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무 냉소 무관심 팽배, 미디어는 어떤 글춤과 말춤을 추어야 소통하나

   
▲ 심상민 성신여대 교수
추석 커뮤니케이션 풍경 #1

"야당 민주당 사람들 머릿속에 뭐가 들었는지... 정치하는 O들 OOO속에 O밖에 안 들었다니까요". 택시 기사가 대뜸 받아치는 말이다. 고향에 도착해 택시 잡아타고 인사하고 행선지 를 말했더니 돌아오느니 격한 반응이다. 뒷자리에 아이도 타고 있어 가까스로 화제를 돌려 본다. "

여기 비가 많이 와서 피해가 켰다면서요?". 그랬더니 정치인 까던 방금 전과 180도 다른 얘기로 넘어갔다. "비가 무시무시하게 왔죠. 이번에는 산사태는 별로 없었는데 화명동 쪽 같은 데는 도로마다 물이 차서 엄청났어요". 욕을 않으니 듣기도 좋고 됐다 싶어 계속 깊이 팠다.

"화명동 거기 아파트 단지가 굉장히 크지 않나요?" 역시나 택시 기사 아저씨 말문이 확 터지기 시작했다. "아 그게 아파트 위쪽에 있는 화명동 저수지가 넘쳤으면 정말 큰 일 났을 겁니다. 나중에 보니까 그 때 저수지 담당자가 절묘하게 타이밍을 잘 잡았더라고요. 원래는 저수지 문을 열 때 주민들에게 동의를 구하고 해야 된다는데 상황이 워낙 급박하니 그냥 자기가 판단해서 지체 없이 바로 저수지 문을 열었던 거라. 그래서 그나마 그 정도로 피해가 덜했지요."

뉴스 보도에서 접해보지 못한 진짜 로컬 달리는 택시 통신이 흥미진진했다. "와 그런 일이 있었습니까? 정말 다행이었네요" 고무된 택시 기사 양반 코멘트를 더한다. " 그러니까요. 일하는 사람 하나가 판단하는 게 그렇게나 중요하다는 것 아닙니까?" 그러다 대화는 종착했다. 밤늦은 시각이라 아쉽게도 너무 빨리 도착해버려 수해와 저수지, 누군지는 모르는 훌륭한 관리자 이야기는 그저 거기까지 하는 걸로 마무리했다.
 

사실은 정치인 욕과 수해 상황 대화 그 짧은 사이에 택시 기사 아저씨 인생사도 스팟으로 등장했었다. 고향이 무주 골짜기라는 아저씨는 올 추석에도 고향에 못 간단다. "좋은 데 계셨네요"라고 말 건네자 여기 부산 사람들이 싫어하는 곳 아니냐고 받아치기도 했다. "아이 무슨. 부산은 바닷가라 툭 트여 있죠. 영도도 그렇고 제주도 전라도 분들이 얼마나 많이 와 있는데요." 했더니 가까스로 반쯤은 수긍하고 풀린 기분인 듯했다.
캬. 이놈의 불편한 지역감정. 지긋지긋하게 남아 있구나.

추석 커뮤니케이션 풍경 #2

추석 연휴 해운대는 정말 다문화다. 동백섬 순환도로. APEC 누리마루 건물, 등대 전망 보는 곳, 해변 구름다리, 황옥공주상을 거쳐 해수욕장이 시작되는 조선비치호텔까지 이르는 30여분 코스를 가보면 중국 관광객 요우커들을 비롯한 해외 방문객들과 동남아 근로자들 청년들로 꽉 차 있다. 특히나 동남아 근로자 청년들은 해운대로 여행 왔다기보다는 고향집 귀성하듯이 모이고 모여 거대한 하나의 현상을 만들어내고 있었다.

   
▲ 204년 추석민심은 미디어들의 어떤 글춤과 말춤에도 귀를 기울이지 않았다. 욕도 하지도, 쳐다보지도 않았다. 진보와 보수의 싸움, 세월호에 갇힌 정국 등에 대해 싸늘한 반응을 보였다. 민심은 먹고사는 문제에 관심을 가져주길 희망했다.

이들은 대부분 큰 백팩 가방을 짊어지고 왔다. 여성은 거의 없고 20대 남성이 99%다. 삼삼오오 많게는 5~6명 정도 모여 다니는 이들은 사진 찍기를 많이 한다. 간혹 한국인 가족들 휴대폰 촬영을 부탁받아 도와주기도 하지만 이들 동남아 친구들이 다니는 동선은 구석이고 가장 자리고 한 켠 다른 켠으로 떼밀려 있다. 좁은 해안 데크 산책길에 엄청나게 많은 사람들이 오가는데도 동남아 청년들은 따로 피해주고 몸을 틀면서까지 조용하고도 조심스럽게만 다닌다.

고운 최치원 유적지 같은 포토 포인트에 가면 이들이 크게 말하는 경우도 있지만 그 외에는 대부분 소리 없이 눈에 띄지 않게 다니곤 한다. 하지만 이들 동남아 청년들 얼굴들은 이미 때마다 너무나 많이 해운대에서 마주쳤었다. 설날 명절에도 여름 성수기 휴가철에도 새해 연초에도 동남아 청년들 수백 수천 수만명이 해운대로 모인다. 바다 저기 수평선 넘어 베트남으로 인도네시아로 방글라데시로 헤엄쳐 가려는 듯이 이들 젊은 아시아 빠삐용들은 모여 든다.

한국인으로서는 알아들을 수 없는 그들의 모국어들이지만 해운대에는 일 년 내내 때마다 묵언의 차례 상이 차려진다. 임진각 망배단이나 그 옆 철조망 앞 풀밭에 차려놓은 이산가족 차례 상 마냥 절절하고 애틋한 마음들이다.
 

가끔은 이들 동남아 청년들이 사고도 친다. 해수욕장 몰카 촬영을 하다 적발되기도 하고 공원 벤치에서 술 먹고 노숙하다 아침 6시면 순찰 도는 경찰들에게 쫓겨 가기도 한다. 죄 지은 사람 같은 표정과 몸짓으로 벤치에서 쫓겨나는 동남아 친구들을 보면 왠지 서글프고 마음이 좋지 않다. 해운대에도 리틀 베트남이나 리틀 인도네시아 같은 특별 문화구역이 있어야 하지 않을까? 그냥 아시아 문화의 거리나 장터처럼 멋진 장소라도 괜찮을 텐데. 싱가포르 클락키 구역처럼 힌두, 이슬람, 말레이시아, 스리랑카 등등 다양한 문화가 뒤섞여 찌지고 볶고 먹고 즐기고 마시는 명소 말이다.

더구나 부산은 아시안게임도 한 도시인데. 인천도 곧 그렇고. 추석연휴 해운대를 찾았지만 묵언 행렬을 이루는 동남아 청년들의 빈 칸 공백으로 전하는 블랙 커뮤니케이션 울림과 떨림이 무거웠다.

추석 커뮤니케이션 풍경 #3

다시 진보와 보수, 정치와 대통령, 여당과 야당 타령으로 돌아온다. 추석날 모인 가족들과 바깥에서 또 모인 친구들과 일단은 그 몹쓸 정치와 미디어, 미디어 속 국회 등속 얘기를 나눠 본다. 8월에 다녀가신 교황님 추억도 쏠쏠하다. 세월호 특별법 정국도 건드리기는 한다. 하지만 대체로 사람들은 욕도 하지 않고 쳐다보지도 않으려하는 무언의 커뮤니케이션으로 수렴되어가고 있었다.

"여당도 심했다. 논리를 떠나 따뜻하게 어루만져 주는 손길이 필요한데 그런 생각을 않는다"는 지적도 나오다가 금방 시들해진다. 화답하는 메아리가 별로 없다. "그깟 정치, 사회 얘기해서 뭐할라꼬?"하는 투다. 다른 사건 이야기도 재미없다. 추석 연휴인데 종편 채널 방송들은 아직도 유병언 만화책이다. 논객들 릴레이 바통 터치 연습으로 쭉 가고 있다. 여기도 한 마디 저기도 한 말씀 이번에도 같은 얘기 요 다음에도 비슷한 내용으로 말마따나 우직하게도 이 땅의 종편들은 이슈 몰기를 해댄다. 그럼에도 이번 추석 커뮤니케이션 진풍경은 묵묵부답 무념무상이다. "마이 떠들었다 아이가. 고마 해라" 식이다.

욕도 아까운 모양이다. 쳐다봐주는 시청자, 유권자 인간으로서 예의도 개나 줘 버리겠다는 작심이다. 이번 추석 커뮤니케이션 풍경들은 허무하고 냉소적인 무관심, 무력감으로 가득하다. 한국, 2014년 추석 대화와 소통을 이렇게 멋없이 보내면서 우리네 미디어들은 무엇을 다짐해야 할까? 욕도 말도 하지 않는 민심 앞에서 어떤 글 춤, 말 춤을 추어야 할까?
 

이제 민심은 제대로 먹고 제대로 사는 생활자를 돕는 진짜 커뮤니케이션만을 간절히 바라고 있음을 직시해야 한다. /심상민 성신여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