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펜=김소정 기자]중국과 러시아 폭격기 4대가 우리 방공식별구역(KADIZ‧카디즈)을 무단으로 침범해 연합훈련을 벌이고, 러시아 군용기 1대가 독도 영공을 침범하는 사상 초유의 일이 23일 벌어졌다. 

이에 대응해 우리 공군 전투기 18대가 긴급 출격해 대응하는 사이에 일본도 항공자위대 전투기 10대를 보내 한‧중‧일‧러 군용기 30여대가 3시간 12분동안 우리 영공에서 뒤엉키면서 자칫 군사적 충돌을 부를 뻔한 아찔한 상항도 전개됐다.

외국 군용기의 우리 영공 침범은 처음으로 실수가 아니라 계획된 도발이라는 시각이 많다. 중‧러 폭격기는 편대를 이뤄 KADIZ에 들어왔고, 경고사격을 받은 뒤에도 재진입했다. 중국은 지난해에만 8차례 사전 통보없이 KADIZ에 진입했으며, 러시아는 하루에 4차례 KADIZ를 침범한 일이 있다.

이에 대해 미국의 군사 전문가들은 중‧러 폭격기의 한국 영공 침범이 철저하게 계산된 전략이며 한‧미‧일 동맹 균열은 물론 한‧일 갈등을 더 악화시키려한 것이라고 분석했다. 

한‧미 합동군사훈련 축소와 한‧미‧일 공조 약화 추세에서 일본정부의 한국에 대한 수출규제 조치로 한국정부는 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지소미아) 파기를 시사했다. 이런 위기 상황이 발생하자 중‧러가 한·미·일 대응체계를 테스트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24일 미국의소리(VOA) 방송이 인터뷰한 미8군 사령관 출신 버나드 샴포 예비역 중장은 “중국과 러시아가 동북아시아에서 존재감을 과시하는 동시에 최근 삐걱대는 한‧일 공조를 시험해본 것 같다”고 분석했다. 

미 특수전사령부 출신인 데이비드 맥스웰 민주주의수호재단 선임연구원도 “한‧미‧일 3국 관계의 균열을 노린 의도된 행동이다. 특히 한‧일 사이에 더 많은 마찰의 씨앗을 뿌리고 있다”며 “한국과 일본이 역내 전략적이고 군사적인 조율을 해나갈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런 미 군사 전문가들의 분석대로 일본정부 대변인 스가 요시히데 관방장관은 “한국 군용기가 경고사격을 실시한 것은 다케시마 영유권에 관한 우리나라의 입장에 비춰 도저히 수용할 수 없고 매우 유감이다”라고 말했다.

중‧러 군용기에 의해 일본 방공식별구역(JADIZ)를 침범 받았으면서도 오히려 한국 군을 견제하기에 바쁜 일본의 적반하장식 발언은 위기 상황에서도 독도가 한일 간 영유권 분쟁지역임을 각인시키고, 이를 국제 문제로 확산시키려는 의도가 담긴 것으로 보인다. 

   
▲ 지난해 12월 9일 중국 지린성 훈춘 팡촨(防川) 전망대에서 바라본 두만강 하구의 북·중·러 접경지역 알림판. 오른쪽 뒤편으로 북-러 간 철교가 보인다./연합뉴스
중‧러 군용기 출격은 미국의 인도·태평양 전략에 공동 대응하고, 한‧미‧일 3국 군사협력을 교란하려는 의도가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특히 중‧러의 도발이 존 볼턴 미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의 방한일에 맞춰졌다는 점이 이를 뒷받침한다. 

볼턴 보좌관은 이날 오산 미군 기지를 통해 입국하면서 트위터를 통해 ‘인도·태평양 안보와 번영에 필수적인 중요한 동맹이자 파트너인 (한국의) 지도자들과 생산적인 만남을 기대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와 관련해 조성렬 국가안보전략연구원 자문연구위원은 이날 KBS 시사프로에 출연해 “트럼프 대통령이 2017년 11월부터 인도-태평양전략을 얘기하고 있는데 이 부분들이 그동안에는 경제 부분에 치중됐다가 올해 6월1일부터 미 국방부가 인도-태평양전략 보고서를 발표했다”며 “여기서 명확하게 중국과 러시아에 대해 이른바 현상을 변경하는 위협국가로 규정했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어 “지금 미국이 본격적으로 기존 인도-태평양전략에 포함되어 있던 일본이나 호주, 인도에 더해서 한국을 적극적으로 견인해나가려고 하고 있다”며 “아마 이번 볼턴 국가안보보좌관의 방한도 그런 내용이 포함되어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덧붙였다.

미국은 여전히 한‧미‧일 3국 군사협력을 강조하고 있지만 문재인정부에 불만을 품은 일본 아베정권은 경제보복에 열중하고 있다. 지소미아가 파기될 정도로 일본이 규제를 강화한다면 한‧미‧일 안보협력은 회복하기 힘들 정도로 파국을 맞을 수 있다. 이런 가운데 중국이 러시아와 우정을 과시하면서 ‘일대일로’ 전략을 확장시키고 있는 것이다.

이럴 경우 북한 문제로 어정쩡한 문재인정부의 입장을 미뤄볼 때 한반도가 강대국의 안보 경쟁의 각축장으로 전락할 우려도 커졌다. 이날 청와대는 러시아 차석무관과 국방부 정책기획관 간 대화를 인용해 “러시아가 우리 영공을 침범한 것은 기기 오작동이었고, 즉각 조사에 착수해 필요한 모든 조치를 취하겠다고 말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앞서 러시아정부는 우리 영공에 침박하지 않았다는 입장을 낸 바 있어 온도차를 보이고 있다.
 
문재인정부는 정권 초기부터 북한 문제에 ‘올인’하면서 지구상의 마지막 냉전구도를 해체할 것을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미국과 중국의 패권 경쟁이 있는 한 동북아에서 한‧미‧일 대 북‧중‧러 대립구도는 심화될 수밖에 없다. 특히 중국은 미국의 타이완에 대한 무기 판매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미·중 관계를 떼어놓고 동북아 정세를 전망할 수 없는 이유이다.

그런데도 청와대는 전날 국가안전보장회의를 소집하지 않았고, 정의용 국가안보실장과 김유근 안보실 1차장을 중심으로 대응 전략을 논의했다. 정 실장이 러시아를 향해 “이번 사태를 매우 엄중하게 보고 있다”고 밝혔지만 문재인 대통령은 전날에 이어 이날까지도 중‧러의 도발에 아무런 입장을 내놓지 않고 있어 정부가 안이한 대응을 하고 있다는 비판이 커진다.

문재인정부는 그동안 북한 문제를 풀기 위해 중국의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THAAD‧사드) 보복 조치에 ‘3불’(사드 추가 배치 금지, 미국의 미사일방어체계(MD) 편입 금지, 한미일 군사동맹 발전 차단)을 약속한 바 있다. 이번 중‧러의 도발이 노골화된 상황에서 앞으로 미‧일이 어떻게 대응할지에 따라 문재인정부의 외교가 본격 시험대에 올랐다는 전망도 나온다.  

한편, 미국 국방부는 23일(현지시간) “미국은 중국과 러시아 항공기의 영공(air space) 침범에 대한 한국과 일본의 대응을 강력 지지한다”면서 “동맹 방어를 위한 미국의 약속은 철통같”"고 밝혔다. 하지만 한국과 일본 중 어느 나라 영공에 대한 침범인지 분명히 밝히지 않으면서도 ‘한·일의 대응을 지지한다’고 해 일본의 자위대 군용기 출격까지 인정하는 것이라는 해석이 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