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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숭호 칼럼니스트·전 한국신문윤리위원 |
최근 읽은 신문 칼럼 중 제일 시원했던 거 소개해드리려고요. 생각을 달리 하는 분이 없지 않겠지만 제 주변에는 이 글 읽고 참 잘 썼다고 하시는 분이 많습니다. 글쓴이는 외교관을 하다가 지금은 일본 관서대 외교학부 교수로 있는 장부승 씨입니다.
장 교수는 한국일보에 '석학의 슬픈 초상'이라는 제목으로 두 번 글을 썼는데 4월에 쓴 첫 번째 글에는 '불통하는 지식인', 3주 뒤에 실은 두 번째에는 '권력이 된 철학자'라는 부제를 각각 달았습니다.
지난 3월 KBS TV에서 우리나라 해방 전후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독설과 광대 짓'을 잔뜩 늘어놓았던 '우리 시대 대표 석학' 도올 김용옥더러 "제발 조용히 있어라, 분수를 지켜라"라는 질책과 당부를 두 번에 나눠 쓴 겁니다. 먼저 읽게 된 두 번째 글이 얼마나 시원하던지, 곧바로 첫 번째 것도 찾아 읽었습니다. 기자들이 남의 글 칭찬할 때 잘 쓰는 말, "정말 잘 조졌다!"라는 찬사가 절로 터져 나왔습니다.
첫 번째 글에서 장 교수는 도올이 "이승만의 무덤을 파헤쳐야 한다", "소련은 조선을 분할 점령할 생각이 없었고 될 수 있는 대로 빨리 독립시키려 했다"고 말한 것을 매우 강력하게 비난했습니다. 장 교수는 도올이 제시한 '논거'를 하나하나 박살내며 그가 '무지하다'고 했습니다.
두 번째 글에서는 "일본이 여전히 세계 정복에 불타고 있다"는 도올의 발언은 사실을 제대로 반영하지 않은 '강변'임을 우리 주변의 정세를 들어 또 박살내고는 그가 더 이상 이런 헛소리를 못하도록 해야 한다는 식으로 글을 맺었습니다.
장 교수는 신문 독자들에게 예의를 지키기 위해 최대한 정중하게 글을 전개했지만, 한 줄 한 줄 읽다보면 도올에게 더 심한 말을 못 퍼부어서 속이 터질 것 같다는 기색을 감추지 못하고 있습니다. 정치·외교학을 가르치는 전문가답게 장 교수는 사실과 논리를 바탕으로 도올을 잔뜩 혼내 준 후에는 아래와 같은 글로 도올에게 "제발, 최소한 정치와 외교 정책 분야에 대해서만은 입을 닫아라"고 준엄히 타일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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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올 김용옥 한신대 석좌교수가 KBS 1TV '도올아인 오방간다' 프로그램에서 "이승만은 4·19로 쫓겨났기 때문에 국립묘지에서 파내야 한다"는 등의 발언이 후폭풍을 불러 일으키고 있다. /사진=KBS 1TV '도올아인 오방간다' 캡쳐 |
"… 김 박사(도올)는 일제 시대 천안 대부호집 막내로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는 당시 조선에서 의사였다. 하지만 김 박사 집안에서 창씨개명은 했지만 독립운동을 했다는 말은 들은 적이 없다. 김 박사는 태권도에 능하고 철봉도 잘 탄다고 시연까지 보여주면서 막상 젊어서는 몸이 아파 군대를 못 갔다. 병역미필이다. 대한민국이 유신 독재에 신음하던 때에 김 박사는 외국에서 철학을 공부했다. 전두환 독재에 저항하는 고려대 교수들이 연판장을 돌렸을 때는 서명을 거부했다. 김 박사의 자녀들은 비싼 외국의 사립학교를 나왔다. 자녀들 결혼식은 대한민국에서 제일 비싸다는 호텔 대형 식장에서 과시적으로 했다. 김 박사의 연구 업적과 살아온 배경을 보았을 때, 현재 우리 외교에 대해 자신의 주장으로 국민들을 지도할 만한 근거가 보이지 않는다. 오히려 해방 후 한국사회의 전형적 지식인 사회지도층과 별 다를 것이 없어 보인다. …."
학자가, 아니 '석학'이 이런 정도의 비판을 받으면, 분해서 맞받아쳐야 할 텐데 아직은 도올이 장 교수에게 이렇다 할 반응을 보였다는 기척이 없습니다. '부끄러워서 숨었나?' 궁금하기도 합니다. 도올이 해온 걸 보면 숨을 사람은 아니지만 말입니다.
만일 도올이 장 교수의 말에 반박하고 나선다면 어떤 내용일까, 또 어떤 독설, 궤변, 헛소리를 담게 될까가 궁금하기는 합니다. 저도 도올에게 이제는 나잇값 하라고 해보고는 싶습니다만 공부 짧은 제가 나섰다가는 도올 기만 살려줄 것 같아 장 교수 같은 분이 이 사람을 다루는 게 낫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장 교수가 이 글로 '공영방송' KBS까지 혼 내준 것 같아 더 시원했습니다. 장 교수는 첫 번째 글에서 이렇게도 썼습니다. "김 박사가 출연한 프로그램의 광고 카피를 보니 그를 '우리 시대 대표 석학'이라고 소개해 놨다. 김 박사는 동양철학 전문가다. 역사학이나 사회과학에서 '석학'인지는 의문이다. 세계 어디서나 석학은 우선 동료들에게서 인정받는다. 노벨 물리학상 수상자를 스웨덴 국민투표로 정하지 않는다. 사실적 근거가 희박한 자신의 파격적 주장들을 그토록 간절히 국민에게 전달하고 싶었다면 우선 해당 분야 전문가들과의 소통 속에서 사실성을 검증받는 수순을 밟았어야 했다. 전문적인 사회과학 훈련을 받지 않은 일반인들 앞에서 일방적 주장만 내세우는 것은 마치 프로 축구팀 후보 선수가 조기 축구 모임에 나가 호나우도인 양 뽐내는 것과 매한가지다."
"도올더러 석학이라니!, KBS가 정신 줄 놓은 적 많지만 이건 해도 해도 너무 해!" 이걸로 줄일 수 있습니다. 이 짧은 말을 길게 늘이느라 고생한 장 교수님께 박수를 보냅니다. /정숭호 칼럼니스트·전 한국신문윤리위원
[정숭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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