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펜=김태우 기자] 현대자동차 노조가 지난 27일 임금·단체협약(임단협)에 무분규로 잠정 합의하면서 기아자동차 노조의 셈법이 복잡해졌다.
그동안 기아차는 현대차가 합의한 조건에 맞춰 임단협을 마무리 짓는 관행이 있었지만 올해부터는 통상임금 이슈 등으로 양사의 형편이 달라졌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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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아자동차 양재동 사옥. /사진=미디어펜 |
31일 관련업계에 따르면 강상호 금속노조 기아차지부장은 지난 27일 성명을 통해 "올해 단체교섭을 통해 지난 10여년 간 현대차 교섭이 마무리되고 기아차가 따르는 교섭관행을 팔피하고자 했고, 기아차 독자교섭을 통해 3만 조합원의 자존심을 높이고자 했으나 시간부족으로 교섭력에 한계가 있었다"면서 교섭중단 결정에 대한 조합원들의 이해를 구했다.
앞서 기아차 노조는 지난 22일 교섭 중단을 선언하고 추석 이후 출범할 차기 집행부에 이관하겠다는 방침을 밝힌 바 있다.
기아차 노조 현 집행부가 차기 집행부로 교섭을 넘긴 것은 올해 임단협 교섭에는 다른 해와 달리 복잡한 상황이 얽혀 있어 추석 전 타결이 사실상 불가능해졌다는 판단에 따른 것으로 보인다.
그동안은 현대차 노사가 교섭을 타결하면 기아차도 동일 조건으로 타결하는 모습을 보여왔다. 같은 현대차그룹 계열의 완성차 업체인지라 이미 현대차의 교섭 결과를 본 기아차 노조가 그보다 나쁜 조건을 수용할 리는 없다.
반대로 기아차가 현대차보다 좋은 조건으로 타결할 경우 앞서 타결한 현대차 노조가 반발할 게 뻔하니 양쪽을 맞추는 식으로 교섭이 진행돼 왔던 것이다.
하지만 올해는 상황이 다르다.
현대차는 임금성(기본급, 성과급)은 1차 제시안으로 내놓은 수준을 끝까지 고수했지만 노조는 이를 수용했다. 기본급 4만원 인상에 성과급 150% 조건은 사측의 1차 제시안이 잠정합의안까지 그대로 유지됐다. 일시금만 250만원에서 300만원으로 올랐을 뿐이다.
현대차 노조는 그 대신 앞서 기아차 노조가 통상임금 합의를 통해 사측으로부터 받아냈던 조건을 동일하게 적용받는 데 주력했다.
통상임금 소송 2심 판결까지 승소한 기아차 노조와 달리 2심 판결에서 패소한 현대차 노조로서는 임금을 조금 더 올리는 것 보다 기아차에 비해 차별받는 상황을 방지하는 게 시급했던 것으로 보인다.
현대차 사측 역시 아직 대법 판결이 남아있는 통상임금 소송 리스크를 해소하고 최저임금 위반 방지를 위한 임금체계 개선(상여금의 월할 지급)을 위해서는 노조와 합의를 할 필요가 있었기에 양측의 이해관계가 맞아 떨어졌다.
결국 '미래임금 경쟁력 및 법적안정성확보 격려금'이라는 명목으로 사실상의 '통상임금 미지급 소급분'을 근속연수별로 200~600만원씩 지급하고, 우리사주 15주를 추가로 지급하는 조건으로 합의에 이르렀다.
기아차 노조는 이미 지난 3월 통상임금 협상을 타결하면서 400~800만원의 미지급 소급분을 받은 상태다. 이런 상황에서 현대차의 임단협 합의 내용을 그대로 적용 받았던 관행을 유지할 경우 기본급 4만원 인상에 성과급 150%, 일시금 300만원 외에 얻을 게 없다.
현대차 노조는 '대가를 받고' 수용한 것을 기아차 노조는 '대가 없이' 수용하는 셈이니 집행부로서는 조합원들을 설득하는 데 상당한 어려움을 겪을 만한 조건이다.
하지만 차기 집행부로 넘긴다면 선거 과정에서 조합원들의 의견을 어느 정도 가늠할 수 있으니 교섭 방향을 잡기 상대적으로 수월하다.
현대차보다 더 받는 게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는 점을 인정하는 집행부가 선출된다면 그게 조합원들의 민심이니 관행대로 현대차와 동일 조건에 교섭을 마무리 지으면 된다. 반면, 그간의 관행을 깨고 현대차보다 더 받아야겠다는 공약을 내건 집행부가 선출된다면 강경 투쟁에 나서는 그림이 그려진다.
기아차 노조가 차기 집행부를 선출하고 사측과 다시 교섭 테이블을 차리는 시점은 빨라야 11월이 될 것으로 보인다. 추석연휴 이후 9월 말 선거관리위원회를 가동하더라도 선거를 마무리하고 신-구 집행부간 인수인계까지 마무리하려면 한 달 이상 소요되기 때문이다.
업계 한 관계자는 "엄연히 별개 회사인 현대차와 기아차가 매년 동일한 조건으로 임단협을 타결하던 관행은 일견 불합리해 보이기도 했지만 한편으로는 노사간 소모적 대립을 줄이는 역할을 해왔다"면서 "올해 관행이 깨진다면 기아차는 상당한 진통을 겪을 것으로 우려된다"고 말했다.
[미디어펜=김태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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