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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병희 서원대 광고홍보학과 교수 |
문화예술기관이나 단체에서 문화예술 시장 전체를 대상으로 마케팅 활동을 전개할 수도 있겠지만 그렇게 하면 기대하는 효과를 거두기 어렵다. 어떤 문화예술작품을 향유할만한 예술 소비자 계층을 대상으로 그들의 욕구와 기대를 충족시킬만한 마케팅 활동을 전개했을 때와 그렇게 하지 않았을 경우에는 차이가 많다. 이처럼 특정한 어떤 대상을 겨냥하는 경우를 '표적 마케팅' 활동이라고 한다.
즉, 어떤 공연이나 전시회를 기획할 때 전체 시장을 대상으로 하지 않고 어떤 세분 시장을 설정해 거기에 집중하는 활동이 표적 마케팅이다. 문화예술 소비자의 욕구나 기대가 더욱 다양해지면서 시장 세분화는 마케팅 전략의 필수 요인이 되었다.
더욱이 쓸 수 있는 마케팅 예산이 지극히 제한적인 문화예술 시장에서는 시장 세분화가 전략적 의사결정을 위한 출발점이다. 예산이 부족한 문화예술기관이나 단체에서 주어진 예산을 세분화된 시장에 집중하면 그렇지 않을 때보다 마케팅 효과가 높기 때문이다.
먼저 시장 세분화를 통해 전체 문화예술 시장을 동질적인 하위 집단으로 나누어야 한다. 그 다음에 문화예술기관이나 단체에서 마케팅 활동을 가장 효율적으로 전개할 수 있는 표적시장을 선정해야 한다. 적정 규모 이상의 세분 시장만이 마케팅 활동의 효과를 기대할 수 있기 때문에, 세분 시장은 결국 포지셔닝(positioning) 전략을 수립하는데 필요한 기초 자료가 되기도 한다.
문화예술 소비자들의 기대와 욕구는 각각 다르다. 클래식 공연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대중가수의 공연을 좋아하는 사람들도 많다. 풍경화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종교화를 선호하는 사람도 있다. 예를 들어, 그림 하나를 보려고 벨기에 브뤼셀에서 북쪽으로 자동차로 45분을 기꺼이 달려가는 열성파도 있다. 플랑드르 지방의 겐트(Gent, 헨트)에 소재하는 성 바보대성당(Saint Bavo Cathedral)에 가서 종교화의 걸작으로 손꼽히는 얀 반 에이크(Jan van Eyck, 1395-1441)의 <겐트 제단화(Ghent Altarpiece, 3.4m × 4.6m)>(1432)를 보기 위해서이다.
다들 알다시피 이 그림은 1425년에 얀의 형인 휘베르트 반 에이크가 밑그림을 그리기 시작하다 중간에 죽자 유화의 완성자로 알려진 동생 얀 반 에이크가 1432년에 완성하였다. 이 제단화는 그림 12폭을 경첩으로 연결했는데, 그 중 8개는 양면에 그림을 그려 구원의 신비를 표현했다. 아랫단 중앙에 있는 <어린 양에 대한 경배>는 얀의 대표작이기도 하다.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예수님의 군대, 공정한 심판관, 사도, 천사, 선지자, 장로, 성녀, 참회자, 순교자, 은둔자, 순례자들이 하느님의 어린 양에게 경배를 드리기 위해 모인 장면을 실로 감동적으로 표현했다. 정교화에 열광하는 열성파들은 방탄 유리장 속에 보관된 이 그림을 10분정도 감상하려고 먼 길을 달려와도 전혀 수고스럽게 생각하지 않듯이, 문화예술 소비자들의 기대와 욕구는 이처럼 각각 다르다고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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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얀 반 에이크의 <겐트 제단화> (1432). /자료=김병희 교수 제공 |
모든 문화예술 소비자의 기대를 충족시킬 수 있는 문화예술작품은 존재하지 않는다. 결국 문화예술작품에 대한 기대와 욕구에 따라 문화예술 소비자 집단을 나눠보는 세분화 작업을 할 수 밖에 없다. 시장 세분화란 문화예술 소비자의 기대와 욕구, 문화예술 소비 행동, 문화예술교육 경험 같은 어떤 기준에 따라 문화예술 시장을 작은 단위로 쪼개는 작업이다. 경우에 따라서 어떤 세분 시장에 마케팅 활동을 집중함으로써 문화예술 소비자의 욕구나 기대에 신속히 응답할 수도 있다.
시장 세분화를 하는 가장 중요한 이유는 문화예술 마케팅에 활용할 수 있는 예산이 한정되어 있기 때문이다. 한정된 인력과 재원을 가장 반응도가 높을 것으로 예상되는 세분 시장에 집중함으로써 더 높은 마케팅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시장 세분화는 그래서 문화예술 마케팅 전략을 수립하는 출발점이 되기도 한다. 문화예술작품에 대한 욕구와 소비 행동이 비슷한 소비자들을 동질적인 집단으로 묶어, 마케팅 활동을 전개하면 그렇지 않을 때보다 효율성이 높게 마련이다.
국내의 최근 사례를 살펴보자. 서울시립미술관에서 소공연, 백스테이지 투어, 남산 관광을 연계한 패키지 상품인 '남산문화탐방'을 아동과 청소년에게 맞춰 진행한 사례는 인상적이다. 예술의전당에서는 청소년이라는 세분 시장을 설정해 '청소년음악회'를 실시해 호평을 받았다.
정동극장에서는 직장인, 청소년, 주부를 대상으로 시장 세분화 전략을 적용함으로써 문화예술 소비자의 접근성을 높였다. 광주문화예술회관에서는 청소년을 대상으로 ‘클래식 큐레이터: 낭만에 대하여’라는 청소년음악회를 개최했다. 인상주의 시대의 클래식 음악과 미술작품을 한자리에서 보고 느낄 수 있도록, 청소년의 기대와 욕구를 반영해 시장 세분화 전략을 적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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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광주문화예술회관의 <낭만에 대하여> 포스터 (2019). /자료=김병희 교수 제공 |
문화예술 마케팅 기획자들은 특성이 다른 예술 소비자들의 문화예술작품에 대한 욕구를 어떻게든 파악하려고 노력해야 한다. 세분 시장을 바탕으로 차별화된 소비자 특성을 분석해보면 예술 소비자들의 문화예술작품에 대한 욕구를 파악할 수 있을 것이다. 결국 세분화한 시장에서 하나의 표적시장을 결정해 문화예술 마케팅 활동을 전개하면 놀라운 성과를 기대할 수 있다. 문화예술기관이나 단체에서 시장 세분화를 실시했을 때 기대할 수 있는 마케팅 효과는 다음과 같다.
첫째, 시장 상황을 정확히 파악함으로써 문화예술 시장에서 유리한 전략을 선점할 수 있다. 문화예술기관이나 단체에서 시장 세분화를 실시하면 문화예술 소비자의 욕구와 기대를 구체적으로 파악할 수 있다. 그렇게 되면 시장의 현실을 더욱 현실적인 맥락에서 이해함으로써 문화예술 시장의 흐름에 알맞게 능동적으로 대응할 수 있다.
둘째, 문화예술기관이나 단체의 경쟁 구도에 알맞게 유연하게 대응 전략을 구사할 수 있다. 문화예술기관이나 단체에서 시장 세분화를 실시하면 문화예술 시장의 세분화된 특성이 나타나고, 문화예술기관이나 단체의 강점과 약점도 드러나게 마련이다. 분석한 내용을 고려해 주어진 전체 예산을 배분하고 마케팅 비용을 투입할 수 있다.
셋째, 목표하는 표적 시장을 설정한 다음 그에 가장 적합한 마케팅 전술을 구사할 수 있다. 문화예술기관이나 단체에서 시장 세분화를 실시하면 소비자의 욕구와 기대에 부응하는 전략을 전개하기가 더욱 쉬워진다. 세분화 결과에 따라 나타난 세분 시장의 매력도에 따라 문화예술 마케팅 활동을 집중해 상당한 성과를 기대할 수 있다.
넷째, 주어진 마케팅 자원을 효율적으로 배분함으로써 마케팅 효과를 극대화할 수 있다. 문화예술기관이나 단체에서 시장 세분화를 실시하면 마케팅 활동에 따른 소비자의 기대 반응을 보다 세세하게 추정하기 쉬워진다. 기대 반응이나 마케팅 목표에 따라 주어진 마케팅 예산을 배분하면 적재적소에 알맞게 비용 효과를 높일 수 있다.
시장 세분화를 실시하면 원하는 마케팅 효과를 기대할 수 있지만, 잘못 적용하면 효과가 없을 수도 있다. 시장 세분화 전략이 문화예술 소비자의 욕구나 기대에 적합한 기회를 제공하는 것은 분명하지만, 시장 세분화의 결과가 언제나 효과를 약속한다고 단정할 수는 없는 일이다.
따라서 현실과 동떨어진 의욕을 반영하지 않고 철저히 현실에 바탕을 둔 시장 세분화가 중요하다. 결국 시장 세분화의 궁극적인 목적은 세분화 그 자체가 아니라 세분 시장으로 분류된 문화예술 소비자에게 알맞은 마케팅 믹스 전략을 개발하는데 있다고 하겠다. /김병희 서원대 광고홍보학과 교수
[김병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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