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펜=김소정 기자]통일부 출입기자단은 17일 청와대 고위관계자가 북한의 고 이희호 여사 조의문 및 조화 전달 영상을 묵음 처리하면서 기자단과 협의할 대상이 아니라고 주장한데 대한 유감을 표명했다.
통일부 기자단은 이날 발표한 성명에서 “지난 14일 청와대 고위당국자가 ‘백그라운드 브리핑’(비공식 브리핑)에서 남북관계 관련 보도에 대해 독자와 시청자의 알권리는 물론 충실한 사실 전달을 위한 기자단의 노력을 경시하는 발언을 한 것에 이의를 제기한다”고 밝혔다.
논란의 발단은 지난 12일 북한이 판문점에서 이 여사 별세에 대한 조의문과 조화를 전달하는 과정에서 시작됐다.
당시 기자단은 남북관계의 특수성과 판문점 북측 통일각이라는 지역적 한계, 취재인원 제약 등을 고려해 사진과 영상을 정부 전속인력이 촬영한 사진과 영상을 제공받기로 통일부와 사전조율했다.
이때 기자단은 영상 속 음성을 삭제하지 말 것을 각별히 요청했으며, 통일부도 이러한 요청에 공감하면서 음성을 포함한 영상을 제공토록 노력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그러나 정부는 당일 저녁 아무런 사전설명이나 양해 요청 없이 일방적으로 음성을 삭제한 채 1분45초 분량의 이른바 ‘김여정 묵음 영상’만을 제공했다.
이때문에 정부가 민감한 내용을 의도적으로 숨기려했거나 북한의 반응이 기대에 미치지 못하자 의도적으로 음성을 삭제한 것 아니냐는 관측부터 지나친 북한 눈치보기라는 비판이 제기되기도 했다.
이에 기자단은 영상에서 음성이 삭제된 경위에 대한 설명을 요구했고, 통일부 측은 이튿날인 13일 나름 입장을 설명하고 유감을 표명했다.
일단락되는 듯했던 상황은 청와대 고위관계자가 나서면서 한층 악화됐다.
이와 관련해 청와대 고위관계자는 14일 백브리핑에서 논란의 책임을 통일부 측에 떠넘기는 듯한 태도를 취하면서 묵음 처리된 영상이 제공된 데 대한 질문에 “저희들이 북측 판문점 지역에 전속이 들어가서 촬영하기로 결정하고 그것을 배포했으면 되는 부분이었다”면서 “그것이 통일부 기자단과 협의할 대상은 아니었다”고 답변했다.
그러나 이는 보수정부 시절이었던 이명박ㆍ박근혜 정부 때조차 남북관계 취재 과정에서 이어져온 정부와 기자단 사이의 영상편집과 묵음 처리 여부 등을 둘러싼 협의 관행을 묵살 내지 최소한 간과한 발언이라 할 수밖에 없다.
청와대 고위관계자의 발언에서는 소통을 중시하는 문재인 정부의 철학과 배치되는 어감마저 풍겼다.
해당 인사는 통일부 기자단이 주말 동안 수차례 연락을 취했음에도 불구하고 아무런 대응도 하지 않았다.
이에 기자단은 성명에서 “이는 통일부와 기자단이 사전협의해 온 신뢰ㆍ협력관계를 무시하는 무책임한 언급이라고밖에 볼 수 없다”면서 “청와대 고위당국자의 발언처럼 과도하게 비밀주의를 추구하며 정부와 기자단 사이의 협력체계를 부정하고, 나아가 독자와 시청자의 알권리를 입맛대로 재단할 수 있다는 인식은 곤란하다”고 지적했다.
또 “해당 발언을 한 청와대 고위당국자에게 유감의 뜻을 밝힌다”며 “정부는 향후 남북대화와 접촉, 방북 등과 관련해 독자와 시청자의 알권리를 보다 적극적으로 감안해 북측과 협의하길 바란다”고 덧붙였다.
성명에는 통일부 출입 51개사 언론사 가운데 미디어펜 등 44개사가 참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