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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소정 외교안보부장 |
[미디어펜=김소정 기자]일본의 경제보복 조치를 미국에 가서 해결해보려고 했던 문재인정부가 미국의 중재 요청에 실패하자 가장 쉬운 방법을 선택한 모양새다.
문 대통령이 ‘이순신 장군’을 거론하자 조국 청와대 민정수석은 ‘죽창가’를 미국을 방문하고 귀국하던 길의 김현종 국가안보실 2차장은 ‘국채보상운동’을 거론했다. 모두 ‘항일’을 연상시키는 발언이다.
일본의 경제보복을 외교적으로 풀어야 할 대통령과 당국자, 여당 정치인까지 나서 반일을 부추기는 상황이 전개되고 있는 것은 정부의 외교적 대책이 없다는 말이어서 우려가 커진다.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12일 전남 무안을 찾아 “이순신 장군과 12척의 배”를 언급했다. 다음날인 13일 조국 청와대 민정수석은 동학농민혁명을 다룬 ‘죽창가’를 SNS에 올리고 “남은 건 절치부심(切齒腐心)이다. 아베 정권의 졸렬함과 야비함에는 조용히 분노하되 그 에너지를 내부 역량 축적에 쏟아야 한다”고 노골적으로 발언했다.
미국을 방문했다가 귀국길에 오른 김현종 국가안보실 2차장도 같은 날 “우리는 국채보상운동과 외환위기 ‘금 모으기 운동’ 때처럼 부품 소재와 관련한 상황을 극복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앞서 최재성 더불어민주당 의원도 일본의 수출규제 조치에 대해 “이 정도 경제침략 상황이라면 의병을 일으켜야 할 일”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일본과 외교 문제를 조율해야 할 당국자들이 전쟁의 결기를 다지고 있으니 앞으로 일본정부와 외교할 의지가 있는지 의문이다.
문 대통령은 15일에도 수석‧보좌관회의에서 다른 나라를 향해 ‘경고’라는 말을 사용하며 강경 대응을 예고했다. “우리기업의 소재‧부품 수입처를 다변화하고 국산화의 길을 갈 것이다. 우리국민의 단합된 힘으로 이번 어려움을 이겨낼 것”이라며 “결국에는 일본경제에 더 큰 피해가 갈 것임을 경고해둔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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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재인 대통령./청와대 |
정부는 이번 문제에 대해 세계무역기구(WTO) 제소라는 강공책을 이미 썼다. 그렇다면 동시에 물밑대화에 공을 들이는 것이 외교적 해결 수순인데도 그런 노력을 하고 있는 것으로 보이지 않는다. 정부가 나서 나라 안의 반일정서를 확대시키고 있으니 과연 일본을 바꿀 냉철하고 치밀한 전략을 짜고 있는지 기대할 수도 없다.
문 대통령은 이날 일본을 향해 “이제라도 외교적 해결의 장으로 돌아오라”는 말도 덧붙였지만 사실 8개월 전 대법원 강제징용 배상판결이 나온 직후부터 문재인정부의 실질적인 외교적 노력은 시작됐어야 했다. 지금이라도 미국을 상대로 중재 요청을 하는 외교를 펼 것이 아니라 문제의 당사자인 일본과 마주앉을 수 있도록 외교해야 한다.
돌이켜보면 박근혜정부 때 ‘한일 위안부합의’는 당시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중재한 것이었고, 이를 파기한 문재인정부의 중재 요청을 트럼프 행정부가 다시 받아들이기란 쉽지 않아보인다. 15일(현지시간) 뉴욕타임스도 일본정부의 대 한국 반도체 소재 수출규제는 ‘아베의 트럼프 따라하기’라며 트럼프 대통령이 취해온 ‘관세폭탄’과 수출제한 조치를 지목했다. 그런 트럼프가 한일 중재에 나설 리가 없다는 전망도 나와 있다.
분명한 것은 지금 문재인정부의 대일 강경기조는 일시적으로 현 정부의 외교실책을 가릴 수는 있을지 모르나 한일 경제협력을 되돌이킬 방법은 못된다. 소재·부품 국산화도 장기적으로 추진할 방향은 맞지만 당장 일본정부의 화이트리스트 국가 제외에 따른 막대한 경제손실을 막을 수 없다. 더구나 대중문화 교류를 계기로 비로소 ‘이웃’이 된 한일 국민 관계가 악화되는 것도 큰 걱정이다.
무엇보다 과거 역대정권의 한일관계를 봐도 알 수 있듯이 반일감정을 앞세워서는 미래로 나아갈 수가 없다. 박정희정부 때 한일청구권 협정도, 노태우정부 때 아키히토 일왕의 ‘통석痛惜)의 염(念)을 금치못한다’는 표현의 사죄도, 김영삼정부 때 ‘무라야마 담화’도, ‘김대중-오부치 선언’도 싸워서 이뤄낸 게 아니다.
특히 김대중 대통령은 참모들의 반대를 무릅쓰고 월드컵 공동개최와 대중문화 문호 개방을 시작해 오히려 ‘한류’의 시작을 만들어내는 역사를 만들었다. 만약 문재인정부가 박근혜정부의 ‘한일 위안부합의’를 계승했더라면, 대법원 강제징용 배상판결이 나왔더라도 외교적인 해결에 적극 나섰더라면, 한일관계에서도 창의적이고 미래지향적인 새역사를 쓸 수 있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