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펜=온라인뉴스팀] 일본이 한국을 백색국가(화이트리스트)에서 제외하는 수출무역관리령 개정안 시행일이 열흘 앞으로 다가오고 있다. 여기에 미중 무역분쟁이 장기화하고 있고, 세계무역기구(WTO) 개발도상국 지위를 두고 미국이 점점 압박의 강도를 높이는 등 한국을 둘러싼 통상환경이 점점 악화일로를 걷고 있다. 이에 정부는 기업이 받는 영향을 최소화하기 위해 수출 대응 지원에 총력을 기울이며 업계 역시 대체 수입처 발굴·핵심 기술 국산화 등에 나섰지만, 잇따른 악재로 인해 불확실성이 커지면서 기업활동의 고충을 토로했다.
18일 정부와 업계에 따르면 일본은 지난 7일 자국의 백색국가에서 한국을 제외하는 수출무역관리령 개정안을 공포했고 20일 뒤인 28일부터 본격적으로 시행된다.
최근 수출규제 적용 대상인 포토레지스트에 대한 대(對)한국 수출을 허용하기는 했지만, 한국 정부의 계속된 대화 제의를 거부하는 등 전반적인 기조에는 변화가 보이지 않음에 따라 개정안은 예정대로 시행될 것으로 전망된다. 한국이 일본의 백색국가에서 제외되면 전략물자 비민감품목은 포괄허가에서 개별허가 대상으로 전환된다. 캐치올(catch all) 규제에 따라 비전략물자라도 무기로 전용될 수 있는 품목은 개별허가를 받아야 한다.
반도체 소재 3개 품목을 지정해 규제했던 첫번째 조치와는 달리 어떤 품목이 어떻게 규제를 받을지 정확히 알 수 없는 상황이다. 전략물자관리원은 지난 14일 '일본규제 바로알기' 사이트에 기업이 일본의 수출규제로 인해 영향을 받는 품목을 검색할 수 있는 기능을 신설했다. 수입하려는 물품을 검색창에 입력하면 해당 품목이 통제리스트(전략물자 명단), 감시대상(watch list) 품목, 캐치올 규제 대상에 속하는지 여부를 확인할 수 있다.
감시대상 품목은 대량살상무기(WMD) 등으로 사용될 우려가 높은 품목(40개·시리아 대상 21개)과 재래식무기 물자로 전용될 가능성이 큰 품목(34개) 목록을 의미한다. 감시대상 품목과 캐치올 규제 대상 품목은 무조건 개별허가를 받아야 하는 것은 아니고, 일본 경제산업성이 허가를 받도록 통보하거나 수출자가 해당 품목이 우려 용도로 사용된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만 허가 대상이 된다.
전략물자관리원은 일본 수출무역관리령 개정안 시행 다음날인 29일 일본 수출규제 관련 세미나를 개최한다. 전략물자관리원이 7∼23일 이 세미나 참가 신청을 받은 결과 정원인 50명을 초과한 66명이 신청했다. 기업의 관심이 상당히 높은 점을 고려해 전략물자관리원은 오는 9월 10일 2차 세미나를 개최키로 했다.
한국 기업이 맞은 악재는 이뿐이 아니다. 지난달 한국 수출은 지난해 같은 달 대비 11.0% 감소하며 8개월 연속 마이너스 행진을 이어갔다. 한국의 최대 수출처인 미국과 중국 간 무역분쟁이 길어지면서 이들 지역으로의 수출과 전반적인 세계 경기가 위축됐기 때문이다. 지난달 대중국 수출은 16.3%, 대미국 수출은 0.7% 줄었다. 세계무역기구(WTO) 세계교역전망지수는 올해 2분기 96.3으로 9년 만에 가장 낮은 수준을 기록하기도 했다.
미국이 WTO 개도국 지위 개혁을 두고 압박을 가하는 점도 한국 무역에는 악재가 될 수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지난달 26일 일부 국가의 WTO 개도국 지위를 문제 삼으며 90일 내 실질적인 진전을 이뤄내지 못하면 이들 국가에 대한 개도국 대우를 일방적으로 중단하겠다고 발표했다.
WTO는 개도국을 국제 자유무역질서에 편입시키기 위해 '개도국에 대한 특별대우(S&D·Special and Differential Treatments)'를 시행하고 있다. WTO 체제에서 개도국 지위를 인정받으면 관세 감축·철폐 등 협약 이행에 더 많은 시간이 허용되고 농업보조금 규제도 느슨하게 적용된다. 한국은 1996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가입할 당시 선진국임을 선언하라는 요청을 받았지만, 농업 분야에서 미칠 영향을 우려해 농업을 제외한 분야에서 개도국 특혜를 주장하지 않기로 합의하고 개도국으로 남았다.
미국이 WTO 개도국 지위를 문제 삼은 것은 지난 2월부터다. 이번에 새롭게 등장한 변수는 아니지만, 트럼프 대통령이 점차 압박의 수위를 높여가고 있다는 점이 부담으로 작용한다. 트럼프는 지난 13일에도 펜실베이니아주(州) 모나카에 있는 셸 석유화학단지를 방문한 자리에서 "상태가 개선되지 않는다면 미국은 세계무역기구(WTO)에서 탈퇴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미국이 WTO 개도국 지위를 문제 삼고 나선 것은 중국을 겨냥한 조치로 해석되지만, 결국 WTO에서 개도국 지위를 강화하거나 미국이 자체적으로 일부 국가에 대한 개도국 특혜를 거둬들인다면 한국도 그 대상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미국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이거나 가입 절차를 밟고 있는 국가 △현행 주요 20개국(G20) 회원국 △세계은행 분류 고소득국가 △세계 무역량에서 0.5% 이상을 차지하는 국가 등 4가지 기준 중 하나라도 속하면 개도국이 될 수 없다고 주장한다. 한국은 미국이 제시한 4가지 기준에 모두 포함된다.
현재의 통상환경이 한국에 우호적이지 않은 상황에서 이미 8개월째 하향곡선을 그린 한국 무역이 장기간 침체기에 접어들 가능성도 높아지고 있다. 기획재정부는 16일 발간한 '최근 경제동향'(그린북) 8월호에서 올해 2분기 한국 경제에 대해 "대외적으로 글로벌 제조업 경기 등 세계 경제 성장세 둔화와 반도체 업황 부진이 지속하는 가운데 최근 일본 정부 수출규제 조치와 함께 미·중 무역갈등 심화 등 불확실성이 확대되고 있다"고 진단했다.
정부는 올해 추가경정예산에 일본 수출규제에 대응하기 위해 2천732억원을 편성하고 속도감 있게 집행하기로 했다. 업계도 사실상 비상경영체제에 돌입하고 수입처를 다변화하거나 주요 기술·부품의 해외의존도를 낮추는 데 신경 쓰고 있다.
SK그룹 계열 반도체 소재 회사인 SK머티리얼즈는 최근 고순도 불화수소 개발을 본격화한다고 발표했다. LG화학은 전기차 배터리의 소재인 양극재 국산화율을 높이기 위해 경북 구미에 2024년까지 이차전지 양극재 6만t을 생산할 수 있는 공장을 짓기로 했다.
정부는 "보관이 어렵고 연속공정에 필수적인 소재·부품은 제때 조달하지 못할 경우 생산에 차질을 빚을 우려가 있다"면서 "다만 대부분 업종에 대한 영향은 제한적"이라는 입장이다. 하지만 업계의 불안감은 여전하다. 수출입 다변화나 국산화가 단기 내 이뤄지기 어려울 뿐만 아니라 그렇다고 해도 통상환경의 불확실성이나 세계 경기 위축으로 인해 받는 부정적인 영향은 피할 수 없기 때문이다.
한 무역업계 관계자는 "미·중, 한·일 무역 갈등과 WTO 개도국 지위 등을 둘러싼 선진국과 개도국 간 갈등 등 국제사회 내 갈등의 골이 깊어지고 있다"며 "특정 국가나 기업의 문제를 넘어서 글로벌 무역 환경이 나빠지는 것이기 때문에 전 기업으로 어려움이 확산할 수 있다"고 우려감을 나타냈다.
[미디어펜=온라인뉴스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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