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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석원 객원 칼럼니스트 |
한국의 한 대기업 주재원 가족으로 두 아들을 데리고 스웨덴 스톡홀름에 1년 째 살고 있는 주부 강정원 씨(36·가명)는 스웨덴의 삶에 전반적으로 만족하는데, 유독 병원에만 가면 스트레스를 받는다.
아직 7살과 11살인 아들 중 작은 애는 알레르기성 비염이 심해서 지난 3월 봄이 시작하면서 감기가 떨어지지 않았다. 그래서 병원 갈 일이 잦았다. 또 큰 아이는 축구를 좋아하는데, 학교에서 축구를 하다가 크고 작은 부상으로 또한 종종 병원을 찾았다.
그런데 매번 갈 때마다 정식 의사를 만나 제대로 진료를 한 적이 거의 없다. 큰 아이가 무릎에 큰 찰과상을 입어서 갔을 때도 간단한 응급처치까지만 하고 무려 3시간을 병원에서 기다리다가 결국 의사도 보지 못하고 돌아왔다.
그런 강정원 씨에게 스웨덴 생활 선배격인 다른 주재원 부인들은 "스웨덴에서는 병원에 가는 게 속병 얻는 일이다"거나 "스웨덴에서는 응급환자도 기다리다 죽을 곳"이라는 등의 악평을 들었다. 경험상 강정원 씨도 그 이야기들에 고개가 절로 끄덕여졌다.
스웨덴의 한국인들 중 많은 이들은 스웨덴의 의료 서비스를 신뢰하지 못한다. 스웨덴에서는 병원에 가서 의사의 진료를 받는 것도 쉽지 않고, 의사를 만나더라도 만족스러운 처방이나 치료를 받지 못한다고 생각한다.
스웨덴 생활에 익숙하지 못한 한국 사람들이 스웨덴의 의료 시스템에 대해 불만스럽게 생각하는 것은, 한국의 의료 시스템과 비교했을 때 그럴 수 있다. 그리고 객관적으로도 스웨덴의 의료 시스템은 한국의 의료시스템에 비해 불편한 것도 사실이다.
그 이유는 스웨덴의 거의 완전한 공공 의료 시스템 때문이다. 물론 한국의 의료 시스템도 공공 의료 개념이다. 병원은 비영리 법인으로 운영된다. 다시 말해 병원을 운영하는 것은 사업성, 수익성을 고려하지 않은 공공의 이익을 궁극적으로 추구한다는 뜻이다. 하지만 스웨덴의 의료 시스템은 한국의 그것보다 더 확실한 공공의 개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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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웨덴 공공 의료의 시작은 보드센트럴이다. 보드센트럴의 대표 호출 번호인 1177은 스웨덴 사람들이 믿고 의지하는 국가 의료의 전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사진=스웨덴 보드센트럴 홈페이지 캡처 |
스웨덴은 각 코뮌(기초자치 단체)의 보드센트럴(Vårdcentral)이 1차 진료기관이다. 그리고 대학 병원을 중심으로 한 종합병원이 있다. 보드센트럴을 굳이 한국과 비교하면 보건소지만 개념이 좀 다르다. 한국의 경우 기초자치단체에 속한 보건소보다는 전국에 수만 개 존재하는 개인 병의원이 1차 진료기관의 중심이라면 스웨덴은 보드센트럴이 1차 진료기관의 중심이다.
문제는 이 보드센트럴이다. 여기서도 전문의에게 진료를 받기 위해서는 예약 후 짧게는 두 달, 길게는 서너 달을 기다려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간호사 진료가 전부다. 간호사도 전문 의료인이지만, 한국의 의료 시스템을 감안하면 온전한 의료 시스템이라고 생각할 수 없다.
게다가 간호사 진료라고 하더라도 약 처방이나 검사나 치료가 한국과 같지 않다. 감기가 심한 어린아이를 데리고 보드센트럴에 가는 경우 십중팔구는 "집에 가서 물 많이 마시게 하고, 옷도 많이 입히지 말고 열이 내려가게 해라"는 정도다. 약 처방이 없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아이가 열이 나고 아프다고 울고 있는 상태에서 이런 말을 듣는 엄마는 열불이 난다. 그렇게 하고도 200 크로나(약 2만 4500 원)의 진료비를 받는다.
그런데 앞서 언급했듯이 스웨덴의 의료 서비스는 완전한 공공 의료 개념이다. 모든 시민들에게 골고루 적용이 돼야 한다는 것이다. 제 아무리 부자라고 해서 스웨덴 내에 공공 의료에서 특별한 처방이나 케어를 받을 수는 없다. 그 이유는 의료비에 있다.
스웨덴 시민이 아니더라도 개인 번호(Personnummer)를 가지고 있는 사람이라면 모두가 적용받을 수 있는 의료 보험 혜택에서 개인이 1년에 병원에 내는 돈은 1100 크로나(약 13만 4000 원)다. 1100 크로나까지 의료비를 낸 사람은 이후 어떤 치료를 받더라도, 그것이 심지어 뇌수술이나 심장 수술, 암 치료라도 무료다.
약도 상한선이 있다. 의사 처방 약인 경우 1년에 2250 크로나(약 27만 5000 원)이 상한선이다. 그 이상의 약값은 개인이 부담하지 않는다. 국가의 의료 보험에서 부담한다.
진료나 약 처방에서 '과잉'이 있을 수 없다. 딱 필요한 만큼만 치료나 검사를 하고, 약도 처방한다. 어차피 불필요한 검사나 치료를 해봐야 상한선을 넘겨서 병원에 돈을 낼 필요가 없고, 필요 이상의 투약도 국가나 병원 입장에서는 낭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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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웨덴 최고의 의과대학인 카롤린스카의 대학병원. 국립대학의 대학 병원이 각 지역의 보드센트럴을 총괄한다. /사진=이석원 |
스웨덴 병원 의사였던 교포인 오정옥 박사는 "스웨덴의 의료 체계는 꼭 필요한 것을 모든 사람들에게 해 주는 것"이라고 규정한다. 그는 "한국은 전 국민 의료 보험이 시행되고 있지만, 암이나 중대 질병 등은 엄청난 치료비의 자기 부담금이 발생할 수밖에 없어서 의료 사각지대가 생각보다 크게 존재하지만 스웨덴에서는 의료 사각지대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그래서 스웨덴의 많은 한국인 교민들은 '합리적인 시스템'이라고 말한다. 당장 한국과 같은 치료를 받을 수 없는 것이 불안하거나 불만일 수는 있지만, 모두를 생각했을 때 스웨덴은 '돈이 없어서 치료를 포기하는 사람'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얘기다.
실제 스웨덴에서 사는 한국인이라면 한국에서도 대체로 어느 정도 생활수준에 있던 사람이다. 즉 의료 사각지대에 놓인 사람이 아닌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렇기 때문에 '모두를 위한' 스웨덴의 의료 시스템이 '일부를 위한' 한국의 의료 시스템에 비해 불편하게 생각될 수도 있다. 또 '남이 앓고 있는 암'보다 '내 자신이 앓고 있는 감기'가 더 중한 병인 것도 인지상정이다.
하지만 결국 의료라는 것은 모두를 위한 공공의 기능이 가장 중요하다. 병원이, 그 병원의 의사들이 보험 수가를 따져야 하고, 돈 버는 과와 돈 쓰는 과를 고려해야 하고, 돈 되는 환자와 돈 안 되는 환자를 구분해야 하는 것은 '진짜' 공공 의료가 아닐 수 있다. /이석원 객원 칼럼니스트
[이석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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