는 뜨고

연출가 윤호진이 1995년 만든 이 작품은 미국 브로드웨이를 다녀오며 글로벌한 작품으로 둔갑했고, 이후 국내 공연계의 고정 레파토리로 자리 잡았다. 미성숙한 민족감정에 편승하는 2.5류 작품이 상업적으로 대박을 만든 배경에는 민족주의 정서를 부채질하는 선동 언론의 전폭적인 지원, 젊은 대중들의 묻지마 호응이 컸다. 문제의 윤호진이 안중근을 불세출의 민족주의자로 그린 뮤지컬 ‘영웅’을 2009년에 만들며 공연계의 민족주의는 드디어 지배적 정서로 자리 잡았다.

명분 좋으니 정부 지원금을 타내고, 거기에 관객이 몰리니 상업적 성공도 거둔다. 이통에 반일 민족주의는 우리의 신앙으로까지 뿌리를 내린다. 한국 뮤지컬의 대부 소리까지 듣는 윤호진이 지난해 박근혜 대통령의 취임식 연출까지 맡은 것도 우연만은 아니다. 공연계가 반일 민족주의라는 물에서 논다면, 반일과 한 짝인 친중국의 분위기를 선도하는 건 단행본 출판계다. 그 크고 화려한 성공을 상징하는 것이 소설가 조정래의 <정글만리>전3권 (해냄 펴냄)일 것이다.

좌파 작가 조정래의 <정글 만리>는 노골적인 친중국 분위기

형편없이 소설적 완성도가 떨어지는 이 장편소설을 나는 매우 정치적 작품이라고 규정한다. 그리고 국제정서를 보는 눈은 거의 백치에 가까운데, 거의 노골적으로 반미 친중이라는 이 나라 좌파의 도식에 썩 충실하다. 우리시대 대중들은 속절없이 이런 작품에 무차별적으로 오염되고 있다. 실제로 대하소설 <태백산맥>을 만든 이 좌파 작가는 <정글 만리>에서 노골적인 친중국 분위기를 전면에 내세우고 있다. 예스24에 올라가있는 책 정보는 이 책을 이렇게 설명하고 있다.

“세계 경제를 집어삼키며 세계의 중심이 된 중국의 급부상. 수천 년 국경을 맞댄 우리는 친구인가, 적인가? 중국의 비약적 성장과 급변하는 한반도의 정세 속에서 우리는 지금 무엇을 직시해야 하는가, 그리고 무엇을 준비해야 하는가?”

'한국현대사 성공의 버팀목' 한미동맹에 균열 생기면 안된다

말은 그럴싸하지만 그게 빨리 중국에 붙으라는 소리라는 걸 그 삼류 소설을 읽은 사람은 죄다 안다. 친중 사대주의는 이렇게 견고해지고, 그 한켠에 반일 민족주의 정서는 거의 완성 단계를 보이고 있다. 걱정이다. 내년이 한일 국교 정상화 50년이 되는 해이다. 실은 10년 전 조영남과 내가 그런 책을 만든 것도 한일수교 40년이 되는 그 해에 무언가 새로운 시도를 통해 양국 관계에 돌파구를 뚫자는 의도였는데, 아까 밝힌대로 지금의 상황은 너무 안 좋다.

그 배경에는 반일 친중 드라이브의 최고 선봉에 이 나라 대통령이 서있다. 그런 외교정책은 이 땅 눈먼 대중들의 지지를 등에 업고 있다. 때문에 다분히 포퓰리즘(인기영합주의)의 혐의가 있지만, 누구도 감히 나서서 문제제기를 하지 않는다. 이 나라 문화계의 기본적 정서이자, 상업적으로도 짤짤하게 돈이 되는 장사이니 거의 난공불락이다. 정말 걱정은 이런 구조 속에서 한국현대사 성공의 버팀목인 한미동맹이 조금씩 균열이 생기는 것은 아닌가 하는 점이다. 바라는 게 있다면, 이 글이 한갓 기우로 끝나는 것인데, 그렇게 될까? /조우석 미디어펜 객원논설위원, 문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