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펜=김소정 기자]북미 간 ‘노딜’로 끝난 하노이회담 이후 오는 11일 워싱턴에서 개최될 한미정상회담을 앞두고 미국이 북한과 대화 재개 가능성을 높이고 있다.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은 최근 “북미 정상이 몇 달 내 다시 만나 실질적 비핵화 조치를 달성하기 바란다”고 말해 3차 북미정상회담의 조기 개최 가능성을 언급했다. 이에 대해 미 국무부는 2일(현지시간) “기본적으로 미국은 전진할 준비가 돼 있다는 것을 명확히 한 것”이라고 말했다.
2차 북미정상회담 이후에도 한국은 물론 미국도 ‘톱다운’ 방식의 비핵화 협상을 이어나갈 것이라는 의지를 천명한 셈이다.
현재 한미정상회담 의제 조율을 위해 워싱턴에 머물고 있는 김현종 청와대 국가안보실 2차장은 지난달 30일 미국으로 향하면서 “톱다운 방식이 유지돼야 한다”고 말한 바 있다.
이는 북한의 통치구조 특성상 김정은 국무위원장 이외에는 결정 권한이 없는 것을 감안한 것이다. 앞서 스티브 비건 미 특별대표가 그의 북측 카운터파트인 김혁철 대미담당대표와 실무협상을 진행할 때 “김혁철이 비핵화 언급도 꺼렸다”는 전언이 나와 있다.
트럼프행정부로서도 이미 ‘빅딜’까지 제안해놓은 마당에 톱다운 방식을 이어가는 것이 낫다는 편단을 할 것이다. 다만 ‘핵을 포함한 대량살상무기(WMD) 폐기’와 ‘대북제재 해제’라는 북미 협상카드가 공개된 상황에서 다시 정상간 마주앉을 때 그만큼 성과를 내야 하는 부담은 있다.
이런 가운데 한국정부가 북미대화를 중재하기 위해 다시 한미정상회담을 추진하면서 사용할 카드에 이목이 쏠리고 있다.
청와대 고위관계자는 ‘굿 이너프 딜’(충분히 괜찮은 거래)라는 용어를 사용하며 ‘포괄적 합의 후 단계적 이행’을 제시한 바 있다. 스몰딜을 한두차례 실시해 ‘조기 수확’을 거둔 뒤 완전한 비핵화의 최종 목표에 도달한다는 구상이다.
하지만 이는 미국의 빅딜 카드를 포기시켜야 하는 숙제가 있다. 지난달 29일 로이터통신의 보도로 알려진 하노이회담 때 제시된 미국의 빅딜 문서에는 ‘북한 핵무기와 핵물질의 미국 이전’과 ‘모든 핵시설 및 탄도미사일은 물론 화학·생물전 프로그램까지 모두 해체’하는 내용이 담겨 있다.
반면 하노이회담 때 ‘영변핵시설 폐기’를 제시한 북한은 이후 1일 리용호 외무상의 기자회견을 통해 “(북미) 양국 사이의 현 신뢰 수준을 놓고 볼 때 현 단계에 우리가 낼 수 있는 가장 큰 보폭의 비핵화 조치”라며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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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차 북미정상회담 이튿날인 2월28일(현지시간) 도널드 트럼프(오른쪽) 미국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베트남 하노이의 소피텔 레전드 메트로폴 호텔에서 회담 도중 심각한 표정을 하고 있다./VTV |
따라서 현재 미국은 ‘일괄 타결과 일괄 이행’ 원칙을, 북한은 ‘단계적 타결과 단계적 이행’을 요구하는 가운데 정부가 ‘포괄적 합의 후 단계적 이행’을 통한 중재에 성공할지 주목된다. 이에 대해 청와대 고위관계자는 “2~3차례의 스몰딜로 조기 수확을 거둔 뒤 최종 목표인 완전한 비핵화에 이른다”고 설명한 바 있다.
북한의 비핵화를 견인하기 위한 상응조치에 대해서는 이른바 ‘스냅백’ 즉, 북한이 합의를 이행하지 않을 경우 제재를 복원시키는 것을 전제로 하는 제재완화 방안이 협상안으로 제시될 가능성이 있다.
스냅백과 관련해서는 최선희 북한 외무상도 지난달 15일 평양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하노이회담 당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스냅백을 전제로 한 제재완화에 긍정적인 입장을 보였다”고 주장했다. 하노이회담 때 드러난 것처럼 북한은 안보리 대북제재 일부를 해제해달라고 요구하고 있어 한미 간 스냅백 대상이 어떻게 조율될 지도 관건이다.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이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에서 결의한 대북제재나 미국의 독자 대북제재에 스냅백을 적용시킬 수는 없는 만큼 정부는 개성공단과 금강산관광 재개를 미국정부가 수용하는 방안을 모색할 것으로 보인다. 문재인 대통령도 하노이회담이 결렬된 직후에도 개성공단과 금강산관광 재개를 주장한 것을 볼 때 남북대화 동력으로 여기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조성렬 전 국가안보전략연구원 수석연구위원은 “북측이 요구한 제재 ‘해제’는 부분적일지라도 대북 국제제재망을 약화시킬 수 있으므로 남북관계에만 국한되는 남북경협사업을 제재 ‘면제’를 하면서 스냅백을 적용시킨다면 국제제재망을 약화시키는 일 없이 북한의 약속불이행 시 원상회복도 가능하다”고 말했다.
북한과 다시 비핵화 협상에 나설 준비를 마친 미국은 ‘선 한미대화 후 북미협상’의 입장을 보이며 무엇보다 한미공조 강화에 고삐를 죄고 있다.
미 국무부는 1일 보도자료를 통해 “북한과 관련한 향후 모든 조치는 한미 간 긴밀한 조율을 거쳐 나올 것”이라고 밝혔으며, 동시에 한미일 3각 공조도 강조했다. 국무부는 지난달 29일 강경화 외교부장관의 워싱턴 방문으로 성사된 한미 외교장관회담과 관련해 “한미 양측은 미국의 인도태평양전략, 한국의 신남방정책, 한미일 3각 공조에서 협력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한국의 신남방정책은 물론 미국의 인도태평양전략을 한미공조로 추진하고 일본을 포함한 한미일 3자 협력을 한층 강조한 대목이 눈에 띈다. 미국의 대 아시아 전략인 ‘인도태평양 전략’은 중국 세력의 확장을 견제하려는 트럼프 대통령의 안보전략으로 문재인 대통령은 그동안 인도태평양전략과 협력 여지를 남겨 두면서도 적극 동참하지 않아왔다.
한편,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지만 한미정상회담에 앞서 북한의 의사를 명확히 확인하기 위해 대북 특사가 파견되어야 한다는 주장도 적지 않다.
조성렬 박사는 “북한에서 11일 최고인민회의가 소집될 예정으로 김정은 위원장이 먼저 ‘새로운 길’이라도 발표한다면 한미정상회담은 사후약방문이 될 위험성도 있다”며 “서둘러 대북특사를 보내 북한의 입장을 먼저 듣고 한미 정상회담에 임하는 것이 북한의 돌출발언을 막고 한미정상회담의 성과도 높일 수 있는 길”이라고 말했다.
이런 가운데 북한은 최근 우리정부의 ‘남북관계 신중론’을 비판하며 대남 압박수위를 높여가고 있다. 3일 북한 매체는 “북남관계, 민족문제 해결에서 외부세력의 눈치를 보거나 그에 의존할 필요가 없다”고 했다. 또 대외선전매체를 통해 “신중론은 북남선언 이행에 대한 책임 회피이고 미국과 보수세력의 압력에 대한 공공연한 굴복일 뿐”이라고 주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