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최고의 골프칼럼니스트인 방민준 전 한국일보 논설실장의 맛깔스럽고 동양적 선(禪)철학이 담긴 칼럼을 독자들에게 배달합니다. 칼럼에 개재된 수묵화나 수채화는 필자가 직접 그린 것들이어서 칼럼의 운치를 더해줍니다. 주1회 선보이는 <방민준의 골프탐험>을 통해 골프의 진수와 바람직한 마음가짐, 선의 경지를 터득하기 바랍니다. [편집자주] |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시지프스(Sisyphus)의 형벌을 고스란히 물려받은 자가 바로 골퍼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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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방민준 골프칼럼니스트 |
시지프스는 바람의 신인 아이올로스와 그리스인의 시조인 헬렌 사이에서 태어났다. 신화에 따르면 시지프스는 '인간 중에서 가장 현명하고 신중한 사람'이었다고 한다. 그러나 신들의 입장에서는 엿듣기 좋아하고 입이 싸고 교활하며 특히 신들을 우습게 여긴다는 점 때문에 눈 밖에 난 인간으로 낙인찍혔다.
천부의 도둑질을 타고난 전령의 신 헤르메스는 태어난 바로 그날 저녁 강보를 빠져나가 이복형인 아폴론의 소를 훔친 뒤 강보에 들어가 천진난만한 아기처럼 시치미를 땠으나 이를 알아챈 시지프스가 아폴론에게 고자질하고 아폴론은 이를 다시 신들의 왕인 제우스에게 고발했다. 이 사건으로 시지프스는 인간이 감히 신들의 일에 끼어들었다는 이유로 헤르메스는 물론 제우스의 눈총까지 받았다.
이런 차에 시지프스가 결정적으로 괘씸죄를 저지른다. 어느 날 제우스가 독수리로 둔갑해 요정 아이기나를 납치해 가는 현장을 목격한 시지프스는 아이기나의 아버지인 강신(降神) 아소포스를 찾아가 자신의 부탁을 들어주면 딸이 있는 곳을 가르쳐 주겠다고 제안했다.
당시 시지프스는 코린토스를 세워 다스리고 있었는데 물이 귀해 백성들이 몹시 고생하고 있었다. 시지프스는 코린토스에 마르지 않는 샘을 하나 만들어 달라고 요청했다. 딸을 찾는 게 급했던 아소포스는 시지프스의 청을 들어주기로 했고 시지프스는 그에게 제우스가 아이기나를 납치해 간 섬을 가르쳐 주어 구출되도록 했다.
자신의 비행을 엿보고 고자질한 자가 시지프스임을 안 제우스는 저승신 타나토스(죽음)에게 당장 시지프스를 잡아오라고 명령했다. 그러나 제우스의 보복을 예상한 시지프스는 타나토스가 나타나자 쇠사슬로 묶어 감옥에 가두었다. 명이 다한 사람을 저승으로 데려가는 저승사자가 묶여 있으니 당연히 죽는 사람이 없어졌고 명계(冥界)의 왕인 하데스는 이 황당한 사실을 제우스에게 고했고 제우스는 전쟁신 아레스를 보내 타나토스를 구출하게 했다.
시지프스는 호전적이고 잔인한 아레스에게 맞섰다간 온 코린토스가 피바다가 될 것임을 알고 순순히 항복했다. 타나토스의 손에 끌려가면서 꾀를 낸 시지프스는 아내 멜로페에게 자신의 시신을 화장도 매장도 하지 말고 광장에 내다 버리고 장례식도 치르지 말라고 은밀히 일렀다.
저승에 당도한 시지프스는 하데스에게 이렇게 읍소했다. "아내가 제 시신을 광장에 내다버리고 장례식도 치르지 않은 것은 죽은 자를 수습하여 저승에 이르게 하는 이제까지의 관습을 조롱한 것인즉 이는 곧 명계의 지배자이신 대왕을 능멸하는 것이니 제가 다시 이승으로 돌아가 아내를 벌한 뒤 다시 오겠습니다. 그러니 저에게 사흘간만 말미를 주소서."
시지프스의 꾀에 넘어간 하데스는 그를 다시 이승으로 보내 주었다. 그러나 시지프스는 그 약속을 지키지 않았다. 하데스가 몇 번이나 타나토스를 보내 으르고 경고했지만 그때마다 시지프스는 온갖 말재주와 임기응변으로 위기를 피했다. 그러나 인간이 신을 이길 수 없는 법, 마침내 시지프스도 타나토스에 끌려 명계로 갈 수밖에 없었다.
명계에서 그에게 주어진 형법은 큰 바위를 높은 바위산 꼭대기까지 밀어 올리는 일이었다. 시지프스가 온 힘을 다해 바위를 꼭대기까지 밀어 올리면 바로 그 순간 바위는 산 아래로 굴러 떨어졌다. 그러면 시지프스는 다시 바위를 밀어 올려야 했다. "바위가 늘 그 꼭대기에 있게 하라"는 하데스의 명령에 따라 시지프스는 다시 굴러 떨어질 것을 뻔히 알면서도 산 위로 바위를 밀어 올려야 했다.
바위를 산 정상에 올려놓으면 곧 아래로 굴러 떨어지고 또다시 바위를 산위로 밀어 올리는 일을 되풀이하는 시지프스의 숙명은 골퍼들의 그것도 너무도 흡사하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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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골프는 항상 내가 서있는 자리가 아닌 그 다음 계단을 향하고 있다. 인류가 발명한 놀이 또는 스포츠 중에 골프만큼 중독성이 강한 운동을 찾기 어려울 것이다./삽화 방민준 |
처음 골프채를 잡았을 때 대부분 100타만 깨면 족하다고 소박한 기대를 한다. 그러나 100타를 깨고 나면 언제 그랬냐 싶게 90대를 목표로 세우고 80대 타수를 꿈꾼다. 80대 타수만 칠 수 있으면 더 이상 욕심을 부리지 않겠다고 호언하고도 80대를 달성하는 순간 그의 꿈은 80대 이하 싱글스코어로 대체된다.
이 정도 선에서나마 만족할 줄 안다면 골프가 그렇게 고통스런 운동이 안 될 텐데 일부는 이븐파 심지어 언더파를 꿈꾸며 땀과 정성을 쏟는다. 그럼 프로골퍼에 가까운 수준까지 도달했다고 골퍼의 꿈이 멈추는 것일까. 그렇다면 골프를 시지프스의 형벌이라고 할 수 없을 것이다.
이제부턴 나이와 함께 나타나는 육신의 퇴행을 거스르려는 모험이 시작된다. 60대가 넘어서도 70대 혹은 80대 스코어를 유지하려고 발버둥치고 드디어는 나이와 같은 스코어를 기록하는 에이지 슛(age shoot)이라는 가당찮은 꿈을 갖고 골프와 씨름한다.
이 모든 노력에도 불구하고 “이만하면 됐다!”고 받아들일 수 있는 순간은 찾아오지 않는다. 골프는 항상 내가 서있는 자리가 아닌 그 다음 계단을 향하고 있다. 다음 계단 위에는 또 다른 계단이 기다리고 있다. 이 계단은 눈을 감을 때까지 결코 끝나지 않는다.
이런 예를 어떤 스포츠에서 찾을 수 있을까. 라운드를 돌고 나서 바로 다음 라운드를 꿈꾸고 투덜투덜 대며 연습장을 찾으면서도 싫다는 생각이 없다. 인류가 발명한 놀이 또는 스포츠 중에 골프만큼 중독성이 강한 운동을 찾기 어려울 것이다.
‘영원한 아마추어’로 ‘구성(球聖)’으로 추앙받은 바비 존스가 “골프란 그 누구도 정복할 수 없다. 스코틀랜드 사람이 말했듯 골프란 끝이 없는 게임이다. 오늘날까지 그 누구도 골프를 자신이 생각한대로 플레이한 사람은 없었고 또 그 이상 절대로 더 잘 칠 수 없었다고 만족할 만큼 흡족하게 잘된 라운드를 해본 사람도 없을 것이다. 그래서 골프가 모든 게임 중에서 가장 위대한 것이다.”라고 설파한 이유를 알만 하지 않은가.
하릴 없이 아더 발포어(전 영국수상)가 “인간의 지혜로 발명한 놀이 중에 골프만큼 건강과 보양, 상쾌함과 흥분, 그리고 지칠 줄 모르는 즐거움을 주는 것도 없다.”라는 헌사를 바쳤을까.
골프와 인연을 맺은 사람은 시지프스의 그것과 같은 가혹하기 그지없는 형벌을 짊어져야 하지만 자발적으로, 그것도 고통 속의 희열을 맛보면서 바위를 산 꼭대기로 밀어올린다는 점에서 시지프스와는 다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