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 정숭호 칼럼니스트·전 한국신문윤리위원 |
김제동은 왜 김미화나 탁현민보다 강연료를 더 많이 받나? 김제동은 2017년 7월 열린 세종시 출범 5주년 축하행사에서 40분 강연하고 1500만 원을 받았다. 김미화는 곡성군에서 두 시간 정도 강연을 하고 550만 원을 받았다. 김미화도 많이 받았지만 분당 37만5000원, 초당으로는 6250원꼴인 김제동의 강연료에는 어림도 없다.
청와대 행정관을 지낸 탁현민의 지자체 강연료도 김제동이 받은 것의 5분의 1밖에 안 된다. 탁현민은 20일 스스로 "학교는 100만 원, 지자체나 단체는 300만 원, 기업은 1550만 원을 받는다"고 자기 강연료를 밝혔다.
김제동의 고액강연료를 둘러싼 시비가 시작되면서 "당신네들, 물들어 왔을 때 노 젓자는 심정으로 닥치는 대로 챙기기로 작정한 것이냐?"는 원초적 질문이 번져나가자 "그래, 나 이 정도 받는다. 어쩔래?"라고 원초적으로 대답한 것 같긴 하지만, 이 정부 출범에 기여한 사람들이 어떤 식으로 자신에 대한 보상을 찾아내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증거다.
어쨌든, "김제동이 왜 김미화나 탁현민보다 강연료를 더 많이 받나?"라는 내 질문은 김제동이 "판사의 망치질과 목수의 망치질의 값어치는 같아야 한다. 병원 청소부가 병원 의사와 같은 대접을 받는 날이 와야 한다"고 여러 강연에서 말해왔다고 해서 물어보는 거다. 판사와 목수가 같은 대접을 받는 날을 만들기 전에, 성향이 같아 정치적 동지라고 불러도 서로 화를 내지 않을 세 사람은 이미 같은 대접을 받고 있어야 옳은 것 아닌가? 내 생각이 틀린 건가?
|
|
|
▲ 고액 강연료 논란에 휩싸인 김제동. /사진=연합뉴스 |
"김제동은 자신의 수입을 주변 사람들과 어떻게 나누고 있는가?" 이것도 궁금하다. 세종시 강연에서 40분에 1500만원을 받았다는 걸 전한 종편은 세종시에서 그가 한 강연도 조금 보여줬다. "부자가 돈 좀 풀어서 가난한 사람 좀 주면 안 됩니까? 그게 그렇게 어려운 겁니까?"라고 외치는 장면이었다. 목 줄기에 핏줄을 세운 채 거의 쉰 목소리로 외치는 그 모습은 "같이 먹고삽시다. 부자들 돈, 그거 모두 부당하게 번 것 아닙니까?"라고 선동하는 것 같았다.
이번 강연료 시비가 불거진 초기에 그는 설명인지 변명인지, "기획사 식구가 많아서, 내 벌이에 기대 사는 사람이 많기 때문에 많이 받는다"고 말했다. 수입을 '식구'들과 균등하게 나누지 않고서야 저렇게 말하지는 못할 거라는 생각이 "김제동은 주변 사람들과 수입을 얼마나 고루 나누고 있을까?"라는 의문을 품게 했다.
"김제동은 자선 때문에 살림이 빠듯해졌을까?"라는 질문도 하고 싶다. 김제동은 자선으로 소문난 사람이다. 그를 편들어 주는 사람들도 그의 선행을 빠뜨리지 않고 내세우고 있으니 자선가임은 맞을 것이다. 하지만 이 글 쓰기 직전에 읽은 페이스북 글 때문에 이 질문도 하고 싶어졌다.
그 글을 쓴 사람은 "자기 밥그릇 다 챙기고, 먹다 남은 밥을 굶는 사람에게 주고 마치 자신이 대단한 자선가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다. 세상에 정의를 요구하면서 자신의 것을 덜어낼 때 당신을 자선가라고 인정하겠다"라고 세상의 '자선가'들에게 거칠게 말했다.
이 말을 더 멋지게, 설득력 있게, 그리고 세상의 '자선가'들로 하여금 자신의 자선을 되돌아보게 만든 사람은 영문학자이자 기독교 사상가로 이름 높은 C.S 루이스다. '나니아 연대기'라는 판타지 소설로도 유명하지만 '순전한 기독교', '예기치 못한 기쁨' 같은 기독교 관련 베스트셀러도 여러 권 쓴 영국 사람이다. '순전한 기독교'는 책 많이 읽고, 읽은 걸 적시적재적소에 잘 인용해서 강연이 인기가 높다는 김제동(그는 기독교 집안에서 태어났다고 한다)도 읽었을 만한 루이스의 대표작이다.
루이스는 '순전한 기독교'에서 "자선에 쓴 돈 때문에 자기 씀씀이가 빠듯해지거나 제한받는 일이 전혀 없었다면 다른 사람에게 베푼 것이 너무 적었다고 할 수 있을 겁니다"라고 말했다. 그래서 물어보는 거다.
김제동도 자선 때문에 살림이 조금은 빠듯해졌을까? 나는 그가 자신의 자선에 대해서 "나 김제동은 돈을 많이 벌었지만 나눠 쓰느라고 하고 싶은 것 못 하고 살아왔다"라고 대답하는 날이 오기를 기대한다. 마지막 질문은 질문이 아니라 당부가 됐다. /정숭호 칼럼니스트·전 한국신문윤리위원
[정숭호]
▶다른기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