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펜=김소정 기자]지난해 싱가포르 북미정상회담 1주년에 맞춰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앞으로 친서를 전달했다. 북미 정상의 ‘친서 외교’가 재개된 것으로 북미는 지난 1월에도 양 정상의 친서 교환으로 대화의 물꼬를 트고 2차 북미정상회담을 개최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10일(현지시간) “김 위원장으로부터 아름다운 친서를 받았다”면서 “나는 매우 긍정적인 무언가가 일어날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도 트럼프 대통령은 12일 안제이 두다 폴란드 대통령과 정상회담 후 백악관 로즈가든에서 가진 공동 기자회견에서 북한과 비핵화 문제를 잘 해나갈 것이라면서도 “서두르지 않겠다”는 말을 4번이나 했다. 또 북한에 대한 “제재가 유지 중이다”라는 말도 2차례 했다. 

실제로 트럼프 대통령의 친서 발언이 나온 날 미국은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대북제재위에 북한이 불법 해상 환적을 통해 대북제재 상한(연간 50만 배럴)을 초과한 정제유를 취득했다는 내용의 문서를 제출하고 관련 조치를 촉구했다. 

북한과 다시 대화를 준비하는 미국은 ‘비핵화 진전없이는 대북제재 완화도 없다’는 기존 입장에서 변함이 없어보인다. 또한 미국은 이제 정상간 마주앉고 보는 ‘톱다운’ 방식이 아니라 충분한 실무협상을 담보하는 바텀업((bottom-up) 방식을 추진할 것으로 보인다. 

지난 1차 북미정상회담에서 합의한 싱가포르 공동성명이 원론적이었다는 비판을 받고 있는 트럼프 대통령으로서는 ‘노딜’로 끝낸 2차 북미정상회담의 실패를 만회하기 위해서라도 선뜻 김정은 위원장을 만나기보다 실무협상을 통해 북한의 명확한 태도 변화를 이끌어낼 것이라는 전망이 많았다. 

북미 비핵화 협상에서 물밑 대화에 참여했던 앤드루 김 전 미 중앙정보국(CIA) 코리아미션센터장도 지난달 29일 서울에서 국정원 국가안보전략연구원 주최로 열린 ‘2019 글로벌 인텔리전스 서밋’에서 “하노이회담을 교훈삼아 앞으로 무조건 톱다운으로 가기는 어려울 것이라는 생각도 있다”고 말한 바 있다.

반면, 문재인 대통령은 국빈방문 중인 노르웨이에서 가진 오슬로 포럼 기조연설 이후 가진 질의응답에서 6월 중 남북정상회담과 조속한 시일 내 북미정상회담이 열려야 한다는 취지의 발언을 해 한미 간 접근 방식에서 차이가 난다는 지적이 나온다. 지난 4월11일 한미정상회담 이후 확인된 양국의 시각차가 더욱 커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는 것이다. 

문 대통령은 “김정은 위원장과 트럼프 대통령이 조기에 만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한다”며 “비록 대화의 모멘텀은 유지되고 있다 하더라도 대화하지 않는 기간이 길어지게 된다면 열정이 식을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나는 김정은 위원장과 트럼프 대통령에게 조속한 만남을 촉구하고 있다”고 말했다.

앞서 문 대통령은 4월 워싱턴에서 트럼프 대통령을 만났을 때 북미가 포괄적 비핵화 방안에 합의한 뒤 북한의 영변 핵시설과 일부 핵심 시설을 폐기할 경우 미국도 제재 완화 조치를 단계적으로 이행하는 이른바 ‘굿 이너프 딜’ 방안을 제시했다가 외면받았다. 이 때문에 양국은 공동발표문도 내지 못했다. 이번에도 트럼프 대통령은 “서두르지 않겠다”고 하는데 문 대통령은 여전히 ‘정상끼리 만나는 통 큰 협상’을 강조하고 있는 형국이다.
 
김정은 위원장이 지난 4월 3차 북미대화에 나설 용의가 있다고 밝히면서도 대화 시한을 올해 안으로 못 박은 것이나 문 대통령이 3차 북미정상회담을 서두르는 것 모두 트럼프 대통령이 내년 대선 국면을 맞기 전 서둘러 핵담판을 지을 것이라는 계산이 깔린 것이라는 해석이 나온다. 

하지만 미국의 전문가들은 트럼프 대통령이 북한 비핵화 진전에 대한 보장없이 3차 북미정상회담을 하는 것 자체가 재선에 타격을 줄 수 있다고 보고 북한의 입장 변화 없이는 다음 북미 간 회담이 열리기 어렵다고 보고 있다. 

한국언론진흥재단과 미국 동서센터가 지난달 28일부터 이달 5일까지 진행한 한미언론교류 프로그램에서 한국 기자들과 만난 미국 싱크탱크의 한반도 전문가들도 “한반도 문제는 미국 대선에서 큰 이슈가 아니다”라며 북한이 상황을 오판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최근 경기 호황으로 트럼프 대통령의 재선 가능성이 커지는 상황에서 트럼프 대통령으로서는 북한과의 외교에 주력할 이유가 없다는 판단도 나온다. 

헤리티지재단의 브루스 클링너 선임연구원은 “외국에서 생각하는 것보다 북한 문제가 미국 대선에 큰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며 “북한이 어떤 일을 하든 크게 상관없이 트럼프 대통령을 뽑을 사람은 뽑고 반대하는 사람은 뽑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미국 외교협회의 스콧 스나이더 선임연구원도 “한반도 문제는 미국 대선에서 큰 이슈가 아니다”라며 “북한은 압박을 통해 미국이 양보하도록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할 수 있는데 미국은 그렇게 반응하지 않을 수 있다”고 지적했다.

북한의 추가 도발과 관련해서는 클링너 선임연구원은 미국 대선과는 별개로 “북한이 핵실험을 하거나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실험을 하면 아주 긴장되고 예측할 수 없는 상황에 부닥칠 것”이라고 내다봤다. 스나이더 선임연구원도 “트럼프 대통령은 예측 불가능한 인물이다. 이번에 미사일을 쏜 데 트럼프 대통령이 괜찮다고 했지만, 다음번에는 다를 수 있다”며 “북한은 이런 부분을 명심해야 한다”고 말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하노이회담에서 ‘배드딜’보다 ‘노딜’을 선택한 것도 자신의 지지자를 고려한 선택이었을 것은 당연하다. 회담 결렬까지 감행했던 트럼프 대통령이 또다시 톱다운 방식에 의존해 북한과 비핵화 협상을 이어갈 가능성은 희박해보인다. 현재 미국으로서는 북한의 무력도발을 막으면서 현 상황을 유지하는 것이 차라리 더 낫다고 여길 이유가 충분하다. 이럴 경우 대북제재 해제는 요원해지는 것으로 서둘러 ‘플랜B'를 마련해야 하는 것은 문재인정부의 몫이 된다.

   
▲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왼쪽)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2차 북미 정상회담을 갖기 위해 2월27일(현지시간) 베트남의 소피텔 레전드 메트로폴 하노이 호텔에서 만나 악수하고 있다./VTV