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적 책임이라는 용어 보다는 ‘기업의 사회구제’, ‘이윤에 대한 사회환원’으로 바로잡아야
기업의 사회적 책임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이 고조되고 있다. 취약계층에 일자리, 사회서비스를 제공하는 등 기업이 사회적 목적을 추구하거나, 기업 수익을 사회적 목적으로 재투자하는 등 지역사회와 정부가 기업에게 사회적 책임을 바라는 양상이 늘어나고 있다. 이에 필자는 사회적 책임의 기원을 되짚어 보고, 기업의 본질과 책임의 의미를 나누고자 한다.

기업의 생존과 발전은 사회적 지지가 아니라 소비자 선택에 달려있다는 점을 고려한다면, 일각에서 사용하는 ‘기업의 사회적 책임’이라는 말은 기업 본래의 기능과 정의를 오도하고 있다고 여겨진다. 필자는 ‘기업의 사회적 책임’이라는 용어를 사용하기 보다는, 이를 ‘기업의 사회구제’나 ‘이윤의 사회환원’이라는 구체적인 말로 바로잡아야 한다고 본다.

 

   
 ▲ 김규태 미디어펜 연구원

사회적 책임의 기원과 의미

기업경영의 사회적 책임(Corporate Social Responsibility, 이하 CSR)은 20세기 중반부터 학문적 논쟁을 통해 제기된 개념이다. 미국 경제학자 하워드 보웬(Howard Bowen)은 1953년 본인의 저서에서 “기업가의 사회적 책임은 사회 전체의 목적이나 가치에 알맞게 기업가들이 의사결정을 해서 사회에 바람직한 방향으로 행동에 옮기는 의무”라고 정의했고, 추가적으로 “기업의 사회에 대한 경제적, 법적 의무뿐만 아니라 전체 사회에 대한 책임을 의미한다”고 언급했다.

이어 피터 드러커(Peter Drucker)는 1954년 “기업은 지역사회에서 경제적 이익을 추구할 뿐만 아니라 사회적 단위로 권력(social power)을 행사하는 만큼 그에 따른 책임도 있다”고 밝혔다.

이후 CSR은 1970~1980년대에 접어들어 밀튼 프리드만 등 신고전학파 경제학자들과 이해관계자론 연구자들 사이의 논쟁을 거쳐 학술적으로 주목받게 되었다. 신고전학파 경제학자들은 “기업은 이윤극대화라는 고유목적에 충실함으로서 고용창출과 국가재정 증대에 기여하는 것이 기업 사회적 책임의 수행”이라고 주장하였지만, 이해관계자론 연구자들은 “기업이 이익만 추구하는 조직이 아니며 기업을 둘러싼 이해관계자들의 만족을 추구해야 하며 기업자신도 사회 속의 기업시민(Corporate Citizenship)으로서 사회적 지지를 얻도록 노력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 하나금융그룹이 8월 8일 진행한 '하나키즈오브아시아 캠프'의 행사 사진. 국제 구호개발 NGO 세이브더칠드런과 베트남 다문화가정 아동의 여름 방학을 맞아 한국과 베트남 문화 체험을 경험할 수 있는 프로그램으로 CSR의 일환으로 기획됨/하나금융그룹 제공사진 

20세기를 지나 21세기로 접어들어 글로벌기업의 규모와 영향력이 확대됨과 동시에 이해관계자가 늘어나고 그들의 요구가 증대되면서 CSR은 단순한 논쟁의 대상이 아니라 기업이 적극적으로 대응하게 되는 경영환경으로 등장하게 된다. 특히 각국에서 불어닥친 소비자 주권운동의 강화, 기업을 모니터링하는 NGO의 폭발적 증가, 디지털 시대의 도래 등으로 기업과 관련된 이해관계자들의 관심도와 영향력이 전반적으로 늘어나, CSR에 대한 관심이 점증하였다.

이에 발맞추어 국제기구들도 CSR에 대한 입장을 제시하고 가이드라인을 제시했다. 유엔은 Global Compact, 경제개발기구(OECD)는 다국적기업 가이드라인을 제정해 CSR을 기업의 핵심의무로 규정했다. UN을 비롯한 관련 기구들과 국제표준기구(ISO)는 사회적 책임의 국제표준 지침인 ‘ISO 26000’을 추진, 공표하였다.

우리나라 기업들은 1980년대 이후 사회공헌 활동, 1997년 외환위기 이후 윤리경영의 실천 등을 통해 CSR 유사활동의 외연을 점차 넓혀 왔다. 주요 기업들은 10여년 전부터 CSR을 확대해 왔으며, 특히 2008년 전경련 회장단이 ‘CSR 강화를 위한 결의문’을 발표한 이후로 대기업을 중심으로 보다 적극적으로 CSR 구현에 앞장서고 있다.

   
▲ 7월 28일 서울 서초구 스타벅스 파이에크파크점에서 열린 창립 15주년 기자간담회에서 자사의 CSR 투자계획을 밝히는 이석구 스타벅스커피코리아 대표/뉴시스 자료사진 

책임과 기업의 본질

‘기업의 사회적 책임’이라는 단어에서 ‘책임’이란 말의 의미를 되짚어 보고자 한다. 책임(責任)을 법학적 용어로 엄밀히 풀면, 법률상의 불이익이나 제재가 지워지는 것을 가리킨다. 책임이란, 위법한 행위에 대하여 행위자를 개인적으로 비난할 수 있거나 경제적으로 부담이 지워지는 의무를 뜻한다. 따라서 위법에 따른 비난가능성이나 경제적 채무의 부담이 없다면, 책임이라 일컬을 수 없는 것이다.

CSR은 이러한 점에서 법률적 용어가 아니다. 사회학적 용어이다. 일각에서 ‘기업이 환경경영 윤리경영 사회공헌 등을 통하여 노동자를 비롯한 지역사회 전체의 이익을 동시에 추구하며 기업이 그에 따라 의사 결정 및 경영활동을 하는 것’을 CSR의 비근한 사례로 들고 있음도, CSR이 사회학적 용어 정의에 기반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결국 ‘기업의 사회적 책임’은 회사가 법적인 의무이나 책임을 지는 것이 아니라, 전적으로 기업의 선택에 달린 문제라고 할 수 있다. 기업을 둘러싼 경영환경을 고려하여 기업이 의사결정을 내리는 사회적 선택의 문제인 것이다.

게다가 회사(會社) 또는 기업(企業)은 본질적으로 이윤 추구를 목적으로 하는 단체이다.

대한민국 상법 제169조와 제171조에 따르면, 회사는 상행위 기타 영리를 목적으로 설립된 사단법인을 뜻한다. 회사는 영리성, 사단성, 법인성을 가지고 있어야 하는데, 이 중 영리성은 ①대외적 활동을 통하여 이익을 추구하고
②이를 통해 취득한 이익을 사원에게 배당의 형태로 분배함을 말한다.1)

기업의 영리성과 이윤 추구를 목적으로 하는 회사의 본질을 되뇌어 보면, 사회공헌 차원에서의 기업활동을 의미하는 용어로 ‘사회적 책임’이라는 말보다는 ‘기업의 사회구제’, ‘기업이윤에 대한 사회환원’이라는 말을 사용하는 것이 더 정확한 표현이다.

기업의 생존과 발전은 사회적 지지가 아니라 소비자 선택에 달려

CSR 학술 논쟁에서 CSR을 옹호하는 이해관계자론 연구자들은 “기업이 사회적 지지를 얻어 기업의 지속가능성을 확보하도록 노력해야 한다”고 밝혔지만, 이는 틀린 얘기다. 기업은 사회적 지지에 기업의 생존이 달려있지 않고, 소비자의 선택을 받는 것에 생존이 달려있다. 사회적 지지와 무관하게 소비자의 선택을 받지 못하는 기업은 도태되어 망하기 마련이다.

시장의 경쟁은 냉혹하고 소비자 수요의 폭과 방향은 지속적으로 변화하기에 이에 발맞추지 못한 기업은 금세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진다. 단적인 예로, 1980~90년대 전자제품시장을 호령하던 필립스와 소니는 사라지고 지금은 삼성전자, LG의 시대이다. 하지만 삼성전자, LG도 언젠가는 중국의 전자기업에 세계 최고의 자리를 내줄지 모른다.

   
▲ 삼성전자와 LG전자의 기업 로고 

기업이 최선을 다해 CSR에 임하여 사회적인 호감도가 높다 해도, 소비자에게서 외면 받는 상품만을 만드는 기업이 오래 갈 수 있을까. 회사의 지속가능성 측면에서도 CSR은 별 볼일 없는 명분에 불과할 뿐이다.

CSR을 외치고 이에 대한 의무를 기업에게 강요하는 사람들은, CSR에 치중하던 기업이 적자를 내고 기업 문을 닫게 되었을 때 이에 대한 보상과 책임을 지지 않는다.

기업의 사회적 책임은 그릇된 말

CSR이라는 용어의 사용을 통해 기업이윤의 사회환원을 당연시하고 이를 더욱 촉구하려는 일련의 움직임은 경계해야 한다. 기업의 사회구제, 이윤에 대한 사회환원은 전적으로 기업의 선택에 달려 있고, 이는 강요될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CSR은 법적인 강제력이 배제된 상태에서 자발적으로 기업들이 알아서 베풀 성질의 것이다. 사회든 제도든 혹은 그 누구든 기업에게 분배의 정의를 바랄 수는 있겠지만, 기업에게 자기희생을 강요할 수는 없다.

“우리가 저녁 식사를 기대할 수 있는 건 푸줏간 주인, 양조장 주인, 빵집 주인의 자비심 덕분이 아니라 그들이 자기 이익을 챙기려는 생각 덕분이다(그들의 돈벌이에 대한 관심 덕분이다). 우리는 그들의 박애심이 아니라 자기애에 호소하며, 우리의 필요가 아니라 그들의 이익만을 그들에게 이야기할 뿐이다.”2)

기업의 소유 및 경영은 권리이자 선택이지, 의무가 아니다. 사회적 책임이라는 용어는 기업 소유와 경영의 본질이 ‘의무’인 양, 이를 호도하는 그릇된 말이다. 기업의 사회적 책임은 전적으로 기업 스스로의 ‘선택의 문제’이다.

1) 일정한 목적을 추구하는 복수의 사원의 결합체를 의미하는 ‘사단성’과 독립된 권리·의무의 귀속주체로서 회사의 법인격을 의미하는 ‘법인성’은 회사의 형태와 회사 의사결정 단위를 각각 정의내리고 있다.

2) 경제학의 아버지인 아담 스미스가 본인의 저서에서 250년 전 했던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