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수결 원칙 훼손, 국회설득은 장차관아닌 박근혜대통령몫,

 ‘존재의 이유’(raison d'etre)를 의심 받는 국회의 마비

정기국회가 열렸다. 하지만 국회는 공전 중이다. 세월호 특별법을 둘러싼 여·야·유족 간의 이견으로 야당인 새정치연합이 정기국회 일정을 보이콧 하고 있기 때문이다.

국회는 입법을 기준으로 보았을 때 지난 5월 2일 법안 처리 이후 4개월 10일 동안, 즉 1년의 3분 1을 정쟁만 일삼고 단 한 건의 법안도 통과시키지 못하였다. 사회적으로 국회는 권리이자 의무인 입법 활동을 속히 진행시키라는 강한 비판과 요구를 받고 있다.

9월 4일에 있었던 바른사회시민회의가 주도한 ‘국회정상화를 촉구하는 지식인 선언’이 그것이다. 인터넷에서는 국회가 본연의 할 일을 하지 않으려면 ‘없애라’ 또는 ‘해산하라’는 분노한 시민들의 의견까지 제기되고 있다. 이제 민심은 국회의 ‘존재의 이유’(raison d'etre)를 묻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우리 헌법에는 국회 해산의 방법이 없다. 국민이 직접 투표로 심판하는 방법이 가장 현실적인데 20대 국회의원 선거가 있는 2016년 4월 13일까지 17개월을 기다려야 한다.

의회(congress)는 국민의 의견을 책임 있게 바로바로 입법에 반영하는 책임성(accountability)과 반응성(responsiveness)을 보여야 한다. 그러나 국민들은 요즘의 무능하고 무력한 국회를 보면서 해산도 못하고 임기를 보장해주어야 할지 의문이 드는 것이다. 입법의 공백을 보이고 있는 국회에 임기 보장은 사치이다.

세월호 특별법을 둘러싼 여·야·유족 3자의 의견 차이는 해소될 여지가 보이지 않다. 지금의 정치 현안인 세월호 특별법에 대한 고민의 핵심은 입법(立法, legislation or lawmaking)이라는 국회의 고유의 업무가 국회 밖 집단의 요구 때문에 제대로 기능을 하지 못하는 대의민주주의 정치체제의 한계 노정이 국회선진화법로 인한 입법교착의 문제만큼 근본적인 문제라는 것이다.

국회 외부의 집단의 요구를 듣고 그것을 승화시켜 법안에 반영하는 것이 아니라 도리어 외부세력의 요구에 매몰되어 본연의 업무인 정기국회 일정조차 거부하고 있는 새정치연합, 그러한 야당을 국회 내로 끌어들이지 못하고 있는 새누리당의 정치력의 한계 또한 우리가 가진 대의민주주의 정치체제의 한계이다.

국회선진화법의 문제점은 이미 예상된 것이지만 이제는 매우 심각한 지경에 이르렀다. 발제자 현진권 원장이 지적한대로 우리는 이제 “국민들에게 싸우는 모습을 보이는 동물국회와 아무런 일도 하지 못하는 식물국회 중에서 어느 쪽이 한국 장래를 위한 길인지 생각해야”하는 시점에 와 있다고 하겠다.

   
▲ 김인영 한림대 교수는 11일 자유경제원 주최로 열린 <국회선진화법의 비극>정책토론회에서 패널로 참석해 소수당의 반대로 모든 법안 통과가 정지돼 있는 현행 식물국회를 타개하기위한 대안마련이 시급하다고 촉구했다. 선진화법을 헌법소원하거나, 관련법개정, 국회의장의 권한 강화등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왼쪽부터 김기수 변호사, 김상겸 동국대 교수, 현진권 자유경제원장, 김인영 한림대 교수, 차기환 변호사.

 국회선진화법의 문제들

국회가 보여야 하는 핵심 원칙은 대의성(representation), 책임성(accountability), 그리고 반응성(responsiveness)이다. 그런데 국회선진화법 때문에 3가지 핵심 원칙의 작동이 모두 훼손되었다.국회선진화법의 문제점을 구체적으로 설명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국회선진화법은 여·야의 타협과 합의만 강조했지 타협이 되지 않았을 시의 상황을 대비하지 않았다. 다시 말해 입법 과정에서 소위 ‘플랜 B(Plan B)’를 고려하지 않았다. 물론 다수당이 전체 국회의원의 2/3를 넘게 되면 법안 심의와 통과를 진행시킬 수 있지만 현재의 지역구도 하에서는 헌법 개정까지 가능한 2/3의 국회의원의 확보는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국회선진화법은 타협과 합의의 달성이라는 의도는 좋았지만 현실 상황에서 작동을 고려하지 않은 악법이다.

여·야의 타협이 어려운 경우 국회의장의 중개권이나 국회 의사일정 확정 권한을 주어 국회가 최소한으로는 가동이 될 수 있게 했어야 했다. 하지만 선진화법을 만들 당시 야당(민주당)은 국회의장을 정권의 하수인쯤으로 인식하고 법안 직권상정 권한을 없애는 방안에만 신경을 썼고 여당(한나라당)은 그 방안에 동의해주는 실수를 범했다.

둘째, 국회선진화법은 소수독재를 정당화시키고 있는 문제가 있다. 따라서 대의민주주의 정신에 부합되지 않는다. 구체적으로 보면 국회선진화법은 상임위에서 여야가 합의하지 않는 경우 상임위 재적의원 3분의 1 이상의 요구로 쟁점 법안에 대해 안건조정위원회 구성을 요구하면 여야 동수로 위원회를 구성해 최장 90일간 논의할 수 있고 조정안 의결은 재적의원 2/3 이상의 찬성이 필요하게 규정했다.

즉, 소수가 반대하면 법안 통과를 장기 지연시키고 위원회 2/3 찬성이 아니고서는 통과가 가능하지 않게 만들었기 때문에 소수독재를 정당화시키고, 다수결이라는 대의민주주의 원칙에 어긋나 있다.

나아가 쟁점이 없는 법안을 법안신속처리 대상 안건으로 지정하려해도 재적 과반수 요구로 발의할 수는 있지만 이후 재적 5분의 3 이상의 찬성으로 가결이 되어야 국회의장이 해당 안건을 신속처리 대상안건으로 지정할 수 있게 규정하였다. 이 역시 소수가 법안 통과를 지배하게 하는 소수독재를 합법화하고 있는 부분이다.

국회선진화법이 악법(惡法)으로 불릴 수 있는 또 다른 이유는 필리버스터의 종료를 과반수가 아니라 재적 5분의 3(180명)의 요구로 가능하게 규정하였다는 점이다. 대의민주주의의 핵심인 다수결의 원칙을 훼손하면서 소수의 권리를 보장하고 있는 조항이다. 소수의 권리 보장과 다수결은 동시에 함께 하는 것이지 하나를 위하여 다른 하나를 부인하면 대의민주주의는 작동하지 않고 무너지게 된다.

정치권이 단순 다수제 대의민주주의가 아니라 과반을 넘는 합의를 담아내는 '합의제 민주주의'(consensus democracy)를 지향하고 있음을 고려하더라도 대화와 타협의 문화적 전통이 일천한 우리의 정치에서는 시기적으로 성급한 시도로 보여 진다. 이른바 ‘국회선진화법’이 의도와는 달리 대화와 타협의 정치를 꽃피우지 못하고 무능과 분열의 정치를 지속시키는 도구로 변신하고 있는 현실 정치에 주목해야 한다는 것이다.

박근혜 대통령은 경제 활성화를 위해 ‘처리가 시급한’ 19개 민생법안을 일일이 설명하며 통과를 요청했고, 최경환 경제부통리는 투자, 주택, 민생분야 등 경제 활성화 관련 중점법안 30건에 대해 조속한 통과를 요청했지만 국회는 아무런 답도 하지 못하는 구조적 교착 상황에 처해 있는 것이다.

셋째, 국회선진화법은 국회 파행과 국회 무능의 책임을 모호하게 하고 있다. 과거에는 민생 법안이 통과 되지 않을 경우 국회 다수당의 책임을 문제 삼았다. 다수당이 그것도 통과시키지 못하느냐는 질책이었다. 하지만 이제는 소수 야당이 ‘인질’, ‘볼모’식 정치를 하면 다수당이라도 제도적으로 대응 방안이 없기 때문에 책임을 묻기 어렵게 되었다. 소수 야당의 경우 ‘소수 약자로서’ 다수당의 양보하지 않음을 문제 삼으면 되기 때문에 쉽게 책임에서 벗어 날 수 있게 되었다는 의미이다.

하지만 사실은 ‘국회선진화법’으로 그리고 그 덕분에 야당, 소수당도 국회 내에서 얼마든지 여당, 다수당과 투쟁할 수 있는 장(場)이 마련된 것이다. 그런데 새정치연합은 이러한 유리한 환경을 마다하고 장외로 튀어나가는 자기모순적 행위를 보여주고 있다. 이른바 ‘국회선진화법’은 국회 내 토론의 장 형성에만 관심을 기울였지 현재의 새정치연합처럼 의회 민주주의자에 의해서가 아니라 강경 시민사회단체에 끌려 장외로 나가는 모습을 보여줄 것을 가정하지 못했던 것이다.

   
▲ 김인영 교수는 패널로 나와 국회선진화법은 소수독재를 정당화하고, 여야간 합의가 안됐을 경우를 가정한 플랜B가 없는 게 치명적 한계라고 지적했다. 왼쪽부터 김상겸 동국대 교수, 현진권 자유경제원장, 김인영 한림대 교수.

 국회선진화법의 대안 모색

국회선진화법의 대안은 무엇인가? 첫째, 현재 새누리당이 준비하고 있다고 하는 헌법 소원은 자기 모순적이다. 과거 법을 만들 때 위헌 요소를 고려했어야지 당시 졸속으로 만들고 이제 와서 문제 삼는 것은 잘못을 스스로 인정하는 것이다. 박근혜 당시 비상대책위원장은 “반드시 통과시켜야 한다”고 했었다. 헌법 소원에 대한 판결이 1~2년 걸릴 것이고, 그 판결 역시 국회의 일은 국회가 해결하라는 것일 가능성이 높다. 시간만 오래 걸리고 효율성이 의심된다. 국회의 절차 문제를 ‘헌법소원’의 방식으로 사법부에 묻는 것은 정치실패를 자인하는 것이 된다.

둘째, ‘국회선진화법’을 개정할 필요가 있다. 국회선진화법을 만들 당시 여·야는 합의와 타협을 강요하고 강제하는 규정을 만들어 국회는 ‘몸싸움’ 국회라는 비난에서 벗어나고자 하였다. 타협과 합의의 비용, 비경제성, 비효율성은 고려하지 않고 ‘타협과 합의’라는 정치적 목적만 고려의 대상이 되었다. 즉, 당시 국회에서는 정치적 논리가 경제성이나 효율성, 사회비용의 논리를 압도하였다는 것이고 이것이 문제의 출발이다.

‘국회선진화법’의 목적인 정치적 타협과 합의의 가치를 존중하면서도 동시에 경제성과 효율성, 사회비용의 최소화가 함께 고려되는 정치적 지혜가 담긴 국회법으로 개정이 필요하다. 국회법 개정으로 현재의 국회 마비를 극복하여야 한다는 것이다. 몸싸움 국회라는 비난에서 벗어나 바람직한 국회를 만들기 위해 국회선진화법을 만들었는데 그 때문에 국회가 무능으로 비난을 받고 국회가 퇴보 중이며 존재의 의미가 부정을 받는다면 당연히 국회는 ‘국회선진화법’의 개정에 나서야 한다는 것이다.

국회법 개정 역시 국회선진화법 때문에 불가능할 수도 있지만 여론을 통한 국민의 집합된 명령으로 관철시켜야 한다. 1997년 외환위기 당시와 같이 국회의 존재 자체가 의심 받게 된다면 국회의원은 움직이게 될 것이다. 지금처럼 입법 부재의 상황이 만들어내는 비효율성과 사회비용 때문에 경제가 흔들리고 국회의 존재 역시 의심 받게 된다면 여·야가 움직일 것이다.

정의화 국회의장은 6월 2일 의장 취임 기자간담회에서 "국회선진화법과 관련해 어떻게 개정할 수 있을지 법률 검토를 시작할 것"이라며 "가능한 개정하도록 노력할 것이다"고 말했다. 의회민주주의 국가들의 기본 의결과정인 제적과반수 원칙으로 돌아갈 필요가 있음을 밝혔다.

국회의장의 직권 상정은 강화된 요건을 그대로 두더라도, 상임위 안건조정위원회의 심의 임수를 90일에서 최장 30~60일로 줄이고, 의결도 재적의원 2/3 이상 찬성에서 과반수로 개정이 필요하다. 그리고 법안신속처리 대상 안건 지정을 재적 과반수 요구로 발의와 출석의원 과반수의 찬성으로 쉽게 해야 할 것이다.

셋째, 국회선진화법의 핵심 내용을 고치지 전까지는 단기적으로는 세월호 특별법은 입법의 문제이므로 국회의장이 중재하여 성사시키도록 하고, 경제 살리기 입법과 정부조직법 개정은 대통령이 행정부의 수장으로 국회(여야)를 설득하는 것이 옳다. 국회 설득의 과제는 부처 장관에게 맡기지 말고 박근혜 대통령이 직접 풀어주어야 한다.

국회 설득은 대통령제 권력 구조에서 대통령이 해야 할 고유의 업무이고 ‘3권 분립 위에 군림했던 비정상적 대통령의 정상화’이다. 다시 말해 장관들이 야당 국회의원 설득까지 담당하는 것은 바른 업무 분담이 아니라는 것이다. 경제민주화 입법 등 국회의 지나친 규제 관련 입법 역시 대통령이 규제 혁파와 경제 살리기 차원에서 제동을 걸어야 한다.

정홍원 국무총리가 입법에 관해 야당의 협조를 구하기 위하여 9월 1일 정기국회 시작에 맞추어 새정치연합 박영선 원내대표를 방문했으나 만나지도 못하고 돌아 나온 사례는 박근혜 대통령의 대(對) 국회 설득의 필요성의 설득력을 높여준다. 박근혜 대통령은 5선의 국회의원이었고 누구보다 국회와 국회의원의 생리를 잘 아는 분이다. 개혁은 ‘원칙’의 대처식이 맞지만, 국회 설득은 ‘타협’의 메르켈식이 맞다. ‘원칙’과 ‘타협’을 모두 구사하는 리더십을 박근혜 대통령이 보여준다면 그것은 새로운 여성 리더십의 역사를 쓰게 되는 것이다.

넷째, 국회선진화법의 핵심 내용을 고치지 않을 것이라면 장기적으로는 국회의장의 권한을 강화시켜 국회선진화법으로 생기는 교착 상태를 돌파할 수 있도록 중재자의 역할을 맡겨야 한다. 국회선진화법은 국회의장의 권한을 빼앗고 국회의장을 진정 상징적인 자리로 만들어 버렸다. 그리고 여야 원내대표의 권한을 강화시켰다. 어느 나라에도 국회의장을 이렇게 허수아비로 만든 국회는 없다. 의장의 직권상정을 없앴다면 여야가 합의하지 않는 경우 조정의 권한이라도 주었어야 한다.

미국 하원처럼 하원의장은 다수당의 리더로서의 당파성을 갖지만, 하원의원들의 대표이자 하원의 행정적 수장이고, 규칙위원회 위원 배정 권한을 가지며 의사일정 조정권을 가지고 있다. 본회의 의사일정과 의안 처리에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도록 권위를 높여 조정할 수 있도록 제도화해야 할 것이다. /김인영 한림대학교 정치행정학과 교수

(이 글은 자유경제원이 11일 자유경제원 회의실에서 개최한 <국회선진화법의 비극>이란 정책토론회에서  김영인 한림대교수가 패널로 참석해 발표한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