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일 오전 국정농단 파기환송심 첫 공판 열려
이재용 "많은 분들께 심려끼쳐 송구스럽게 생각"
[미디어펜=조우현 기자]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파기환송심 공판을 맡은 정준영 부장판사가 이 부회장에게 사회적 책임을 강조해 논란이 일고 있다. 판결로 말해야 할 판사가 기업 총수에게 훈수를 둔 것은 잘못됐다는 지적이다.

정 부장판사는 25일 오전 10시 10분 열린 국정농단 파기환송심 재판에서 “이 사건의 수사와 재판을 위해 많은 국가적 자원이 투입됐다”며 “재발을 막자는 국민적 열망이 크지만 몇 가지 해결되지 않으면 삼성이 또 범죄를 저지르지 말라는 일이 없다”고 말했다.

이어 “삼성 내부에 총수도 무서워할 준법 감시제도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또 “이번 사건이 총수의 지배력 강화를 위해 저지른 범죄”라고 규정하며 총수가 경제력 집중, 일감 몰아주기, 단가 후려치기 등 대기업의 폐해를 시정하는데 기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정 부장판사는 또 이 부회장을 향해 “어떤 결과가 나와도 겸허히 받아들이길 바란다”며 “심리 기간에도 총수로서 해야 할 일을 당당하게 하길 바란다”고 당부했다.

그러면서 이건희 삼성 회장이 1993년 독일 프랑크프루트에서 신경영선언을 했던 점을 언급했다. 그는 “만51세의 이건희 회장은 프랑크프루트 신경영 선언으로 위기를 과감히 극복했다”며 “2019년 만51세가 된 이 부회장의 선언은 무엇이고 또 무엇이어야 하냐”고 덧붙였다.

   
▲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25일 오전 국정농단 파기환송심 재판 출석을 위해 서울고등법원에 들어서고 있다. /사진=미디어펜


정 부장판사의 이 같은 발언은 판결과 무관한 훈수였다는 지적이 나온다. 판결을 통해 이야기해야 할 판사가 기업 총수에게 훈수를 둔 것은 월권이라는 비판이다.

특히 ‘준법 감시제도’를 언급한 것은 대통령의 요청을 거부할 수 없는 기업의 현실을 무시한 처사라는 비판이 제기됐다. 한국에 어떤 기업인이 제왕적 권력을 가진 대통령의 요청을 무시할 수 있겠냐는 한탄이다. 

또 경제력 집중, 일감 몰아주기, 단가 후려치기 등 편향된 용어를 사용하며 기업의 책임을 요구한 것은 이번 사건과 무관한 일이라는 점에서 잘못됐다는 비판이 나왔다. 이에 더해 이 부회장의 비전 선언은 이 부회장이 알아서 할 일일 뿐 판사가 논할 사안이 아니라는 질타도 제기됐다.

익명을 요구한 법조계 관계자는 “회사 내부 통제 기구가 철저히 갖춰져 있어도 대통령의 협조 요청을 통제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며 “경제력 집중, 이 부회장의 향후 비전 등의 문제는 판사가 논할 일이 아니다”고 비판했다.

또 다른 법조계 관계자는 “판사가 궁궐 같은 판사실에 앉아 현실과 동떨어진 이야기를 하고 있다”며 “판사가 이 부회장을 향해 이래라 저래라 하는 것은 삼류가 일류에게 코치하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꼬집었다.

   
▲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25일 오전 국정농단 파기환송심 재판을 마치고 나와 차량을 향해 걸어가고 있다. /사진=미디어펜

한편 이 부회장은 이날 오전 9시 30분 쯤 공판에 출석해 “많은 분들께 심려를 끼쳐드려 대단히 송구스럽게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 부회장은 진회색 정장에 회색 넥타이를 착용, 굳은 표정으로 법정에 들어섰다.

이 부회장 변호인단은 이날 재판에서 유무죄를 다투기 보단 양형 심리에 중점을 두겠다고 밝혔다. 변호인단은 “대법원 판결을 존중하고 이에 바탕해 변론하고자 한다”며 “판결에 대한 유무죄를 다투지 않는 것이기 때문에 주로 양형 판단에 대해서만 하겠다”고 말했다.

반면 검찰은 이번 사건의 핵심이 승계 작업과 부정한 청탁의 뇌물에 있다고 봤다. 검찰 측은 “현재 검찰이 삼성바이오로직스 관련 수사를 하고 있다”며 “그 사건에서 승계 작업은 동기이자 배경이고 증거도 많이 확보된 상태”라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앞으로 승계 작업이 존재 하는지, 또 박 전 대통령의 우호적인 (도움 없이 승계 작업이) 불가능하다는 증거자료를 내놓겠다”고 덧붙였다.

양 측의 의견을 들은 재판부는 유무죄 심리 기일과 양형심리 기일을 나눠 진행하기로 했다. 유무죄 심리 기일은 다음달 22일 오후 2시 5분, 양형 심리 기일은 오는 12월 6일 오후 2시 5분에 진행될 계획이다. 이날 재판은 30여분 만에 종료됐다.

앞서 이 부회장은 지난해 2월 항소심에서 징역 2년 6개월에 집행유예 4년을 선고받고 석방됐으나, 올해 8월 대법원이 뇌물액을 추가로 인정해야 한다는 취지로 사건을 서울고법에 돌려보내 다시 파기환송심 재판을 받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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