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대로 가면 성장엔진 중단, 제도경쟁력 세계꼴찌수준, 제도개혁 사활달려

   
▲ 황인학 한국경제연구원 선임연구위원
#1. ‘궁지에 몰리면 변화를 꾀해야 하고, 변하면 길이 열리니 그렇게 길을 열면 한동안 오래 갈 수 있다(窮卽變 變卽通 通卽久).’ 시경(詩經), 서경(書經)과 함께 유교의 삼경에 속하는 주역(周易)에 있는 말이다. 주역은 기원전 중국의 주나라 때 만든 역서이니 궁즉변 운운은 낡고 닳은 상투어일 수도 있겠다.

그러나 이 말은 지금도 기업인들 사이에서 항상 기억하고 행해야 하는 경구로 널리 회자되고 있다. 특히 삼성그룹 이건희 회장이 ‘마누라와 자식 빼고 다 바꾸자’며 신경영 변화의 바람을 일으키며 삼성전자를 세계에서 내로라하는 일류기업으로 도약시킨 일화는 국제학계에서도 유명한 사례이다.

#2. 서양에도 이런 말이 있을까 싶어 구글을 검색해봤다. 바보 또는 어리석음(stupidity)에 대한 비유적 정의가 그나마 비슷했다. ‘바보는 같은 일을 도돌이표로 반복하면서 다른 결과, 더 나은 성과를 얻기를 바란다(Stupidity is doing the same thing over and over again and expecting different results)’는 것이다. ‘콩 심은데 콩 나고 팥 심은 데 팥 나는 법’인데도 매번 콩을 심으며 한번쯤은 팥이 날수도 있겠지 하며 기대하는 것은 어리석음의 극치라는 뜻이다. 다른 결과를 원한다면 당신의 선택, 사고방식, 행동 규칙을 바꿔야 한다.

#3. 경제도 마찬가지이다. 이대로 가면 한국경제의 성장 엔진이 멈춘다는 경고음이 도처에서 울리고 있다. 한강의 기적으로 일컬었던 고도성장은 추억이자 전설이 된지 오래이다. 2008년 이후 작년까지 6년 동안 한국의 경제성장률은 평균 2.9%로 세계 평균을 하회할 정도로 침체의 수렁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다.

   
▲ 서서히 끓는 냄비속에서 죽어가는 한국경제가 다시금 성장활력을 회복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궁즉통과 변즉통의 자세로 개혁과 혁신을 해야 한다. 시장제도와 규제를 획기적으로 혁파해야 한다. 규제개혁에 미온적인 해당부서는 해체시키고, 통폐합시킬 정도로 충격요법을 써야 한다. 박근혜대통령이 지난 3일 청와대에서 규제개혁장관회의를 주재하면서 정부부처들의 규제개혁의지가 미흡한 것을 질타하고 있다.

IMF 분석에 따르면 1991∼1996년 7.1%에 달했던 한국의 잠재성장률(물가상승을 유발하지 않고 달성할 수 있는 최대 성장률)은 2010∼2012년에는 3.3%로 추락했는데, 실제 성장률은 이보다 훨씬 못했다. 9월 4일, 한국은행에서 발표한 ‘2014년 2/4분기 국민소득(잠정)’에 의하면 최근에도 상황은 나아지지 않고 있다. 2분기 실질성장률은 전기 대비 0.5% 성장에 그쳤고 물가 변화를 반영한 명목 기준으로는 오히려 전기 대비 0.4% 하락하였다. 갈수록 나아지는 게 아니라 어려움이 가중되고 있다.

#4. 문제는 여기에서 그치지 않는다. 더욱 심각한 문제는, 지금보다 미래가 더 음울하다는 것이다. 한국개발연구원(KDI)이나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서 장기 추계한 바에 의하면 한국의 잠재성장률은 OECD 회원국 중 가장 가파르게 추락할 것이며, 2030년대에 이르면 0%대로 성장엔진이 멈출 것이라 한다.

작년 4월 맥킨지 연구소에서 한국경제에 대한 두 번째 보고서를 내면서 서서히 끓어가는 솥 안에서 자각하지 못한 채 죽어갈 운명의 개구리에 한국경제를 비유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한강의 기적이라며 전 세계가 칭찬하던 한국경제가 이제는 솥 안에서 철없이 죽어갈 개구리와 비유되는 상황이다.

여기에 대해 정치, 행정, 언론, 학계, 노동조합에서 한창 목소리 내는 세대들이 특히 자성해야 한다. 이들은 앞 세대에서 일군 한강의 기적을 누렸건만 정작 본인들은 다음 세대에게 실패한 한국경제의 부담만 떠넘길 수 있기 때문이다.

#5. 국민경제의 현재와 미래 전망이 이 정도면 막판까지 몰린 셈이다. 위기적 상황을 극복하고 음울한 전망을 뒤집으려면 변(變)하고 바꿔야 한다. 과거에는 변화의 매개적 노력이 없어도 ‘궁하면 통하는(窮卽通)’ 요행이 먹히기도 했다. 경제가 어렵다며 호들갑을 떨다가도 대외여건이 호전되면 수출이 늘면서 경제가 나아진 적이 있었다. 천수답에 가뭄 들어 손 놓고 걱정만 하다가도 요행히 비 내리면 씻은 듯이 문제가 해결되는 것과 같은 이치였다.

그러나 지금은 경제 게임의 양상이 근본적으로 바뀌었다. 수출이 잘되고 무역흑자가 계속 늘어도 저성장과 일자리 부족의 문제는 해결되지 않는다. 세계경제가 어렵다 힘들다 해도 우리나라 대표기업들은 부쩍 힘을 내고 있다. 한국경제가 세계 15위권에 오를 만큼 성숙해지고 우리 기업들의 글로벌 포트폴리오 전략이 자리 잡음에 따라 대외여건 변화는 과거만한 의미를 갖지 못한다.

예전의 경험을 추억하며 막연히 기다리면 나무 그루터기에 부딪쳐 죽은 토끼를 거저줍듯이(守株待兎) 문제가 해결될 것으로 기대하면 오판이자, 다음 세대에게 원죄를 짓는 임무 해태이다

#6. 무엇을 바꾸어야 하는가? 시장제도와 규제를 바꿔야 한다. 국회와 정부가 만들고 정부가 집행하는 이들 제도와 규제가 경제회생의 최대 걸림돌이기 때문이다. 며칠 전 세계경제포럼(WEF)에서 발표한 내용을 보아도 우리나라 제도경쟁력은 144개국 중 82위에 불과하고, 특히 정부 규제부담은 96위로 사실상 꼴찌수준이다.

그렇게 박근혜대통령이 경제혁신과 규제개혁을 강조했는데도 우리나라 제도경쟁력은 작년에 비해 8단계나 떨어졌다. 변즉통(變卽通)의 절박한 마음으로 좀 더 과감하고 신속하게 시장제도와 경제규제를 혁신해야 한다. 그러나 규제는 정치인과 공무원에게 특권이자, 놀이감이다. 이들에게 규제는 공익(公益)의 이름으로 사익(私益)을 누릴 수 있는 기회와 수단이다. 그러니 규제놀이를 스스로 포기하는 것은 이들의 입장에서는 합리적 선택이 아니다.

박근혜대통령의 독려에도 규제개혁이 녹록지 않은 까닭이다. 따라서 규제의 자진 반납이 기대에 미치지 못할 경우 아예 해당 규제부서를 없애거나 통폐합하는 방안까지 함께 검토할 필요가 있겠다.  /황인학 한국경제연구원 선임연구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