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출주도형 산업계 경쟁력약화, 생존 위기 망연자실, 탄력적 시행 필요

   
▲ 송덕진 자유경제원 제도경제실장
“시집도 가기 전에 포대기부터 장만한다”는 속담이 있다. 결혼도 안 한 처녀가 아기에게 필요한 포대기부터 준비한다면 너무 일찍 서두르는 것이 아닌가? 성미가 대개 급하거나, 때를 미리 예상하지 못해 너무 일찍 서둘러서 준비하는 경우를 비꼬는 표현이다.

모든 일에는 그에 맞는 시기와 적절한 대응이 필요하다. 사업도 적시적소에 자본, 노동, 토지 등 생산요소를 투입해야 자원의 낭비를 막을 수 있다. 그렇지만 대책 없이 괜히 서두르기만 한다면 자원 낭비가 심해지고 필요한 에너지가 모조리 소모되어 결국 효율성이 떨어질 것이다. 특히 치열한 생존경쟁을 치루고 있는 현대 경제상황에서는 비용을 최소로 하고 효율을 극대화하느냐가 사업의 성패를 좌우하기 때문에 무척이나 중요한 문제이다. 요즘 대한민국이 갑자기 결혼도 하기 전에 포대기부터 준비하려고 한다.

배출비중도 낮은 한국만 서둘러 실시
정부는 산업부문 온실가스를 올해 625만 톤 감축한 뒤 단계적으로 계속 확대해 2018년에는 약 5,676만 톤까지 감축한다는 의지를 가지고 2015년 1월 1일부터 온실가스(탄소)배출권거래제, 저탄소차협력금제, 화학물질관리법, 화학물질 평가 및 등록에 관한 법률 등 환경 관련 규제들을 시행키로 했다.

연료를 중유에서 LNG 등으로 대체하고 열병합발전 설비 확대와 철강, 시멘트 등 폐열 회수설비를 확대시키려고 한다. 환경보호단체, 온갖 환경관련 단체들이 상황도 제대로 모른 채 녹색만을 강조하면서 환경문제는 미룰 수 없는 시대의 대세임을 강조하면서 요즘처럼 목에 힘이 팍 들어간 적이 없어 보인다. 박근혜정부의 추진 의지는 확고하다.
 

재계가 가장 걱정하는 것은 온실가스를 배출할 수 있는 권리를 사고파는 제도인 온실가스(탄소)배출권거래제이다. 당장 온실가스를 줄이기 위해서 연료부터 바꿔야 하고, 폐열 회수설비를 엄청난 비용을 들여 구축해야 한다. 그래서 협약에 가입한 국가들이 이산화탄소 배출량을 의무적으로 줄여야 하고 이를 이행하지 못하면 탄소배출권을 무조건 사야 한다. 굴뚝 공장이 많은 한국의 대부분의 기업들은 온실가스 배출권을 구매해야 공장을 가동할 수 있다. 

   
▲ 박근혜정부가 탄소배출권 거래 규제를 당초 계획대로 강행키로 했다. 수출주도형 제조업계가 뜨악하고 고심에 휩싸였다.제조비용이 증가하면 국제경쟁력이 약화하고, 생존의 위기로 몰릴 수 있기 때문이다. 탄소배출규제는 탄소배출을 가장 많이 하는 미국과 중국, 일본도 아직 시행하지 않고 있다. 세계 이산화탄소 배출량에서 고작 1%대에 불과한 한국이 가장 먼저 총대를 메는 것은 제조업의 경쟁력약화를 초래할 수 있다. 최경환 경제부총리가 최근 경제장관회의를 주재하면서 탄소배출권거래 규제를 예정대로 시행키로 했다고 발표하고 있다.

온실가스(탄소)배출권거래제의 경우 유럽연합(EU)과 뉴질랜드 등 일부 국가만 시행할 뿐 온실가스 배출 상위국인 28.6%인 중국, 15.1%인 미국, 3.8%인 일본은 시행해도 하지 않고 있다. 오히려 배출비중이 1.8%에 불과한 우리나라가 서둘러 실시하겠다는 데에 산업계는 망연자실하고 있다. 탄소배출권을 구입하는데 기업들은 적어도 27조 원어치를 사야 한다. 결국 정부가 추진하려는 정책이 기업 경쟁력 약화는 물론 생존까지 고민하게 생겼다.

속빈 강정 교토의정서
기후변화에 대한 세계 각국의 행보는 처음 1992년 6월 브라질 리우에서 기후변화에 의한 기본 협약서가 채택되고 1997년 12월에 교토의정서가 채택되고 2005년 2월에 발효되면서 본격화되었다. 유럽연합(EU)과 일본이 선두에 서서 추진하고 미국은 마지못해 따라가는 입장이었다. 온실가스 배출 상위국인 중국은 개도국이라면서 탐탐치 않게 생각했다. 그러다가 미국, 캐나다가 탈퇴하고 그마저 주도했던 일본마저 교토의정서에 얽매이지 않겠다며 교토의정서를 폐지처럼 취급하기 시작했다.

실제로 일본은 2011년 후쿠시마 원전사고로 오히려 화력발전소를 더 사용하기 때문에 교통의정서를 준수하기 어려운 입장이다. 결국 유럽연합(EU)만 초지일관되게 실시하고 있지만 미국과 일본의 탈퇴, 중국의 무관심으로 속 빈 강정이 된 교토의정서를 대한민국만 국제사회의 약속이라며 잘 지키겠다고 서두르고 있다. 정말 이유가 되지 않는다. 제조업 비중이 높은 미국, 일본, 중국이 제도 도입을 주저하고 반대하고 있는데 수출주도형 한국이 오히려 앞장서서 제도를 도입하겠다고 하니...

때론 느리고 유연하게 가는 것이 오래가는 것
이런 상황이다 보니, 내년쯤에 선진국과 개도국에 포괄 적용할 새로운 규칙을 만들어 2020년 이후 새롭게 제도를 논의하자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그래서 산업계도 제도 시행을 미루자고 정부에 간절히 요청하고 있다. 실제로 기업은 오염물질 배출에 나몰라 하려고 하는 것이 아니다. 미국만 보더라도 탄소 배출을 줄일 신기술 개발에 온 힘을 쏟고 있다.

아직 대한민국은 기술이 부족하다. 산업계가 기술을 개발할 때까지 서두르지 말고 믿고 기다려 줘야 한다. 정부는 기술 개발에 필요한 규제를 풀어주는 일만 해도 도와주는 일이다. 요즘처럼 원화 강세로 수출경쟁력이 약화되어 기업들이 어려움을 겪고 있다. 공장 가동하는데 오히려 고비용이 들어간다면 이제 생존까지도 담보할 수 있을지 모를 것 같다. 글로벌 흐름에 맞게 유연하게 대처하는 정부의 태도가 절실히 필요하다. /송덕진 자유경제원 제도경제실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