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의 기교로 대중에 아첨하는 사이비 정치인의 연설을 질타한 소크라테스

박경귀의 행복한 고전읽기(23)-올바른 연설술의 조건을 일깨우다. 불의를 고발하고, 국민의 도덕의식을 고양시켜야 올바른 연설-플라톤(BC 427~BC 347)의『고르기아스』

현대는 지식이 넘치는 사회이지만, 역설적으로 가치관의 혼돈을 겪고 있는 지혜의 가뭄시대이기도 합니다. 우리 사회가 복잡화 전문화될수록 시공을 초월한 보편타당한 지혜가 더욱 절실한 이유이기도 합니다. 고전에는 역사에 명멸했던 위대한 지성들의 삶의 애환과 번민, 오류와 진보, 철학적 사유가 고스란히 녹아있습니다. 고전은 세상을 보는 우리의 시각을 더 넓고 깊게 만들어 사회의 갈등을 치유하고, 지혜의 가뭄을 해소하여 행복한 세상을 만드는 밑거름이 될 것입니다. ‘사단법인 행복한 고전읽기미디어펜은 고전 읽는 문화시민이 넘치는 품격 있는 사회를 만드는 밀알이 될 <행복한 고전읽기>를 연재하고자 합니다. [편집자주]

   
▲ 박경귀 한국정책평가연구원장

소크라테스와 플라톤의 철학읽기는 늘 긴장 속에 간간히 숨어있는 해학이 있어 즐겁다. 소크라테스가 집요하게 캐어묻는 ‘엘렝코스(elenchos)’를 통해 독자들은 점점 그의 철학적 사유의 치밀함 속으로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빨려 들어가고 만다.

또 상대 대화자가 소크라테스의 논박에 자신의 논리적 모순이 하나하나 발견되어 어쩔 줄 모르고 궤변에 빠지는 대목이 웃음을 주기도 하지만, 독자들은 바로 그 과정이 진정한 지혜의 탐구과정임은 알게 된다.

 

『고르기아스』 또한 소크라테스가 프로타고라스와 함께 소크라테스 못지않게 유명했던 연설의 대가 고르기아스, 아들뻘 되는 당돌하고 혈기 넘치는 젊은이 폴로스, 연설가였던 칼리클레스와 나누는 대화록이다.

담론의 주제는 ‘연설술(수사술)’로 번역되는 '레토리케(rhētorikē)'다. 하지만 연설이 현실의 삶에 미치는 영향을 논의하면서 자연스럽게 어떻게 살아야 행복한 삶인가 하는 도덕론과 행복론으로 확장된다.

플라톤의 대화편 43편에 등장하는 소크라테스는 그의 스승 소크라테스임과 동시에 플라톤 자신이기도 하다. 초기 작품들에서는 주로 스승 소크라테스의 철학을 충실하게 전달하는데 주력하는 경향이 많았고, 중기 이후 및 소크라테스 사후의 작품에서는 플라톤 자신의 고유한 철학을 담는데 더 힘을 쓴다.

정치인의 연설술은 ‘아첨술’에 불과하다

『고르기아스』는 초기 작품으로 소크라테스의 철학적 관점이 두드러지게 드러난 작품으로 방대한 분량의 『국가』와 『법률』 다음으로 중요한 가치는 지니는 고전이다. 소크라테스와 폴로스의 대화의 초기 쟁점은 연설술의 가치와 중요성이다. 폴로스는 전형적인 소피스트 옹호론자로 보인다.

연설술은 설득의 장인으로 사람들을 지배하는 효과적인 힘을 갖고 있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소크라테스는 연설술은 특별한 기술의 활동이 아니라 기쁨과 즐거움을 만들어 내는 ‘익숙한 경험’에 불과할 뿐이라며 조근 조근 논박한다.

“언제나 즐거운 것을 미끼로 우매함을 사냥하고 속여서 자신이 가장 존경받을만한 자처럼 보이게”하는 ‘아첨술’에 다름 아니라는 얘기다. 당시 그리스 시민들에게 갖가지 말의 기교와 성찬으로 아부하고 현혹시키던 ‘사이비 정치인’들 대한 소크라테스의 신랄한 비판의식을 보여준다.

소크라테스는 당대에 유명했던 정치인들이 시민들에 아첨했던 구체적인 여러 사례를 든다. 재판에 배심원으로 참여했던 시민들에게 일당을 지급하는 제도를 만든 페리클레스도 비판의 대상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정치가들이 시민들에게 공동선에 대한 인식을 일깨워 스스로 참여하도록 노력하지 않고, 시민들의 이기적 욕구만 자극한다는 차원에서 그렇다. 대중에게 아부하려는 정치인들의 경향은 수천 년 전이나 오늘날이나 다를 것이 없는 것 같다. 

 

   
▲ 소크라테스 좌상, 아테네 학술원 앞에 조상되어 있다. 뒤의 입상은 음악의 신이자 학예의 신인 아폴론 신상이다. ⓒ박경귀

소크라테스는 연설가들이 공동체에 이로운 결과를 가져올 것인가, 해로운 결과를 가져올 것인가 라는 관점에서 논점을 확대한다. 소크라테스는 고르기아스에게 연설가가 옳고 그름에 관한 앎(지혜)를 가지고 있는가, 도덕적 문제에 관해 앎(지혜)를 가지고 있는 가 추궁한다.

고르기아스는 정의와 부정의에 대한 문제도, 도덕적 문제에 대해서도 명쾌하게 응답하지 못한다. 연설술을 배운 학생이 그것을 나쁘게 사용한다고 해서 가르친 선생을 비난하고 책임을 물어서는 안 된다고 강조함으로써 결국 연설술 선생들이 학생들의 도덕적 삶, 정의로운 삶에 대한 스승의 역할을 제대로 해내지 못하고 있다는 점을 인정하는 자가당착에 빠진다.

더 흥미로운 논박은 혈기왕성한 폴로스와의 대화에서 이루어진다. 폴로스는 연설술의 힘을 신봉한다. 그는 연설술로써 동료 시민들을 다스리고 전문가들을 자신의 지배 아래 둠으로써 자신의 자유를 확보하고 권력을 극대화할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참주적 권력을 선호하는 것이다. 권력의 화신인 정치인들의 신앙적 속성을 그대로 보여주는 듯하다.

이런 폴로스의 관점은 정당하든 부당하는 해를 당하는 것이 해를 입히는 것보다 더 나쁘고 비참하다는 믿음에서 나온다. 자신이 부당하게 해를 당하지 않기 위해 연설의 힘으로 다수 시민들과 전문가들을 지배하겠다는 욕망이 그를 지배한다.

폴로스는 자신이 불의를 당하는 처지가 되지 않게 위해 불의를 행하는 입장에 서겠다는 얘기다. 그에게는 연설술이 “불의를 전혀 당하지 않거나 최대한 적게 당하게 해주는 기술”이 되는 셈이다. 여기서 폴로스의 이기적 관점을 뒤집는 소크라테스의 도덕 원칙이 나온다.

정의를 위해 연설하고 정의롭게 실행하라

소크라테스는 ‘불의를 저지르는 것이 불의를 당하는 것보다 더 나쁘다.’는 명제를 제기한다. 불의를 저지르는 것은 나쁘고 수치스러운 일이기 때문이다. 나아가 ‘불의를 저지르고 처벌받지 않는 것이 가장 나쁜 것이다.’라고 규정한다.

불의를 행하고도 대가를 치르지 않을 경우, 불의의 저지른 사람의 영혼의 구제 기회가 날아가기 때문이다. 소크라테스는 연설술이 이런 불의를 고발하고 제거하는 데 사용되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는 것이다. 그것이 공동체의 행복을 증진시키는 일이기 때문이다. 정치가 도덕적 원칙에 기초하지 않으면 공동체의 행복 달성은 요원해진다.

자신의 성공적 삶의 방편으로, 또는 권력 쟁취의 수단으로 연설술을 추구하는 사람들에게는 대중을 효과적으로 설득시키는 방법이나 유려한 표현 기법 등이 중요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소크라테스는 연설가(정치가)들이 권력의 획득보다 시민의 도덕의식을 고양시키는 일에 더욱 매진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소크라테스는 “정치가가 해야 할 일은 시민들이 최대한 훌륭해지도록 돌보는 것”을 거듭 주장한다. 하지만 연설가(정치인)들이 그의 호소에 귀를 기울이지 않는 당시 풍토를 소크라테스는 너무나 잘 인식하고 있는 듯하다. 하여 그가 칼리클레스에게 하는 말은 자신만이라도 이런 길을 걸어가야겠다는 비장한 공언으로 들린다.

“나는 많은 사람들로부터 얻는 명예들과는 작별하고, 진리를 연마하면서 내가 할 수 있는 참으로 가장 훌륭한 자로 살고 죽을 때도 그렇게 죽으려고 노력할 거네.” 플라톤이 철학자인 소크라테스를 ‘참된 정치인(연설가)’이라 부른 까닭도 이런 맥락이 아닐까? 그에게서 『국가』에서 희구하던 철인왕의 한 단면을 보고 있는 듯하다.

플라톤은 『고르기아스』에서 도덕철학과 정치가 연설술을 가교로 어떻게 연결되어야 하는 가에 대한 통찰을 제시한다. 플라톤은 소크라테스의 주장을 통해 이상국가 수립을 위해 올바른 정치가의 상을 확립하고 이에 부합하는 삶의 방식과 도덕 원칙을 정당화하려는 의도를 선명하게 드러내고 있다.

플라톤의 철학적 가치를 제대로 확인할 수 있는 작품이다. 고대 말기 신플라톤학파의 학원에서 『고르기아스』가 『알키비아데스 I』과 함께 플라톤 철학의 입문서로 사용된 것도 그 때문이다.

플라톤은 “연설술은 언제나 정의로운 것을 위해 사용해야 하고 다른 모든 행위도 그렇게 되어야 한다.”는 소크라테스의 강조를 통해 연설술이 도덕철학에 기초해야 함을 명확히 한 것이다. 정치인들이 권력 쟁취의 수단으로서의 연설술을 배우려 하지 말고 정치에 나서기 전에 먼저 덕을 단련하라고 주문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국민의 단기적 즐거움, 이기적 욕망을 더욱 부채질하는 선동 연설로 자신의 권력 욕망을 달성하려 애쓰는 꼼수 정치인들이 판을 치는 요즘, 정치인들이 읽고 성찰해 볼 대목이 많다. /박경귀 행복한 고전읽기이사장, 한국정책평가연구원장

   
▲ 『고르기아스』, 플라톤 지음, 김인곤 옮김, 이제이북스(2011), 367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