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 유병언 윤일병 도배서 교황으로 호떡집 전이, 다른 이슈 침몰시켜

   
▲ 황근 선문대교수
지난주부터 언론들의 초미의 관심사는 프란치스코 교황의 방한 소식이다. 신문들은 지난 일주일 10여면 가까이 교황관련 기사들을 쏟아냈다. 방송들도 저녁 종합뉴스시간의 절반가까이를 교황소식으로 채웠다.

 조간 신문들도 마찬가지다. 하긴 무슨 사건만 터지면 지나치다싶을 정도의 선정적인 제목을 달아 24시간 만물박사(?) 평론가들의 이야기를 줄기차게 들려주는 종합편성채널들을 두말할 나위조차 없을 것이다.

교황의 방문은 세계적으로 화제가 되는 사건이고 때문에 뉴스가치도 매우 높다. 또 교황의 한마디 한마디가 미치는 영향력도 막강하다. 이번 방한에서도 그는 ‘가난하고 소외받은 사람들에 대한 배려’를 매번 강조했다. 그런 맥락에서 실제 그의 행동 하나하나까지도 화제가 될 수밖에 없었다. 아마 이는 향후 한국의 정치의 방향성에도 큰 영향을 미치게 될 것 같다. 특히 일부에서는 성장보다 분배를 강조하는 이른바 ‘평등경제’에 무게가 실리게 될 것이라는 우려섞인 전망도 나오고 있다.
 

특정 사건이나 인물에 대한 지나치게 과도한 한국 언론의 ‘오두방정 보도행태’는 새삼스러운 일이 아니다. 이 정부가 들어선 지 1년 6개월가량 얼핏 살펴 보더라도, 작년 초 인수위시절에는 채동욱 검찰총장 그리고 윤창중 대변인으로 모든 언론의 상반기 뉴스를 지배해버렸다. 솔직히 뉴스라기 보다는 추측성 사생활 폭로에 가까운 ‘찌라시’ 수준이었다.

하반기 들어 내란음모사건으로 기소된 이석기 의원으로 온 언론이 난리 법석을 떨더니, 급기야 이 모든 사건을 올해 초 세월호 참사 하나로 모두 다 뒤집어 버렸다. 그런데 요즘 우리 언론을 보면, 그렇게 심각한 세월호 참사는 어디로 가는지 사라지고 유병언만 남은 듯한 인상이다.
 

그것도 잠시 지난달 윤일병 사망 사건으로 유병언도 침잠시켜 버렸다. 때문에 불과 지난주까지만 해도 윤일병과 군 구타사건이 우리 언론을 도배해버렸다. 그러더니 지난 주 프란치스코 교황 방문이 시작되면서 언제 그랬냐는 듯이 모든 언론이 교황이야기로 180도 확 돌변해 버린 것이다. 아마 모르긴 해도 교황방문이 끝나고 돌아가면, 언제 그랬냐는 듯이 우리 언론은 또 다른 보도거리를 찾아 호들갑을 떨 가능성이 높다.

   
▲ 한국의 방송고 신문들은 프란치스코교황의 방한 기사로 도배질했다. 세월호, 유병언, 윤일병 구타사건에서 이젠 교황 소식이 미디어들을 지배했다. 다른 이슈들은 교황소식에 침몰됐다. 미디어의 획일적 보도행태는 지양돼야 한다. 다른 이슈들도 균형있게 보도하는 성숙한 저널리즘이 아쉽다.

특정 사건만 터지만 모든 언론이 몰려들어 난리 법석을 떠는 대한민국 언론의 ‘소방차 저널리즘’ 혹은 ‘떼거지저널리즘’은 어제 오늘 일이 아니라 유구한 역사를 가지고 있다. 문제는 이러한 떼거지 저널리즘이 특정 사건을 가지고 우리 사회의 모든 다른 영역들을 사람들의 관심 밖으로 밀어내어 버린다는 것이다.

한마디로 특정 사건이 터지는 기간에는 그것을 제외한 나머지 한국사회는 잠시 정지되어 버리거나 죽어있는 듯한 느낌이다. 대표적인 경우가 금메달 12개로 종합3위에 오르는 별로 유쾌하지 않았던 쾌거(?)로 극에 달했던 1988년 서울올림픽 열기가 올림픽 종료직후 바로 시작된 ‘5공청문회’로 완전히 깨끗하게 식어버렸던 것을 들 수 있다.
 

흔히 말하는 언론이 사람들의 관심을 제고시킨다는 ‘의제설정(agenda setting)’효과는 매우 위력적이다. 그 이유는 미디어 의제설정효과는 국가와 정치권에서 정책 논의로 이어지는 ‘agenda building’으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실제로 세월호 사건은 한국사회의 안전불감증과 관피아 같은 고착된 구조적 병폐들을 개선하는 계기가 되고 있고, 윤일병 사망 사고는 군대 내에 여전히 만연되어 있는 병영실태의 문제점을 근본적으로 점검하는 전환점이 되고 있는 것이다.
 

때문에 언론의 긍정적인 의제설정 효과는 무엇보다 지속성이 중요하다. 왜 또 다른 사건이 터지고 언론을 도배하게 되면 그런 사회적 논의는 금방 실종되기 때문이다. 실제 한국사회는 조금 시간만 지나면 ‘건망증을 넘어 치매상태’에 빠지는 심각한 불치병을 안고 있다. 때문에 한국 언론은 다른 사건을 통해 특정 사건을 덮으려한다는 국민들의 의혹을 받고 있는 것이다.

정말 중요한 사건이 터지더라도 언론사들은 한국 사회 전체를 놓치지 않으려고 하는 노력이 요구된다. 한마디로 언론은 새로운 사실에 대한 욕망과 더불어 한 사회의 지속성과 항상성을 유지하려고하는 자세를 가지고 있어야 한다.
 

이런 한국 언론의 바람직하지 않은 ‘all in 보도’는 왜 그런 것일까? 아마 그것은 ‘가장 잘하는 것, 가장 중요한 것, 가장 좋은 것’ 만 찾는 ‘일등주의’ 때문 아닌가 싶다. 올림픽에서 반드시 금메달만 따야하고, 1등에게 모두 몰아주는 고스톱판, 무조건 최고만을 대우해주는 한국식 문화가 언론도 그렇게 만든 것은 아닐까?

이런 승자독식주의 때문인지 한국 언론 아니 한국 사회에서 ‘차이(difference)라는 다양성’ 개념이 자리 잡기 어려운 것일지도 모르겠다. 언론의 다양성은 의견의 다양성도 중요하지만 우리 사회에 다양한 영역이 존재한다는 인식에서부터 시작되어야 할 것이다. /황근 선문대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