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 공기업 작년 한해 미사용 연차에 대한 보상금으로 1600억원을 지급한 것으로 확인됐다.
절반 가까이는 '연차휴가 사용촉진제도'를 제대로 시행하지 않아 500억원이 넘는 혈세를 낭비했다. 심지어 지급 총액이 100억원을 넘는 곳도 있고, 직원 1인당 500만원에 육박하는 공기업도 있었다.
시민단체 바른사회시민회의(바른사회)가 243개 주요 공기업을 대상으로 지난해 연차보상금제도와 지급현황을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연차보상금 지급총액과 미사용 연차일수를 공개한 206개 공기업이 지난해 말 지급한 연차수당 총액은 1635억원 규모다. 연차일수로는 3165년(115만5429일)에 달한다.
112개(46.1%) 공기업이 연차 사용에 대한 통보나 절차 등을 하지 않아 연차휴가 사용촉진제도를 제대로 시행하지 않았다. 이 중 53곳은 연차수당을 지급할 사유가 없는데도 518억 원을 지급한 것으로 나타났다.
기관별로 보면 가장 많은 연차보상금을 지급한 곳은 한국수력원자력(144억9000만 원)이다. 다음으로 ▲한전KPS(85억8500만 원) ▲대한지적공사(82억9879만 원) ▲국방과학연구소(73억2552만 원) ▲한국수자원공사(61억7100만 원)으로 뒤를 이었다.
또 1인당 평균 연차보상금을 따져보면 한국거래소가 497만 원으로 가장 많았다. 이어 ▲한국조폐공사 335만원 ▲코스콤 314만원 ▲예술의 전당 302만원 ▲㈜인천항보안공사 271만 원 순이다.
부당하게 연차보상급을 지급한 53개 공기업의 휴가 현황을 살펴보면 37개 기관이 각종 기념일, 체력단력휴가 등의 휴가제도를 만들어 평균 29.3일의 개인사정에 대해 휴가를 부여했다. 정년휴가, 포상휴가, 기타 등을 모두 고려하면 53개 공기업은 모두 복무규정외 별도의 휴가를 부여하고 있다.
현행 근로기준법에 따르면 1년간 80% 이상을 출석한 근로자에 대해 연간 15일의 유급휴가를 주도록 명시돼 있다. 또 근속연수에 따라 최대 25일 유급휴가가 가능하다.
근로기준법은 사용자가 근로자에게 서면촉구와 서면통보를 통해 적극적으로 연차휴가 사용을 장려하고 있다.
기간 만료 6개월 전을 기준으로 10일 이내에 근로자에게 미사용 휴가 일수를 알려주고, 언제 휴가를 사용할 것인지 휴가 사용에 대한 시기를 지정해 서명으로 요구할 수 있다.
사용자가 휴가사용 기간 만료 2월 전까지 휴가 사용 시기를 지정해 이를 근로자에게 서면으로 통보하고, 휴가사용 지정일에 근로자가 일을 하려는 경우 연차 수당 지급 의무가 면제된다.
하지만 절반에 해당하는 공기업이 이 제도를 제대로 지키지 않아 근로자의 근로시간을 단축하고, 기업의 임금부담을 줄인다는 당초 취지가 무색해졌다.
이번에도 공기업들은 국민의 혈세를 쌈지 돈으로 알고 제 멋대로 쓰고 있다는 비난을 피할 수 없게 됐다.
바른사회 관계자는 "각종 항목을 신설해 정작 연차휴가는 사용하지 않고 연차수당을 지급하는 사례가 있다"며 "공기업들의 불합리한 휴가를 폐지하고 현행 연차휴가를 적극 활용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강조했다.
이어 "장기적으로는 국제기준에 맞춰 연차보상금 지급을 폐지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며 "연차휴가를 적극적으로 사용할수 있는 제도적, 사회적인 뒷받침이 마련돼야 한다"고 덧붙였다.
이에 대해 일부 공기업들은 연차 수당을 부당 지급하지 않았다고 반박했다.
한국거래소 관계자는 "우리는 근로기준법이 권장하는 전체 연차휴가 중 최소 25%를 소진하도록 하고 있다"며 "평균 근속연수가 18년에 달하기 때문에 1인당 연차보상금도 많이 지급된 것"이라고 해명했다.
이 관계자는 "연차휴가 사용촉진제도에 따라 서면촉구와 서면통보를 모두 하고 있다"며 "연차휴가 외에 별도 휴가는 전량 폐지했고, 연차수당도 부당지급하고 있지 않다"고 강조했다.
또 한국수력원자력 관계자는 "우리는 직원수가 1만 명에 달하기 때문에 지급된 연차보상금 총액도 공기업 중 가장 많이 나타난 것"이라며 "1인당 평균 연차 보상금은 약 150만 원 정도"라고 반박했다.
이어 "우리는 연차휴가로 최소 12일은 가도록 권고하고 있고, 안가더라도 이에 해당하는 연차보상금은 지급하지 않는다"며 "휴가를 가고 싶어도 업무가 바빠 못가는 실정이다. 연차휴가 외에 별도 휴가는 꿈도 못 꾼다"고 토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