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가 조정래가 신작 장편 <천년의 질문>(전3권, 해냄)을 펴냈다. 재벌 비자금 사건을 파헤치는 기자를 중심으로 권력-자본-언론이 얽혀 돌아가는 한국 사회의 구조적 모순을 고발한 작품이다. 대기업 비자금, 정경유착에서 촛불 집회에 이르는 지난 3~4년 한국사회 현안이 두루 등장한다. 결국 '국가란 무엇인가?'를 묻고 있고, 그래서 제목이 천년의 질문이라고 한다. 보기 드물게 대중적 파급력이 큰 이 작품을 포함해 그의 문학 전반을 점검하는 연속칼럼 '조정래 문학은 건강한가'를 3회 나눠 싣는다. [편집자주]
[연속칼럼]'조정래 문학은 건강한가?'-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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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우석 언론인 |
조정래(76)는 이미 문학권력이다. 근현대사를 포괄한 대하소설 3부작 시리즈 <태백산맥>을 필두로 <아리랑>(근대 초에서 일제시대)과 <한강>(현대사)이 낱권으론 따져 1550만 부 팔렸다. 100만 권 팔리는 밀리언셀러를 거푸 15회를 기록해야 가능한 천문학적 판매부수다.
중간에 펴냈던 장편 <정글만리>(전3권)와 <풀꽃도 꽃이다>(전2권)등도 이례적으로 출판시장에서 반응이 좋은데 요즘 한국문학은 거의 조정래 독주 체제다. <천년의 질문>의 경우 이례적으로 포털 네이버에서 5월부터 오디오로 선(先)연재했다. 성우 15명이 라디오 드라마를 만들 듯 제작해 공개한 것이다. 파급력을 키우고 마케팅에도 도움을 주자는 시도일 것이다.
전3권 중 1권만 30회 클립으로 나눠 제작됐기 때문에 호기심이 생긴 독자는 2~3권에도 손을 댈 것이란 기대다. 출판사는 신문 전면광고도 했는데, 이 역시 문학-비문학을 통틀어 이례적 움직임이다. 그래서 더욱 조정래는 엄밀한 검증대상이고, '조정래 문학은 건강한가'를 따져봐야 한다.
이 소설 스토리는 이렇다. 아내가 다니던 출판사의 폐업으로 생계가 어려워진 만년 시간강사 고석민은 고향 선배인 국회의원 윤현기의 신문 칼럼을 써주며 산다. 90년대 초 대학 시절 그의 운동권 동아리 선배가 기자 장우진인데, 마침 그는 성화그룹 비자금을 취재 중이다. 기사화되기 전 벌써 성화그룹 창조개발실은 취재를 막는 로비를 다각도로 진행하며 긴장감이 높아진다.
작품 속 성화그룹은 삼성이 모델
성화그룹 창조개발실 한인규 사장은 그래서 윤현기에게 손을 쓴다. 고석민을 시켜 장우진의 취재를 막자는 것인데, 다음 선거의 비용 절반을 부담하겠다고 제안을 한다. 그 새 예상치 못한 일이 하나 터지는데, 그룹 회장의 사위 김태범이 회사 비자금 장부를 가지고 튄 것이다.
그걸 냄새를 맡은 기자 장우진은 김태범 행방을 추적하러 민변 변호사 최민혜를 만나는 등 부산하지만, 한인규와 김태범은 비자금 장부를 내놓는 것을 조건으로 더러운 뒷거래를 시도한다. 김태범은 댓가로 무려 2천억 원의 돈을 요구하는데…. <천년의 질문> 스토리는 그렇게 흘러간다. 저자 메시지는 한마디로 '대한민국은 X판'이란 것이다.
스토리 중간 정경유착은 물론 비정규직 문제, 급격한 사회 양극화에 시달리는 현 상황이 배경으로 나온다. 그리고 상위 10%가 국민소득의 절반을 독식하는 구조가 왜 유지되어야 하며, 그걸 어떻게 깰까를 거급 강조한다. 책 뒷날개를 장식한 친절한 카피는 물론 조정래의 메시지다.
"기업가와 정치가, 학자와 기자를 둘러싸고 비수처럼 파고드는 전쟁 같은 삶! 돈과 명예를 위해서라면 가족마저 등지고 마는 척박한 시대에 양심을 버리지 못한 이들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그게 작은 글씨이고, 그 위에는 좀 더 큰 활자로 "거대자본에 휘둘린 인간 소외"를 거론하면서 "국가를 삼켜버린 권력의 핵심에는 과연 무엇이 있는가?"라고 묻는다.
소설책인데도 마치 사회과학서 같은 어색한 느낌을 피할 수 없는데, 즉 이 소설은 문재인 정부 이전의 한국 사회는 정경유착도 있고, 매우 나빴다는 식이다. 아니나 다를까? 소설 제3권에선 촛불 시위가 등장하고, 그건 썩고 병든 나라를 바꾸는 최선의 평화 혁명이었음을 힘주어 말한다.
작품 속 성화그룹은 재계1위 삼성그룹을 암시하는 것도 우연이 아닌데, 오늘 이 소설과 조정래의 진실을 말하자. <천년의 질문>은 우선 소설이 아니다. 스토리와 등장인물이 있지만 그건 소설의 얼개일 뿐 실제는 문학작품 이전의 단계다. 작품의 밀도가 떨어져도 현저하게 떨어지는 탓이다.
좋은 소설의 작가는 뒤로 숨고 등장인물과 스토리가 물 흘러가듯 하며, 여기에서 독자의 감동이 생기는 법인데, <천년의 질문>은 그렇지 않다. 지문(地文)와 등장인물 대화 중간에 수도 없이 조정래가 등장해 독자에게 자기 생각을 가르치려든다. 그것도 생경한 강의조의 훈계라서 작품의 리얼리티 자체를 파괴한다. 당연히 감정이입도 불가능하다.
"단결해서 저항하는 국민이 되는 것, 국가권력을 직접 통제하는 국민이 되는 것, 이것이 뚜렷한 해결책이고, 우리 사회에 주어진 미래의 숙제이겠지요.", "민변의 역사 30년이 바로 우리 사회의 변화, 국민 의식의 발전을 입증하는 살아있는 증거물이예요."(제1권 398쪽, 민변 변호사 최민혜의 말)
"(일제시대) 죽어간 우리 겨레의 수는 얼마일까요? 400만 명이었습니다. 민족 전체의 20% 가까이가 죽어가야 했습니다. 우리는 여기서 첫 번째 역사 질문 앞에 서게 됩니다."(제1권 141쪽, 운동권 시절의 장우진의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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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설가 조정래가 신작 장편 <천년의 질문>(전3권, 해냄)을 펴냈다. 재벌 비자금 사건을 파헤치는 기자를 중심으로 권력-자본-언론이 얽혀 돌아가는 한국 사회의 구조적 모순을 고발한 작품이다. 사진은 2015년 9월 서울 서초구 반포동 국립중앙도서관에서 열린 제5회 장애인 독서 한마당 행사에서 강연하고 있는 조정래 작가./사진=연합뉴스 |
정치평론, 현대사 강의로 도배된 소설
그게 조정래 수준이다. <천년의 질문>은 그런 헐거운 정치평론, 현대사 강의로 도배됐다. 당연히 소설이 아니라, '문학의 옷'을 걸쳤을 뿐이다. 조정래가 원래는 멀쩡했는데 나이 들어서 그럴까? 아니다. 데뷔했을 때부터 조정래 문학이 이랬다. 그걸 지적한 평론가도 없었을 뿐이다. 백 말이 필요없다. 소설 대화와 지문에 이런 시시한 내용이 실로 지천이다.
"'우리나라 사람들 스마트폰 보유율이 얼만지 아세요?' '그야 어마어마 무지막지하지 뭐.' '놀라지 마세요. 5천2백만 인구 중에서 4천8백만이 가지고 있어요.…그것도 이미 1년 전 통계예요. TV·인터넷 접속 시간 3시간 34분, 스마트폰 사용시간 5시간 48분…"
신문 방송에 나왔던 다 아는 얘기의 동어반복이라서 소설적 긴장감이고 뭐고 찾아볼 수 없다. 때문에 백 번 양보해 <천년의 질문>이 소설이라고 해도 그건 이른바 순문학은 아니다. 정확하게 말해 대중소설의 범주에 속한다. 잘해보니 기업소설 정도? 이 작품에서 섬세한 문체의 운용이나 문학작품 고유의 향기 같은 걸 찾아볼 수 없는 건 당연하다.
더 문제는 반기업 심리를 조장해온 신문과 방송에서 봤던 악의적인 스토리를 가져와 소설 안에 얼기설기 꿰어 맞춘 점이다. 경제학-경영학 교과서가 할 수 없는 역할을 소설이 대신해서 기업인에겐 자부심을 심고, 젊은이에겐 희망을 품게 하는 그런 종류의 기업소설이 결코 아니다.
천하의 문학권력인 조정래가 정말 그런 수준일까 싶을 것이다. 유감스럽게도 그렇다. 조정래의 허명(虛名) 때문에 그걸 지적하는 평론가가 없었고, 때문에 출판시장이 교란되어온 것이다. 피해는 독자의 몫인데, 그래서 문제다. 문학의 죽음은 30년 넘는 현상인데, 누구도 진지하게 문학작품을 읽지 않지 않는다. 그리고 한국문학은 갈라파고스 섬 즉 외딴 섬이다.
이런 현상 속에 피어난 수준 미달의 문학이 조정래 소설이다. 이번 회는 주로 작품의 형식과 완성도를 점검해봤다. 다음 회에는 내용 분석을 할텐데 조정래 소설에 왜 그처럼 집요한 반기업 심리가 춤추는지, 그리고 좌파 민족주의에 가려 세상을 잘못 보고 있는지를 따지는 게 관건이다. /조우석 언론인
[조우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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