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속칼럼]문화의 견인차 현대미술 이야기-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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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우석 언론인 |
고대 그리스인들은 자신들이 사는 곳이 세계의 중심이라고 믿었다. 그걸 델포이의 아폴로신전에 있는 돌인 옴파로스가 설명해준다. 제우스가 세계의 중심을 알기 위해 세계의 양끝에서 독수리 두 마리를 날리자 딱 만난 지점이 거기였다. 그래서 거길 옴파로스 즉 대지의 배꼽이라 했다.
그런 자기중심적인 시각을 유지했기 때문에 그리스인은 다른 나라는 야만으로 치부했는데, 이런 자국 중심주의를 긍정-부정의 의미를 떠나 옴파로스 증후군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하나뿐이어야 할 옴파로스는 여러 개가 존재할 수밖에 없다. 모든 나라가 자기가 문명의 중심이라고 주장하니까. 전형적 사례가 중국이고, 그게 천하(天下)사상으로 나타난다.
중국이 세계의 지붕인 것은 물론 유일한 실체이자, 적통이라고 굳게 믿고 대신 주위 나라들을 하위질서의 주변부로 치부하는 게 천하사상이다. 이쯤 되면 거의 맹목인데, 옴파로스 증후군은 빛과 그림자의 양면성이 분명 있다. 우리 자신이 세상의 중심이란 자존심이야 일단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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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얀 이를 드러낸 채 입을 크게 벌리고 활짝 웃는 특유의 인물 캐릭터로 유명한 웨민준(岳敏君, 1962~)은 중국 사회의 급격한 변화에 대한 작가 나름의 풍자와 탄핵, 집단화에 대한 거부를 표현함으로써 냉소적인 사실주의를 보여준다. /사진=조우석 제공 |
우리가 '문명의 배꼽'이란 자존 있어야
단 타자(他者)를 밀어내는 비관용과 적대감의 측면도 없지 않다. 그건 중심부 쪽의 큰 나라 얘기이고, 한반도 같은 주변부에서는 중국에 복속된 그림자 문명으로 묻어가는 심리가 발달한다. 그게 그 지긋지긋한 사대주의다. 중화에 맞장 뜨는 고구려 문화도 있지만, 주류가 아니었다. 대신 성당(盛唐)시대에 그쪽에 편입된 이후 조선시대 500년의 유산이 너무도 컸다.
그게 옛날얘기가 아니다. 20세기 이후 저항적 민족주의와 결합되면서 더욱 고약해지고 뒤틀렸다고 나는 본다. 그래서 문제다. 세계시민으로서의 자각이나 우리문화에 대한 자부심으로 승화시키기보다는 열패감이 더 커졌다. 우린 여전히 요즘 글로벌 시대에 촌닭으로 남아있다.
옴파로스란 말은 얼마 전 TV드라마 '스카이캐슬'에서 독서토론모임의 이름으로 등장했지만, 우리가 옴파로스 증후군의 문명사적 의미를 이해하는가는 의문이다. 한마디로 우리 자신이 중심이란 자존감은 여전히 실종 중이다. 그리고 냉정하게 말해 우리가 동시대 지구촌 문화에 기여하는 것도 그리 크지 않다. 대한민국이 없어도 세계는 쌩생 잘 돌아간다는 뜻이다.
한류를 말하고 K팝, K뷰티를 말하는 게 물론 자랑스럽지만, 그게 우리가 원하는 문화 발신국가로서의 면모라고 말할 순 없다. 특히 파인아트, 즉 고급문화 영역에서 턱없이 취약하다. 뜬금없이 문화 원론을 꺼낸 이유는 요즘 현대미술 동향 때문이다.
다른 장르와 또 달라 미술은 현대문화를 이끄는 견인차가 분명한데, 중국 현대작가 미술품들이 피카소까지 밀어낼 기세로 세계 미술시장에서 돌풍을 일으킨 지가 꽤 됐다. 중국의 미술 시장은 2016년 기준 47억 9000만 달러로 세계 38%의 점유율을 차지했는데, 단연 글로벌 최대 시장이다. 그리고 미술작가 500위 랭킹에 중국이 과반인 272명으로 단연 1위를 달린다. 참고로 미국은 76명이 진입해 2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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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낙서와 예술 사이의 경계를 허문 ‘검은 피카소'로 불리는 미국의 낙서 화가 장 미쉘 바스키야의 작품. 세계에서 최고로 비싼 작가다. /자료=조우석 제공 |
현대미술의 신흥 강자 중국 돌풍
참고로 우린 10명으로 10위를 마크했다. 이걸 다른 측면에서 봐도 그렇다. 미국 미술정보 사이트 '아트프라이스'가 발표하는 비싼 작가(1945년 이후 출생자) 10명 중에 장 미쉘 바스키야, 제프 쿤스, 리처드 프린스(이상 미국), 데미얀 허스트(영국)을 빼고는 과반이 중국이다.
쩡판즈, 장 샤오강, 천이페이, 왕이동, 조우 춘야 등이 그들이다. 당연히 작품 값도 국력차를 그대로 반영한다. 우리의 경우 최고가는 100억 원대에 불과하다. 작고 작가 수화(樹話) 김환기의 작품인데, 그걸 중국의 생존한 40대 작가의 작품이 무려 수 백억 원대라는 사실과 비교해 봐야 우리의 현주소를 짐작할 수 있다. 이웃 중국에 가려 우리가 더 초라해 보인다.
그래서 물어야 한다. 특히 지난 10~20년 사이에 아시아 미술이 세계 미술계의 핵심으로 성장했다는 점이 중요하다. 이때 우리 미술계와 문화술행정이 과연 어떠했는가를 비판적으로 물어봐야 한다. 지금 아시아 작가들이 중심에 있는 지금 문화강국을 위해 무얼 했는가?
반복하지만 특히 현대미술은 다른 장르와 달리 파인아트 영역에서 문화 흐름을 이끌어가는 견인차 장르인데, 장르의 특성에 걸맞는 문화행정이 있었는지는 의문이다. 한국의 경우 작가들이 에너지가 있는 좋은 작가가 적지 않으나 우뚝 선 대형 작가가 드물다는 구조적 취약점이 있다. 이불, 서도호 등을 빼고는 그만그만한 작가들이 많다는 뜻이다.
그렇다면 이들을 글로벌 시장의 강자로 키워내지 못하고 있는 것은 작가의 개인적 역량 못지 않게 이 나라 문화행정의 부재 탓도 무시 못한다. 나는 그걸 포괄적으로 말해 우리 자신이 문명의 배꼽이라는 자존감의 실종이 문화행정의 실종의 큰 배경이라고 지적하려 한다.
거기에 매우 한국적 현상이 자리 잡고 있다는 것도 우린 잘 알고 있다. 뭐겠는가? 고약한 정치 바람이다. 블랙리스트가 이러니 저러니 하면서 내출혈을 반복하는 불행한 상황이 아직도 여전하다. 이런 상황에서 너른 시야와 먼 내일을 내다 본 일관성 있는 문화행정이 과연 가능할까? 고급문화와 관련해 우린 여전히 문화의 변두리가 맞다.
그렇다면 다음 번엔 1960년대 초만해도 현대미술의 변두리였던 미국이 어떻게 중심부로 벌떡 일어섰는지를 살펴볼 생각이다. 그 배경에는 문화 마인드를 가진 CIA의 개입도 썩 중요했다. 추상표현주의의 작가 잭슨 폴록을 띄워 현대미술의 간판 작가로 키우고, 그걸로 미국 문화의 자존심을 키운 것인데, 그런 걸 우리가 타산지석으로 삼아야 한다. /조우석 언론인
[조우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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