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TBC '슈퍼밴드' 본선 진출 53명 음악 천재 맞아
우리 젊은이들 잘 키워내 문화 발신국가로 가야
   
▲ 조우석 언론인
이 음악예능 프로그램의 등장 앞에 찬사란 찬사는 이미 다 쏟아졌다. '안방의 명품 콘서트'란 평가도 대세다. 시청률은 2%대를 유지하지만 볼 사람은 다 본다는 뜻인데, JTBC의 사상 첫 밴드 오디션 프로그램인 '슈퍼밴드' 얘기다. 요즘 그거 빼고선 음악 얘기 못 한다.

싸이에서 미국의 유명밴드 콜드플레이까지 그 프로에 입덕('매니아가 됐다'는 뜻의 네티즌 용어)했음을 고백했다. 내 경우 뒤늦게 VOD로 봤고, 요즘 유튜브의 클립을 무한반복 시청한다. 그 새 조회수 100만 뷰를 넘긴 것도 있을 정도이니 좋은 음악에 대한 사람들의 목마름이 그만큼 컸다. 즉 이 프로는 TV가 제공할 수 있는 음악 서비스의 끝판왕이 맞다. 

매니아의 세계였던 밴드가 대중 곁에 다가서는 분수령이 될 것도 분명한데, 보컬과 댄스 위주의 오디션 프로가 한 단계 도약하는 순간을 우린 지금 흥미롭게 지켜보고 있는 중이다. 사실 때가 됐다. 걸 그룹 위주의 댄스음악이 20년 독재하는데 따른 음악시장 왜곡을 정리할 호기가 지금이다.

   
▲ JTBC의 사상 첫 밴드 오디션 프로그램인 '슈퍼밴드'가 안방의 명품 콘서트'란 평가를 얻고 있다. /사진=JTBC '슈퍼밴드' 캡쳐

댄스음악 20년 장기 독재 끝낼 때

지난 1년 그럴 조짐도 부분적으로 보였는데, 첫 징후가 지난해 10월 개봉한 영화 '보헤미안 랩소디' 대박이었다. 그 파급력 탓인지 인디밴드 잔나비가 요즘 음원차트에서도 인기몰이하는 것도 전에 없던 일이고, 밴드 엔플라잉도 함께 뛰는 중이다. 올 초 발표한 그들의 음악 '옥탑방'은 한 달 만에 1위까지 치고 올라오며 밴드음악의 잠재력을 보여줬다.

이런 무르익은 분위기에 고속도로를 뚫어버린 쾌거가 '슈퍼밴드'인데, 역시 대견한 건 젊은 천재들이다. 내겐 우리 시대 빛나는 젊은 음악 천재들의 면면을 살펴보는 재미가 이만저만한 게 아니다. 본선 1라운드에 올라온 14개 팀 53명 하나하나가 보석이다.

첫 테이프를 끊었던 조원상팀, 그 팀과 대결해 했던 하현상팀도 훌륭했지만, 뒤이어 등장했던 뮤지션들이 다 그랬다. JTBC는 당초 음색 천재로 하현상-이찬솔-이주혁 등 세 명을 띄웠지만, 그 뿐이랴? 김우성(밴드 '더 로즈'의 보컬)-지상의 존재도 뚜렷하다. 걸출한 드러머 세 명 정광현-강경윤-김치헌의 능력도 어디까지인지 아직 모른다.

클래식에서 전향한 홍진호(첼로)-이나우(피아노)-벤지(바이올린)도 위력적인데, 내 경우 특히 이나우-벤지를 응원하고 있다. 이러다보니 시청자들이 "이 많은 천재들이 다 어디에서 왔지?" 이구동성이다. 물론 "천재란 말을 그렇게 쉽게 써선 안된다"는 반론도 만만치 않다.

좋다. 논란의 여지가 있겠지만, 그들 모두를 천재로 예우하는 게 맞다는 게 오늘 내 얘기다. 한국 사회에 실로 인색한 게 영웅이란 호칭과, 천재란 평가다. 사람 키우지 않는 분위기 탓인데, 오늘은 그와 달리 음악 내적인 분석이다. 즉 음악 천재란 호칭에 인색한 건 알게 모르게 우리가 베토벤-모차르트만을 천재로 상정하고 있는 탓이다.

영감에 사로잡히는 순간 그들은 샘솟는 멜로디를 받아 적는 썩 특별한 능력을 가진 사람이라는 게 우리의 상식이다. 실제로 두 사람이 '나는 그렇게 완벽하게 작곡했다'고 밝힌 글이 일부 남아있다. 모차르트는 1815년 편지에서 이렇게 서술한 바 있다.

"거의 완성된 형태로 내 마음에 (악상이) 있어서 나는 회화나 조각상을 보듯 한눈에 살펴볼 수 있었고 종이에 옮겨 적었다"고 털어놓았다. 베토벤도 그 비슷한 증언을 남겼다. "나는(베토벤은) 오랫동안 악상을 마음에 담아뒀다. 그게 만족스러울 때까지 수정하고 또 수정했다. 그렇게 완전한 멜로디를 마치 주형(鑄型) 뜨듯이 종이에 옮겼다. 금방이었다."    

   
▲ 모차르트와 베토벤. /자료=조우석 제공

모차르트-베토벤의 악보를 볼래요?

그게 사실일까? 누구도 의심치 않았던 모차르트와 베토벤의 천재성이란 그들의 사후 한참 뒤 등장했던 '신화'라는 걸 나는 10년 전 펴낸 <굿바이 클래식>에서 지적한 바 있다. 즉 천재의 신화는 당대에는 존재한 바 없었고, 사후 100년쯤 뒤 유포되기 시작했다.

그런 숨겨진 진실이 밝혀진 것이 최근의 일이다. 이를테면 모차르트의 편지는 그것을 첫 소개했던 잡지의 편집자가 지어낸 말임이 확인됐다. 베토벤도 비슷했다. 실제 베토벤의 한 미완성 피아노 협주곡 자필 악보를 들여다보라. 무수한 퇴고와 수정이 반복되고 있다. 소설가들이 원고에 수정작업을 무한 반복하는 과정과 너무도 같다.

"쓰고 또 쓰고, 지우고 다시 초고를 쓰는 험난한 과정은 베토벤이 '지워지지 않는 기본적 악상'을 차곡차곡 담는다는 말이 거짓임을 보여준다. 스케치를 유심히 들여다보면 베토벤이 붙잡기 어려운 모호한 아이디어에 정교한 표현을 부여하느라고 무진 애를 쓰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음악학자 니콜라스 쿡이 지은 <음악이란 무엇인가>에 나오는 말인데 내 주장도 이렇다. 그동안 우리는 모차르트-베토벤만을 천재로 숭배해왔지만, 그들이야말로 우리가 상정한 천재 개념에 들어맞지 않는다. '슈퍼밴드' 본선에 올라온 53명이 하는 것처럼 음악행위를 했다는 게 진실에 가깝다. 그렇다면 '슈퍼밴드' 53명을 천재로 부르지 못할 이유는 하나도 없다. 

음악의 우열 개념도 의미 없다. 클래식이 높은 음악이고, 대중음악이 낮은 음악이라고 믿는 이는 사실 존재하지 않는다. 클래식이란 것도 18,19세기 당시엔 동시대의 젊은 음악의 하나였을 뿐이다. 그리고 지금 '슈퍼밴드' 참가자들 역시 21세기 살아있는 한국음악을 생산 중이다.

좋다. 오늘 음악 천재론은 이유가 있다. 한류를 말하고 K팝을 말하는 지금 우리의 자랑스런 젊은이들을 잘 키워내자는 제안이다. 즉 그들을 천재로 예우하면서 그 힘으로 문화 발신(發信) 국가로 함께 뻗어나가자는 제안이다. 하나 더, 이참에 '재즈의 모차르트-베토벤'로 불리는 듀크 엘링턴이 어떻게 작곡하고 연주했는지에 관한 또 다른 진실을 다음 회에 알아보자. 듀크의 음악행위야말로 '슈퍼밴드' 참가자에게 너무도 딱 맞는 모델이었다. /조우석 언론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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