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펜=김동준 기자] 가까스로 정상화하는 줄 알았던 국회가 또다시 공전하게 됐다. 더불어민주당, 자유한국당, 바른미래당이 합의한 국회 정상화 안(案)이 한국당 의원총회 추인을 받지 못하면서다. 여야 정쟁으로 정국이 교착상태로 빠져드는 가운데 국회 생산성은 역대 최악을 기록하고 있다.
25일 국회 의안정보시스템에 따르면 이날 오후 12시를 기준으로 총 2만1122건의 법안이 발의됐다. 이 중 지금까지 처리된 법안은 6444건으로, 미처리 법안은 1만4678건에 달한다. 여기에 더해 총선을 앞둔 의원들이 법안을 무더기 발의할 경우 미처리 법안은 늘어날 공산이 크다. 내년 5월 29일 20대 국회 임기가 만료되는 점을 고려하면 계류 법안을 처리할 시간적 여유가 부족한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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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회의사당 전경./미디어펜 |
물론 발의되는 법안 모두가 통과돼야 하는 것은 아니다. 모든 법안에 가치가 있다고 여기기 힘든 정치 현실 때문이다. 한 야당 의원실 관계자는 “지역사회나 이익단체와의 이해관계에 따라 발의되는 법안도 많다”며 “극단적으로는 다른 의원실 법안을 베끼거나 재탕하는 사례도 있다”고 귀띔했다.
그러나 문제는 재계나 산업계가 절실히 요구하는 법안마저도 표류하고 있다는 것이다. 최저임금 산입범위 확대 문제를 다루고 있는 ‘최저임금법 개정안’이나 탄력근로제 단위기간 연장을 담고 있는 ‘근로기준법 개정안’ 등이 대표적으로 꼽히는 법안들이다. 기업 상속 시 할증평가와 승계요건을 완화하는 ‘상속세 및 증여세법 개정안’, ‘조세특례제한법 개정안’도 시급한 처리가 요구되고 있다.
이러한 상황을 반영하듯 지난 17일 박용만 대한상공회의소 회장은 여야 지도부를 직접 방문해 ‘조속입법 리스트’가 담긴 ‘상의 리포트’를 전달하기도 했다. 당시 박 회장은 여야 5당 원내대표를 면담한 자리에서 “살아가기 팍팍한 것은 기업이나 국민 모두 마찬가지다. 오랜 세월에 걸쳐 서서히 골병이 들어가고 있다”며 “정치가 그 책임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는 것도 사실”이라고 짚었다.
법안뿐 아니라 지난 4월 정부가 제출한 추가경정예산안(추경)도 처리가 묘연해진 상태다. 62일째 제대로 된 심사조차 들어가지 못한 추경 때문에 여권은 발을 동동 구르는 모양새다. 조정식 민주당 정책위의장은 이날 당 원내대책회의에서 “추경이 경기부양 효과를 가지려면 조속한 국회 처리로 7월에는 집행돼야 한다”며 한국당의 ‘조건 없는’ 국회 복귀와 추경안 처리 협력을 촉구했다.
다만 추경과 경기부양을 연결짓기 어렵다는 분석도 나오고 있어 추경을 시급한 현안으로 보기 어렵다는 시각도 있다. 국회예산정책처는 ‘2019년도 제1회 추가경정예산안 분석’ 보고서에서 “빈번한 추경 편성은 경제 주체들이 추경을 당연시하는 기대를 형성하게 해 경기 대응 효과를 극대화하는 데 제약을 발생시킬 수 있다”고 지적했다. 문재인 정부는 출범 이래 매년 추경을 편성해 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