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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소정 외교안보부장 |
[미디어펜=김소정 기자]오는 27~29일 2박3일 일정으로 일본 오사카에서 열리는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에 참석하는 문재인 대통령과 아베 신조 일본 총리와의 한일정상회담이 불발됐다.
‘당일 왕복’이 가능한 가장 인접한 이웃나라가 주최하는 국제행사에 참석하는 한국대통령이 2박3일 일정에도 불구하고 주최국 정상과 양자회담도 못하게 된 상황에서도 청와대는 이를 일본 국내정치용으로 치부하는 모습이다.
청와대 고위관계자는 25일 “G20 계기 한일정상회담은 이뤄지지 않을 것”이라고 전하면서 “우리는 만날 준비가 돼 있다고 했는데 일본 쪽에서 아무 반응이 없었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그래서 우리 생각으로는 일본 참의원선거일인 7월22일 이후에 만나는 것이 더 적절하지 않을까 생각이 든다”라고 덧붙였다.
선거를 앞둔 아베 총리가 국내 여론을 관리하기 위해 ‘한국 패싱’이라는 강수를 뒀다고 말하고 싶어하는 것으로 들렸다. 하지만 한일정상회담이 없다는 입장을 밝히면서 일본측은 “아베 신조 총리 일정이 꽉 찼다”는 말로 한국에 대한 감정을 드러낸 바 있다.
주최국 의장으로서 이번에 아베 총리는 15여개국 정상과 회담을 한다. 하지만 ‘한국 대통령은 만날 시간이 없다’고 한 것은 한마디로 ‘만나기 싫다’는 것이다. 역대 정권마다 한국과 일본은 과거사 문제로 갈등을 겪었지만 지금처럼 두 나라 관계가 최악인 상황은 없었다.
지금 한일관계는 대법원의 강제징용 피해자 배상판결, 위안부재단 해산, 일본 초계기 저공위협 비행과 한국 해군의 화기 레이더 가동 논란 등 외교‧안보에서 그 골이 깊어질 대로 깊어져 있다.
여기에 최근 양국의 투자와 교역이 눈에 띄게 줄고 있는 등 경제에서도 우려가 감지되고 있다. 한국경영자총협회에 따르면, 올해 1분기 일본의 대한 투자액은 6억3000만달러로 전년 동기 대비 6.6% 감소했다. 한일 수출입 규모도 193억달러에 그쳐 전년 대비 11.5%가 줄어든 것으로 나타났다.
한일관계가 점점 멀어지는 동안 일본과 중국은 빠르게 밀착하고 있다. 아베 총리는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에게 내년 봄 국빈방문을 요청할 것이라는 일본언론 보도가 나왔다. 시 주석은 지난 4월 중국 칭다오에서 열린 국제관함식에 ‘욱일기’를 단 일본 호위함의 입항을 허용하는 모습도 보인 바 있다.
지난해 10월 우리 해군이 진행한 제주 국제관함식에는 욱일기 게양이 논란이 돼 일본이 불참한 일이 있다. 욱일기에 대해선 한국 못지않게 중국도 매우 민감하다. 하지만 중국은 내부 여론을 통제하면서까지 미국에 대한 경계를 위해 일본을 끌어안는 모양새를 취했다.
시 주석이 아베 총리에 대해 과거사를 뛰어넘는 미래지향적인 관계 개선 시도를 몸소 보인 것은 바로 ‘국익’을 위한 것 외에는 다른 이유가 없다. 일본이 미국, 중국과 밀착할수록 우리에게는 ‘외교 고립’이라는 결과만 남을 것이다. 자칫 단교 수준으로 관계가 악화된다면 안보는 물론 경제적으로 입을 손실이 어마어마하다.
사실 이번 한일정상회담 불발을 불러온 강제징용 배상 해법과 관련한 문재인정부의 모습은 외교 수준을 의심케 했다. 지난주 한국 측이 제안했다가 1시간도 안돼 일본으로부터 거절당한 강제징용 배상 해법은 작년 말 일본도 긍정적으로 검토하던 안이었다. 피해 책임이 있는 한국과 일본 기업의 자발적 출연금으로 재원을 조성해 강제징용 피해자에게 위자료를 지급하는 방안이다.
하지만 청와대는 작년에 이 방안에 대해 “발상 자체가 비상식적”이라고 잘라 거절했었다. 그랬던 것을 이번 G20을 앞두고 다시 꺼내니까 이번에는 일본이 외면한 것이다. 청와대 고위관계자는 7월 참의원선거 이후를 기약했으나 일본은 오는 10월 열리는 해상지위대 관함식에도 한국 해군을 초청하지 않기로 했다고 현지언론이 26일 보도했다.
문 대통령이 올해 3.1절 기념사에서 뜬금없는 친일잔재 청산을 강조하며 배일(排日) 정서를 조장한 것은 국내 발언이라고 하더라도 징용 배상 문제에서는 정부가 적극적으로 나서야 했다. 기왕 대법원 판결이 나왔으니 우위에 있는 한국정부가 “판결이니 어쩔 수 없다”고만 할 게 아니라 적절하게 문제를 풀어나가는 성의를 보이는 것이 외교이다.
그랬다면 아베정권은 몰라도 과거사를 반성하는 일본 내 여론은 훨씬 한국에 우호적이었을 것이고, 이런 여론을 의식해서라도 아베 총리가 한국을 패싱하는 유감스러운 결정은 하지 못했을 것이다. 이번 한일정상회담 불발은 문재인정부의 외교전략이 없다는 사실을 다시 한번 드러낸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