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 선진화법의 위헌성에 대하여>
서언
새정치민주연합(새민련)은 세월호 희생자 유가족 대표단이 지정하는 자에게 수사권, 기소권을 사실상 부여하는 내용의 세월호특별법안 통과를 요구하며 수개월째 국회 본연의 업무를 저버리고 있다. 새누리당은 재적과반수의 의석을 가지고도 이른바 국회선진화법 때문에 법안 하나를 통과시키지 못하고 있다. 국회는 식물국회가 되고 있다. 민생법안은 수개월 내지 길게는 수년 째 상임위원회에 묶여 있다.
이런 상황을 초래한 중요한 원인이 국회선진화법이어서 그 내용이 무엇인가 및 그 위헌성 여부에 관하여 의견이 분분하고, 위헌인 경우 이를 해소할 방법이 무엇인가에 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국회선진화법의 내용
국회선진화법이란 2012. 5. 25. 법률 제11453호로 개정되어 같은 달 30일부터 시행되고 있는 국회법의 일부 규정을 이른다. 국회선진화법이 만들어지기 이전에는 국회의 입법 과정은 아래와 같았다. 의원 10인 이상이 법안을 발의하면 의장은 법률안을 인쇄하여 의원들에게 배부하고 소관상임위원회에 심사기간을 정하여 회부하며(제79조, 제81조, 제85조), 소관상임위원회는 대체토론을 거친 후 상설 소위원회의 보고를 거친 후 찬반 토론을 하여 재적 과반수 출석, 출석위원 과반수 의결로 위원회 의결을 한 후(제54조, 제58조) 법제사법위원회의 심사를 거쳐(제86조) 의장이 본회의에 부의하는 것이 원칙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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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차기환 변호사는 11일 자유경제원 주최로 열린 <국회선진화법의 비극>정책토론회에서 패널로 참석, 국민기초생활수급권자가 위헌심판 청구와 헌법소원을 제기하는 방안을 제시했다. 국회의원들이 국회를 상대로 권한쟁의심판을 청구하는 방안도 거론됐다. 오른쪽부터 차기환변호사, 김인영 한림대교수, 현진권 자유경제원장, 김상겸 동국대 교수, 김기수 변호사. |
단, 의장은 위원회에 회부하는 안건이나 회부된 안건에 대하여 심사기간을 정할 수 있고 위원회가 그 안건에 대하여 이유없이 기간 내 심사를 마치지 못하는 경우 의장은 중간보고를 들은 후 본회의에 직권으로 상정할 수 있었다(제86조).
국회선진화법은 위와 같은 법률안의 심사 회부 과정을 소수파에게 일방적으로 유리한 내용으로 변경하였다. 현행 국회법은 안건조정위원회를 두고 재적위원 1/3 이상이 요구하는 경우 안건조정위원회에 회부하는데, 안건조정위원회는 여 야 동수로 구성하며 의결은 재적위원 2/3의 찬성으로 한다(제57조의 2). 또 위원회에 회부된 안건에 대하여 재적의원 과반수 또는 재적위원 과반수의 찬성으로 의장 또는 소관 위원장에게 신속처리안건으로 지정하여 줄 것을 요청하면 재적의원 2/3 또는 재적위원 2/3 이상 찬성하면 신속처리대상안건이 된다.
이 경우 신속처리대상안건으로 지정된 날로부터 180일(법제사법위원회의 체계 자구 심사 대상의 경우에는 90일) 이내 심사를 완료하지 않는 경우에는 법제사법위원회 또는 본회의에 부의된 것으로 본다. 그 이외 국회선진화법은 필리버스터 제도를 도입하여 소수파의 권리 보호를 강화하고(제106조의 2), 의장석 또는 위원장석을 점거하는 행위 또는 의원의 국회 회의장 출입을 방해하는 행위를 금지하고 위반시 징계규정을 두었다(제148조의 2, 제155조 제7호의 2, 제156조 제7항, 제148조, 제155조 제7호의 3).
위헌성 여부
헌법 제49조는 의결정족수와 의결방법에 관하여 ‘국회는 헌법 또는 법률에 특별한 규정이 없는 한 재적의원 과반수의 출석과 출석의원 과반수의 찬성으로 의결한다. 가부 동수인 때는 부결된 것으로 본다’라고 규정하고 있다. 이는 헌법상 다수결의 원리를 국회 의결의 일반적 원칙으로 하고 있으므로 국회는 법률안을 의결함에 있어 재적의원 과반수 출석 및 출석의원 과반수 의결로 하는 것이 헌법상 원칙이다.
헌법상 이에 대한 예외는 헌법이나 법률에 특별한 규정을 두어 다른 의결정족수를 규정하고 있는 사항으로 한정하고 있다. 헌법상 특별정족수가 요하는 의결사항으로는 대통령이 재의결을 요구한 법안에 대하여는 재적의원 과반수 출석과 출석의원 2/3 이상의 찬성이 있어야 하고(제53조 제4항), 국무위원 해임 건의안은 재적의원 과반수의 찬성이 있어야 하며(제63조 제2항), 국회의원 제적시 재적의원 2/3 이상의 찬성이 있어야 하고(제제64조 제3항), 국무위원 탄핵은 재적의원 1/3 이상 발의 및 재적의원 과반수의 찬성이, 대통령 탄핵은 재적의원 과반수의 발의 및 재적의원 2/3의 찬성이 있어야 하며(제65조), 계엄선포의 해제 요구는 재적의원 과반수의 찬성이 있어야 하고(제77조 제5항), 헌법개정은 국회의원 과반수의 발의 및 재적의원 2/3의 찬성으로 하고(제128조 제1항, 제130조 제1항).
국회선진화법은 위에서 본 바와 같은 헌법상의 대의민주제의 원리라 할 수 있는 다수결의 원칙을 위반한 것이다. 다수당이 재적의원 2/3를 확보하지 못하는 경우 소수파의 협조가 없다면 원천적으로 법률안의 통과가 불가능하게 된다. 국회선진화법의 제정 이유를 보면 국회에서 쟁점 안건 심의 과정에서 물리적 충돌을 방지하고 안건이 대화와 타협을 통하여 심의되도록 하겠다는 것이다. 현실적으로는 수년 째 통과되지 못한 안건이 누적되고 있고 심지어 수개월째 안건이 하나도 통과되지 못하는 사태가 발생하고 있다. 헌법상 다수결 원리를 저버린 결과라 하지 않을 수 없다.
혹자는 헌법상 ‘법률에 특별한 규정이 있는 경우’ 다른 의결정족수를 규정할 수 있으므로 국회선진화법이 합헌이라 강변한다. 헌법상 다수결 원칙인 일반적인 국회 의결정족수보다 가중하여 특별의결정족수를 요구하는 것은 일반적인 법안보다 그 중요성이 합리적으로 인정되는 경우에 한정하고 있다. 그러한 사정은 위에서 인용한 특별정족수가 요구되는 사항들이 어떤 것인가 하는 점을 보면 알 수 있다.
국회선진화법은 법안의 내용이 무엇인가에 관계없이 상임위원회의 재적위원 1/3 이상이 쟁점안건으로 지정할 것을 요구하거나 상임위원회의 과반수 또는 국회의원 과반수가 신속처리대상안건으로 지정하여 줄 것을 요구하기만 하면 소관상임위원회의 2/3 또는 의원 2/3의 찬성이 없으면 본회의에 회부될 수가 없게 만든다.
이는 헌법 제49조를 사실상 형해화(形骸化)하는 것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국회 상임위원회 위원 1/3이 요구하는 안건이면 무엇이나 대통령 탄핵이나 헌법 개정안 의결과 같은 다수결이 확보되어야 겨우 본회의에 상정될 수 있다는 것이 된다. 이는 헌법제정권자인 국민들이 전혀 예상한 바도 아니고 위임한 바도 아니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세상의 어떤 회의체도 회의 안건 상정시 의결요건보다 회의에 상정하기 위한 절차상의 요건을 더 가중시켜 놓고 정상적으로 운영될 수는 없다.
결어- 헌법소송의 가부에 관하여
국회선진화법의 위헌성은 너무나 명백하다. 실제 그 폐해는 이루 말할 수 없다. 이런 규정을 그대로 두고서는 현재 국회의원들의 수준과 정쟁 방식에 비추어 국회가 정상적으로 운영될 수가 없다.
그러면 국회선진화법 규정을 헌법재판소에 제소하여 위헌결정을 받을 수 있을 것인가? 헌법재판에는 추상적 규범통제와 구체적 규범통제가 있다. 전자는 위헌인 법률로 인하여 개인의 기본권이 침해되는지 여부에 관계없이 누구나 그 법률이 위헌이라고 하여 헌법재판소에 심사를 청구하는 것을 허용하는 것이다.
후자는 비록 법률이 위헌이라고 하더라도 그 법률이 재판의 전제가 되거나 그 법률로 인하여 개인의 권리가 침해되는 경우에 헌법 재판을 허용하는 제도이다. 우리나라는 후자의 제도를 채택하고 있다(헌법재판소법 제41조, 제68조). 그러므로 개인이 직접 국회선진화법의 규정을 들어 위헌법률심판청구나 헌법소원을 제기할 수는 없다.
검토가능한 방안으로 다음과 같은 방안을 검토하여 볼 수 있을 것으로 생각된다. 첫째 방안은 국회의원 과반수가 국민기초생활보장법개정안 등 사회안전망에 관련된 법안을 신속처리대상안건으로 지정해 줄 것을 국회의장에게 요구하고, 동법안에 따르면 수급자에 해당되는 자가 정부를 상대로 하여 위헌적인 법률로 수급권을 침해당하였다고 손해배상청구를 한 후 그 재판의 전제가 되는 국회선진화법에 대한 위헌심판청구를 하는 방법이 있다.
둘째 위와 같은 수급권자가 국민기초생활보장법안 통과에 대한 동의를 받은 것을 소명하여 자신의 생존권적 기본권이 국회선진화법 때문에 침해되었다는 이유로 헌법소원을 제기하는 방안과 셋째 국회의원이 국회를 상대로 하여 권한쟁의심판을 제기하는 방안이 각각 있다.
헌법재판의 요건에 대하여는 학계 및 실무계에서 보다 심층적으로 검토를 거친 후 제소하여야 할 것으로 생각된다. 수개월 째 국정이 표류하고 있다. 세월호특별법안 파동과 같이 위헌적인 법안을 통과시키지 않으면 다른 법안을 일체 통과시키지 않겠다고 하는 정쟁이 벌어지고 있다. 국회선진화법의 위헌결정을 받아내는 것만이 국정을 정상화시키는 방안이라 생각한다. /차기환 변호사
(이 글은 자유경제원이 11일 자유경제원회의실에서 주최한 <국회선진화법의 비극>이란 주제로 열린 정책토론회에서 차기환변호사가 패널로 참석해 발표한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