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펜=조우현 기자]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일본 출장에서 복귀한지 하루만인 지난 13일 오후 사장단 회의를 주재했다. 기존 악재에 더해 일본의 수출 규제로 초대형 위기에 직면한 이 부회장이 직접 ‘위기 대응’에 나선 것이다.
이 부회장은 이날 회의에서 일본 수출 규제에 대한 비상계획 마련을 지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국이 일본 ‘백색국가’에서 배제될 가능성이 큰 가운데 이를 시나리오별로 대응하자는 전략이 담긴 것으로 분석된다.
이에 재계에서는 “한국과 일본이 ‘삼성 죽이기’에 공조하고 있는 황당한 모양새가 됐다”며 “현실을 무시한 도덕적인 독선에 기반 한 정책은 ‘제 2의 IMF’를 초래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더군다나 삼성의 위기가 ‘복합적’이라는 것이 가장 큰 문제로 꼽힌다. 삼성은 현재 인재 확보, 기술 개발 등 기업 경쟁력 강화에 전력을 다해도 모자랄 시간에 ‘대내외 위기 대응’에 주력 중이다.
여기에다 이 부회장이 국정농단 대법원 판결을 앞두고 있고, 삼성바이오로직스 사태로 검찰 수사가 불가피한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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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삼성 로고가 새겨진 깃발이 바람에 펄럭이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
주력 사업 실적 악화…개선 전망 어두워
삼성전자는 주력 사업에서의 부진을 떨쳐내지 못하고 있다. 삼성전자는 지난 5일 공시를 통해 2분기 연결기준으로 매출 56조원, 영업이익 6조5000억원을 올린 것으로 잠정 집계됐다고 밝혔다.
이는 주력인 반도체와 스마트폰 시장의 정체가 이어지면서 전년 대비 매출은 4.24%, 영업이익은 56.29% 줄어든 수치다.
앞서 삼성전자는 문 대통령이 참석한 자리에서 ‘시스템 반도체 2030년 글로벌 1위 달성’을 위한 비전을 밝혔지만, 지금의 상황이 지속된다면 목표 달성에 큰 어려움을 따를 것이라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여기에다 하반기에도 주력 사업의 업황 개선을 기대하기 힘들다는 전망이 우세하다. 더욱이 일본이 반도체와 디스플레이 생산에 필요한 가운데 일본은 ‘징용공 판결’에 대한 보복 조치가 더해지며 악재가 쌓였다.
일본은 현재 반도체와 디스플레이 생산에 필요한 불화수소(애칭가스), 포토 리지스터(감광액), 플린 폴리이미드 등 3개 소재의 수출 규제를 강화하겠다고 나섰다. 이는 결과적으로 부품에서 완제품까지 이어지는 삼성전자의 공급 사슬을 막는 조치가 됐다.
바이오헬스‧시스템반도체 등 신성장사업도 미궁 속으로
정부는 지난 6월 “‘시스템반도체, 바이오헬스, 미래차’와 같은 신산업 분야에 2030년까지 총 8조4000억 원, 민간이 총 180조 원 규모의 대규모 투자를 할 것”이라며 제조업 르네상스 비전을 선언한 바 있다.
그러나 문 대통령이 밝힌 3대 미래 신성장사업에 발목이 잡힐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일본의 경제보복 조치로 시스템 반도체 사업에 급제동이 걸렸고, 바이오산업은 분식회계 논란으로 경영 활동이 사실상 중단된 상태다.
‘미중 무역전쟁’도 삼성전자의 대외 악재로 꼽힌다. 중국에 반도체를 수출하고, 미국에 완제품을 수출하는 삼성전자는 미중 간 무역 분쟁이 악화되면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난감한 상황에 빠질 수밖에 없다.
도 넘은 삼성바이오 분식회계 의혹 수사…삼성 숨통 조여
이런 가운데 검찰은 김태한 삼성바이오로직스 사장과 임직원들에 대해 연이어 소환조사 중이다. 검찰은 지난 10일 김태한 대표를 지난 10일 재 소환하는 등 관련자에 대한 줄 소환을 이어가고 있다.
당초 삼성바이오로직스에 대한 수사는 ‘분식 회계 의혹’에서 시작됐다. 하지만 수사가 시작된 지 7개월 즈음부터 일부 언론과 시민단체‧정치인들은 “이재용 부회장의 승계를 위한 분식”이라고 규정하며 여론전을 벌이기 시작됐다.
그 결과 삼성바이오 사건은 ‘분식’에 대한 수사 결론이 나오지 않은 상황에서 ‘승계’ 여부가 수사 핵심으로 변질됐다. 이 과정에서 검찰은 횟수를 헤아리기 힘들 정도의 압수수색을 벌였고, 현재 삼성전자와 삼성바이오로직스 임직원 8명이 구속된 상태다.
특히 삼성전자 등 전자 계열사의 협업과 미래 사업을 챙기는 사업지원 T/F 소속 임원을 따라 소환하고 2명을 구속시키면서 사실상 사업지원T/F는 업무가 마비됐다.
삐걱대는 삼성바이오…바이오산업 미래는?
삼성바이오로직스의 경영 상황이 악화되면서 한국의 바이오산업은 ‘경쟁 리스크’가 아닌 ‘정책 리스크’에 신음하는 모양새다.
특히 삼성바이오로직스의 경우 눈높이가 높고 까다로운 유럽 시장에서 바이오시밀러 제품으로 단기간에 괄목할 만한 성과를 냈다. 하지만 ‘분식회계’라는 확인되지 않은 멍에가 씌워지면서 사업 전개에 어려운 형국이다.
바이오 산업은 생명을 다루는 산업이어서 회사의 투명성, 신뢰도가 중요한 평가 척도로 꼽힌다. 하지만 삼성바이오는 유죄가 확정되지도 않은 상황에서 ‘신뢰도’와 ‘평판’에 치명적인 상처를 입게 됐다.
글로벌시장조사업체인 사이언티픽 아메리칸 월드뷰 보고서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바이오산업 경쟁력은 2016년 보다 두 계단 떨어진 26위를 기록했다. 아시아 국가 가운데 싱가포르, 홍콩, 일본에 이어 4위다.
반면 지난해 24위였던 UAE가 올해 두 계단 올라서 우리를 앞질렀고 중국과 대만은 27위로 우리나라를 추격하고 있다. 바이오 업계에서는 “바이오는 결국 속도 경쟁”이라며 “지금과 같은 상황에서 삼성바이오로직스가 후발주자들에게 따라 잡히는 것은 시간문제”라고 진단했다.
‘프로크루스테스의 침대’ 떠올리는 삼성바이오 사태
재계에서는 삼성바이오에 대한 금융감독원의 판단에 대해 ‘프로크루스테스의 침대’를 연상케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프로크루스테스는 붙잡아 온 사람을 침대에 눕히고는 침대보다 크면 발을 잘랐고, 키가 작으면 침대 길이에 맞춰 다리를 억지로 잡아 늘렸다. 금융감독원이 ‘세 번’에 걸쳐 판단을 바꾼 것은 프로크루스테스의 침대와 다를 바가 없다는 비판이다.
때문에 재계에서는 “삼성이 꼼짝없이 당할 정도면 다른 기업들은 오죽 하겠냐”는 공포감이 퍼지고 있다. ‘야성적인 투자’를 요청하는 정부의 당부는 공허한 메아리일 뿐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재계 관계자는 “검찰이 몇 개월째 수사를 끌며 사건의 본질을 ‘분식회계’에서 ‘승계이슈’로 변질시키고 이를 빌미로 일부 언론과 단체들은 삼성에 대한 전 방위 수사를 촉구하고 있다”며 “아이러니하게도 이런 상황에서 정부는 일본의 수출규제를 타개하기 위해 ‘삼성’에 의존하는 황당한 일이 벌어지고 있다”고 꼬집었다.
그러면서 “지금 상태는 삼성이 망하길 바랐던 한국 내 일부 세력과 일본 강경 우파들의 바람이 이뤄진 한편의 코미디를 보는 것 같다”며 “국정농단 사태 이후 아직까지 삼성이 버티고 있는 것이 신기할 정도”라고 한탄했다.
[미디어펜=조우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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