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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숭실대 한국기독교박물관 소장 3·1독립만세운동 당시 숭실 교정에 게양되었던 태극기./사진=숭실대학교 |
[미디어펜=유진의 기자]숭실대학교는 3·1운동 100주년을 맞이해 3·1운동에 참여한 숭실 출신 동문을 집중 조사하고 국가보훈처에 서훈 신청을 하여 김근식(애족장), 김사현(대통령 표창), 박종은(애족장) 선생이 광복절 독립유공자로 선정됐다고 12일 밝혔다.
애족장에 서훈된 김근식(金根植) 선생은 1895년 황해도 봉산군 산수면 신원동에서 출생했고 1917년 숭실중학을 제13회로 졸업했다. 기독교 학교 교사로 있던 1919년 4월 9일 황해도 서흥군(瑞興郡) 목감면(木甘面) 흥수시장에서 독립만세를 부르다 헌병주재소에 체포됐다. 해주지방법원 서흥지청으로 압송돼 보안법위반으로 징역 1년을 선고받았다. 이후 황해도 봉산군의 보명야학 교사 등으로 활동하며 교육구국에 헌신했다.
애족장에 서훈된 박종은(朴鍾恩) 선생은 1884년 평안남도 평양 경창리에서 출생했다. 1915년 숭실중학을 제11회로 졸업했으며 1916년에는 진남포의 용정리교회 부속 득신학교 교장으로 재직했다. 1919년에는 숭실과 광성고보 출신 및 기독교 청년 등이 조직한 대한독립청년단 총무부장으로 활동하면서 상해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평안남도 대의원 김홍서(金弘敍)로부터 독립운동 관련 문서를 받아 배포했다. 1919년 3월 1일 오후 대동군 용산면 하리(下里)교회의 전도사로 재직 중 평양의 만세운동 소식을 듣고 100여명의 주민에게 ‘조선독립의 연유(緣由)’ 라는 연설을 하고 다음날 신도 100여명을 이끌고 함께 평양의 만세운동에 참여했다. 중국 봉천으로 피신했다가 11월 귀환하면서 체포돼 평양지방법원에서 징역 1년을 선고 받았다. 이후 평양기독교청년회에서 활동했고 평양위험청년단 대표로 임시정부 국민회의에 참가했다가 1924년 사망했다.
대통령표창에 서훈된 김사현(金士賢) 선생은 1887년 충청남도 공주군 공주면에서 출생했고 1912년 숭실중학을 제9회로 졸업했다. 1919년 3월 24일 충남 공주군 공주면 대화정 영명학교(永明學校)에서 일본 동경에서 귀국한 오익표(吳翼杓)·안성호(安聖鎬) 등과 함께 4월 1일 공주시장에서 만세운동 거행 계획을 수립했다가 보안법 및 출판법위반 혐의로 체포돼 옥고를 치렀다. 이후 공주청년회 덕육부 부원으로 지역 청년운동에 앞장섰다.
1919년 3·1독립만세운동에 참여해 족적을 남긴 숭실 동문은 총 114명으로 파악되고 있으며, 이 가운데 2019년 현재 51명이 국가보훈처로부터 독립유공자 포상을 받았다. 최근 3년간 한국기독교박물관에서 독립유공자 발굴사업을 진행해 독립유공자 포상을 받은 숭실 동문은 10명이고, 2019년 8월 현재 독립활동 공적을 인정받아 독립유공자로 추서된 숭실 동문은 90명에 달한다.
[미디어펜=유진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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