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적이 우수한 중학생들 학부모들의 마음을 헤아려 보자. 자녀들이 좋은 환경의 학교에 진학하기를 원하는 것은 모든 학부모들의 본능적인 바람일 것이다. 전교에서 1등하는 학생의 학부모는 일단 과학고에 자녀를 진학시키려 할 것이고, 그 다음 성적을 보유한 학생들의 학부모들은 외고와 자사고에 자녀들을 진학시키려 할 것은 자명하다.
외고의 설립목적은 '외국어에 능통한 글로벌 인재 양성'이고, 과학고의 설립목적이 '우수한 과학 인재를 양성하기 위한' 것이라는 것은 허울좋은 명색이며 '빛 좋은 개살구'가 된지는 오래 되었다. 이런 특수목적고에 진학하려고 하는 근본적인 이유는 학습 분위기가 좋은 학교에서 성적이 우수한 학생들과 자유로운 경쟁을 하면서 고등학교 시절을 보낸 후에 서울대를 포함하는 유수한 SKY 대학교에 진학하고자 하는 것이다. 서울과학고 졸업생의 4명 중 1명이 의대에 진학한다는 사실이 좋은 예가 될 것이다.
외국어고등학교가 처음 개교한 시기는 1984년이고, 과학고등학교는 1983년이다. 35년이 지난 지금 외고 출신의 유능한 외교관이 배출되었다든가 과학고 출신이 노벨과학상을 받았다는 소식을 들어본 적이 없는 것은 슬픈 현실이다. 외고와 과학고 설립은 학교 교육의 실패작임에 틀림이 없다.
그러나 자사고, 즉 자립형 사립고의 설립 목적은 건전하다. 자사고는 학생들의 학교 선택권을 다양화하고 수업선택의 폭을 넓혀주기 위해 설립되었다. 대한민국 헌법 제31조 ①항에는 '모든 국민은 능력에 따라 균등하게 교육을 받을 권리를 가진다.'라고 되어 있다. 우수한 능력을 갖춘 학생을 모집해서 자율적인 교육과정을 운영하여 우수한 인재를 기르려고 하는 사립학교의 건전한 욕구를 무시하는 것은 대한민국 헌법을 유린하는 것이다. 대한민국 헌법은 자유민주주주의와 자유경쟁체제를 지향하고 있기 때문이다.
현재 사립 고등학교의 재정과 교사의 봉급은 대부분 교육청의 예산 즉 국가 예산으로 충당되고 있다. 그러나 자립형 사립학교는 글자 그대로 모든 학교 재정을 정부의 지원 없이 등록금과 재단 전입금으로만 운영되고 있다. 이것 하나만 보더라도 자사고는 국가 재정에 도움을 주고 있는 학교다. 물론 자사고 설립도 특목고, 외고와 같이 고교 서열화를 증폭시켰다는 의견을 부인하지는 않겠다.
그러나 자유민주주의 국가에서 능력의 서열화는 생길 수밖에 없는 필연적인 것이다. 올림픽경기에서도 금메달, 은메달과 동메달이 있고 패배의 슬픔들이 존재하는 것이다. 음식점도 손님이 줄을 서는 대박 음식점이 있는 반면에, 창업 후에 조기 폐업하는 음식점이 있는 것이다. 문제는 학생들이 능력에 맞는 올바른 교육을 받게 하는 것이 교육청을 포함한 교육당국과 국가가 노력해야 할 사명인 것이다.
|
|
|
▲ 조희연 서울시 교육감. /사진=연합뉴스 |
조희연 서울시 교육감의 선거공약은 '자율형사립고, 외국어고, 국제중 일반학교로 전환 추진'이었다. 이런 공약에 학부모들은 조희연 교육감을 재선시켰을 것이다. 자사고 등 특수목적고에 진학할 수 있는 학생들은 전체 학생 중에서 10%의 비율도 되지 못할 것이다. 그러니 90%의 나머지 학생의 학부모들은 자사고를 폐지하는 것을 좋아했을 것이기 때문에, 조희연 교육감은 재선의 영광을 얻을 수 있었다.
진정 자사고를 없애는 것이 자사고에 진학하지 못하는 학생들에게 도움이 될 수 있을까? 평생 동안 인문계 고등학교의 교사로 근무한 필자의 경험으로는 잘못된 판단이다. 자사고를 폐지하고 자사고에 진학할 학생들이 일반 인문계 고등학교에 진학하게 되면 그만큼 평범한 학생들의 내신성적은 나빠질 것이 분명하다. 그러면 평범한 학생들은 더 나빠진 내신성적으로는 좋은 대학교에 진학할 기회가 줄어들 것이다.
이런 사실을 모르는 대부분의 학부모는 본인 자녀들이 입학할 수 없는 자사고를 폐지한다는 공약을 기쁘게 받아들였을 것이다. 아마도 '못 먹는 감 찔러나 본다'는 속담을 따른 대부분의 학부모는 자사고 폐지로 얻을 수 있는 이익은 없게 되는 것이다. 지혜로운 학부모라면 '왜 교육감과 고위 공직자들 자녀들은 외고를 졸업시키면서, 남의 자녀들이 입학하려는 외고와 자사고를 폐지하려고 하지?'라는 의심을 했어야 한다. '이런 위선적인 교육감이 참으로 학생을 사랑하는 교육자라고 할 수 있는가?'라는 의심을 했어야 했다.
그러나 자사고에 입학할 학생들이 일반 인문계 고등학교에 입학하게 되면, 교실의 학습 분위기가 좋아지기 때문에 인문계 고등학교 교사들이 수업을 진행하는 데에는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자사교 폐지에 대한 여론 조사에서 많은 인문계 고등학교 교사들이 찬성한다는 소식을 접할 수 있다.
지금 일반 인문계 고등학교에서 제일 큰 문제는 인문계 고등학교에 입학할 능력이 안되는 수많은 학력 부진아들이 그대로 인문계 고등학교에 진학해서 생활을 하고, 3년이 지나면 졸업장을 받고서 또 대학교에 진학한다는 사실이다. 필자가 정년퇴직을 앞두고 서울 공립 인문계 고등학교에서 고등학교 3학년 수업을 진행했던 기억은 악몽과 같은 것이었다.
당시 고3 교실 수업에 들어갔을 때, 고3 수업을 받을 실력이 되는 학생들은 35명 정도의 한 학급에 1명에서 7명 정도였다. 나머지 학생들은 중학교 학력조차 가지고 있지 못한 학생들이었다. 그런데 대입 수능시험 원서를 접수할 때는 모든 학생들이 수능원서를 접수하는 것을 목격한 적이 있었다. 문제는 자사고를 폐지하려는 그 노력과 정성을 인문계 고등학교에서 정상적인 수업을 받을 수 없는 학생들을 위한 학교를 설립하려는 데에 쏟아야 한다는 것이다.
교육감과 교육부장관 등 교육자들은 새로운 교육정책을 실시할 때는 학생들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행동하는 것이 제일 중요하다. 아울러 교육자들은 우리 학생들이 우수한 글로벌 인재로 키워지도록 그리고 정직하고 책임있는 대한민국 시민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할 막중한 책임이 있다. 자사고를 폐지하는 것을 개인의 정치사조(政治思潮)를 추구하는 작업의 일환(一環)으로 하나의 적폐청산 작업처럼 진행하는 모양새는 교육자로서의 자세가 아닐 것이다.
자유민주주의 국가에서 능력에 맞는 교육을 받으려는 열망을 무시하면서 평등을 주장하는 것은 인간의 본성을 무시하는 잔혹한 행동일 것이다. 지금 필요한 것은 자사고 폐지가 아니라, 인문계 고등학교와 대학교에 진학할 능력이 없는 수많은 학력 부진아들이 인문계 고등학교의 책상에서 엎드려 자거나, 스마트폰만을 만지면서 허송세월을 하고 있다는 현실을 파악하는 것이다. 아울러 그 학력 부진아들을 능력이 있는 건전한 민주 시민들로 어떻게 성장시킬 수 있느냐는 것이다. /이명호 전직 교사·시인
[이명호]
▶다른기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