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펜=김소정 기자]미국은 두 차례 북미정상회담과 파생된 실무협상을 통해 북한의 비핵화 의지를 파악하는데 집중했던 것으로 보인다. 그 결과 하노이에서 열린 2차 북미정상회담에서 ‘노딜’을 선언했다. 그리고 미국은 지금 비핵화 개념부터 합의하자고 한다. 북한과 ‘말대말’ 합의부터 하겠다는 것으로 청와대도 간과해선 안 될 대목이다. 

싱가포르 1차 북미정상회담에서 북미는 새로운 관계수립을 약속했고, 한반도의 평화 구축을 위해 노력하기로 했다. 북한은 판문점선언에 따라 비핵화 추진을 약속했고, 6.25전쟁 미군 전사자의 유해 송환 및 수색을 약속했다.

합의문 조항의 순서가 이행 순서가 아닌 것은 싱가포르회담 뒤 북한에 있던 미군 전사자 유해송환이 먼저 이뤄진 것에서도 알 수 있다. 이후 미국은 2차 정상회담을 목표로 북한과 비핵화 협상을 본격화했다. 스티브 비건 대북특별대표를 임명해 본격적으로 실무협상을 벌였다. 이 과정에서 미국은 처음으로 비핵화 정의의 필요성을 언급했고, 마침내 김정은 위원장을 다시 만난 트럼프 대통령은 ‘빅딜’을 제시했다.
   
북한과 대화를 할수록 트럼프 대통령은 북한의 비핵화 정의가 궁금했을 것이다. 그래서 2차 북미정상회담을 통해 직접 만나 ‘빅딜’ 카드로 북한의 의중을 떠봤다. 그러면서 미국의 비핵화 개념도 제시했다. 트럼프 대통령의 행동은 북한과 ‘말대말’ 협상부터 하자는 것이었다. 하지만 북한은 이를 거부했다.

하노이회담이 결렬된 데에는 두 가지 의미를 부여할 수 있다. 첫째, 대화 과정에서 북한의 비핵화 개념이 미국의 그것과 다르다는 것을 인지했다는 것이다. 이는 트럼프행정부의 문재인 대통령에 대한 신뢰 문제와도 직결된다. 그동안 문 대통령은 김정은 위원장이 완전한 비핵화를 약속했다고 말해왔다.  

둘째, 미북이 비핵화 개념을 합의하게 되면 그 자체로 비핵화의 최종 상태에 대해 합의하는 것이다. 로드맵의 큰 틀이 완성되는 것이다. 물론 과거 북미 간 비핵화 합의 사례를 볼 때 이행까지는 험난한 과정이 남았지만 일단 ‘말대말’ 합의가 돼야 협상을 시작할 수 있다.

트럼프 대통령의 ‘노딜’은 북한은 물론 한국을 향한 메시지이기도 했다. 한국정부가 미국의 '노딜' 전략을 전혀 몰랐다는 것이 이를 방증한다. 더구나 하노이회담 이후에도 문 대통령은 트럼프 대통령에게 ‘굿 이너프 딜’을 권유했었다. 이 때문에 문 대통령은 워싱턴에서 트럼프 대통령과 ‘2분 독대’로 만족해야 하는 상황을 맞았다. 이후 국내외에서는 ‘자력갱생’을 외치고 있는 북한보다 상황을 읽지 못하고 있다는 평가도 나왔다.
  
   
▲ 2차 북미정상회담 이튿날인 2월28일(현지시간) 도널드 트럼프(오른쪽) 미국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베트남 하노이의 소피텔 레전드 메트로폴 호텔에서 회담 도중 심각한 표정을 하고 있다./VTV

문재인정부의 ‘굿 이너프 딜’은 아마도 북한의 영변 핵시설 폐기와 개성공단 및 금강산재개를 미국이 수용하는 상응조치를 이룬 뒤 그것을 동력 삼아 다음 단계의 비핵화를 협상해나간다는 구상이었을 것이다. 이는 용어만 바뀌었을 뿐 문 대통령이 처음부터 비핵화 해법으로 삼아온 ‘포괄적 합의, 단계적 이행’이다.

지금까지 청와대는 비핵화에 있어서는 미국과 북한이 합의하는 대로 수용하려는 태도였다. 대신 남북관계를 진전시키는 데에만 골몰해왔다. 하지만 북미 양측이 자신들의 패를 다 드러내놓고 교착 국면에 빠진 지금 상황에서도 청와대가 비핵화에 대한 정교한 전략을 세우지 않는다면 중재 역할에도 실패할 가능성이 높다. 무엇보다 미국과 북한이 그동안 ‘말대말’ 합의를 이루지 못한 데에는 청와대의 책임이 크다.
 
하노이회담에서 트럼프 대통령은 자신이 원하는 북한 비핵화의 최종 상태를 보여줬고, 김정은 위원장도 왜 핵개발을 중단하고 비핵화 협상에 나섰는지를 숨기지 못했다. 이런 상황에서 양측이 가장 바라는 것을 맞바꾸자는 미국의 제안은 당연한 것이었지만 북한은 이를 거부했다. 트럼프 대통령의 ‘빅딜’ 제안은 북한의 숨겨진 여러가지 속셈을 수면 위로 떠올렸다고 볼 수 있다.

분명한 것은 문 대통령이 쥐고 있는 ‘남북경협’이란 지렛대는 더이상 소용이 없을 정도로 북미는 서로를 다 파악했다. 남아있는 유일한 방법이란 북한이 국제사회가 납득할 만한 비핵화 정의를 내리고, 비핵화의 의지를 확인할 수 있는 조치를 이행하는 것이다. 제네바 합의와 9.19 공동성명에서도 이미 사용한 ‘영변 카드’로 제재를 풀 생각은 접어야 한다.
 
문 대통령의 중재 역할도 바뀌어야 한다. 이미 남북은 평양공동선언을 통해 비핵화에 합의했고, 실무협의도 한 상태이다. 5항에 ‘남과 북은 한반도를 핵무기와 핵위협이 없는 평화의 터전으로 만들어나가야 하며 이를 위해 필요한 실질적인 진전을 조속히 이루어나가야 한다는 데 인식을 같이하였다’고 명시하고 동창리 미사일엔진 시험장 폐기와 영변 핵시설 폐기를 언급했다. 이를 근거로 남북이 비핵화 실무협상도 진행해야 한다. 

톱다운 방식의 한계를 말하는 전문가들도 늘고 있다. 문장렬 국방대학교 교수는 통일연구원이 주최한 ‘4.27 판문점선언 1주년 성과와 향후 과제’ 세미나에서 “잘해봐야 사실 큰 틀밖에 안된다. 밑에서 실무적으로 협의해야 시행되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이 말도 새겨들어야 한다. 남북미가 비핵화에 대해 ‘말대말’ 합의부터 해야 미국의 부정적인 여론도 움직일 수 있고, 대북제재 완화도 논의할 수 있다.

1차 싱가포르회담 합의가 비핵화 협상을 시작하기로 미국이 결단한 것이었다면 2차 하노이회담 ‘노딜’은 비핵화 협상의 방향을 미국이 주도하겠다는 의지를 드러낸 것이었다. 그렇다면 3차 북미정상회담이 열리더라도 그 결과에 따라 미북 협상이 더 이상 지속되지 못하고 중단될 수도 있다고 봐야 할 것이다. 이렇게 볼 때 문 대통령의 중재도 향후 한차례 정상회담의 결과에 따라 성패가 갈릴 전망이다.  

문재인정부는 북미‧남북 관계의 진전에만 조바심을 내는 태도부터 버려야 한다. 그리고 한국 정치권에서도 초당적으로 협력할 수 있는 비핵화 로드맵을 마련해서 북한부터 설득해야 한다. 역사적인 북미정상회담을 이끈 문재인 대통령이 결실을 얻으려면 이제라도 보수정권도 이어받을 만한 평화정착 프로세스를 추진해야 한다. 그래야 야당은 물론 미국도, 주변국가도 설득할 수 있는 힘을 가질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