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 잔재’ 대학로보다 마로니에공원길로 부르자
   
▲ 1907년 설립된 대한의원 본관 건물. 현재는 서울대학교병원 부설 병원연구소 [사진=미디어펜]

[미디어펜=윤광원 기자] 혜화동 일대 큰 길을 대학로라 부르게 된 것은 일제가 1923년 이 곳에 경성제국대학(京城帝國大學)을 설립하면서부터다.

일제는 조선 초부터 국내 유일한 국립대학이었던 성균관의 정통성을 무시하고, 따로 관립대학을 신설했다.

특히 이상재(李商在) 선생을 대표로 하는 조선민립대학기성회의 발기 총회가 개최되고 거국적인 민립대학 설치운동이 일어나자, 이를 저지하는 한편 여론을 무마하기 위해, ‘경성제국대학령을 공포하고 세워진 것이 경성제대이고, 그 후신이 지금의 서울대학교다.

따라서 이 동네를 대학로라고 부르는 것은 일제 잔재라는 게, 필자의 생각이다.

사실 국립 의과대학은 경성제대에 한참 앞서 이 곳에 생겼다. 바로 고종황제의 명으로 1899년 관립으로 설립된 경성의학교가 그것이다. 초대 교장이 바로 종두법’(種痘法)을 이 땅에 처음 보급한 지석영 선생이다.

앞서 1885년 개원한 우리나라 최초의 서양식 국립병원인 제중원(濟衆院)도 여기 있었다.

경성의학교(京城醫學敎)는 경술국치 이후 1916년 폐지되고 경성의학전문학교로 흡수됐으며, 다시 해방 후인 194610월 경성제대 의학부와 합쳐져 지금의 서울대 의과대학이 됐다.

서울대 의대와 서울대병원은 현재도 구한말 당시의 자리를 굳게 지키고 있다.

이런 역사적 사실에 근거해, 필자는 대학로란 이름 대신 이 동네를 대표하는 곳인 마로니에공원길로 부르기로 했다.

이런 저런 생각을 하며, 혜화동 일대 이 마로니에공원길을 걸어본다.

지하철 4호선 혜화역 3번 출구에서 조금 내려가, 서울대 의대 및 서울대병원 후문으로 들어선다. 병원과 어린이병원 사잇길을 지나 대한외래병원을 돌아가면, 길 오른쪽에 제중원 뜨락이라 쓰인 돌비석이 보인다. 제중원이 있던 곳을 기념하는 비석이다.

조금 더 가면, 붉은 벽돌조의 르네상스식 건물인 대한의원(大韓醫院) 본관이 보인다.

대한의원은 1907년 당시 국립 의료기관이던 광제원(廣濟院)과 의학교 및 그 부속병원, 그리고 대한적십자병원을 통합, 의정부 직할로 설립됐다. 실제 개원은 190810월이다.

광제원은 위치도 옮기고 미국 북장로회로 경영권이 넘어간 제중원 대신, 1900년 설립됐었다.

1908년 건립된 사적 제248호 대한의원 본관은 일제강점기 조선총독부의원, 경성제대 의학부 부속의원, 해방 후 서울대 의대 부속병원 등의 본관으로 쓰이다가, 지금은 의학박물관으로 쓰인다. 네오 바로크 풍의 시계탑, 현관 포치, 원형 그대로 남은 목조 계단 등이 인상적이다.

건물 앞에는 지석영(池錫永) 선생의 동상과 히포크라테스 선서석비가 있다.

지석영 동상은 본관 건물 안, 의학박물관 입구에도 서 있다. 옆에는 광무 4년 고종황제가 그를 경성의학교장으로 임명하는 칙명장이 있는데, 3품 통정대부(通政大夫)란다.

또 복잡했던 구한말 국립병원들의 계통도, 당시 사용했던 청진기와 현미경, 주사기 등 각종 의료기구, 1940년대 대한의원의 모습이 담긴 영화 자유만세소개 게시물 등이 눈길을 끈다.

대한의원을 나와 서울대 암병원 옥상에 올랐다. 바로 앞 창경궁이 속속들이 내려다보이고, 멀리 인왕산이 성큼 다가선다.

암병원에서 창경궁 앞으로 나와, 창경궁로를 따라간다. 간호대학 학생기숙사를 끼고, 골목길로 들어섰다. 골목을 직진해 성균관대 성균어학원 별관, 불교원전전문학림 삼학원(三學苑) 앞을 지나면, 골목 왼쪽에 한 눈에도 범상치 않아 보이는 건물이 있다.

고석공간(古石空間)이란 팻말이 붙은 이 외관부터 특이한 건물은 198311월 건축가 김수근이 친누이를 위해 설계한 집이다.

고석공간 길 건너에는 근대 한옥들이 밀집한 작은 골목이 있다.

한국 현대 문화예술사를 새로 쓴 건축가라는 평을 받는 김수근(金壽根)1971년 범태평양건축상을 수상하며 주목 받았고, 미국 타임’(Time)]지는 19775월 그를 서울의 로렌초로 부르며 국제적 거장이라고 소개했다.

사실 이 근처는 김수근 타운이라 할 정도로 그의 작품들이 많다. 그 작품들을 만나보자.

다시 대로로 나왔다. 바로 길 건너가 흥사단(興士團)이다. 도산 안창호 선생이 1913513일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유학 중인 청년학생들을 중심으로 조직한 민족운동단체다.

건물 앞에는 도산(島山) 선생의 말씀을 새긴 큰 돌비석이 서 있다.

김수근은 1972년 전벽돌로 원서동의 공간 사옥을 지었고, 1977년 마로니에공원 옆에 문예회관의 전시장과 공연장(현 아르코 미술관과 예술극장), 샘터 사옥, 해외개발공사 사옥 등을 연달아 벽돌로 축조했다. 이를 본 따 흥사단과 바탕골소극장, 동성고 등도 벽돌건물이다.

   
▲ 건축가 김수근의 대표작 중 하나인 옛 샘터사 건물 [사진=미디어펜]

구 샘터 사옥은 김수근 건축의 정수를 보여준다. 출입구가 따로 없고 사방 어디로든 나갈 수 있는 개방성이 특징이다. 지금은 1층에 세븐일레븐, 2층에 스타벅스 등이 들어서 옛 모습을 찾을 수 없지만, 그나마 유서 깊은 '샘터' 잡지가 폐간(廢刊) 위기를 넘겼다는 소식이 위안거리다.

마로니에공원 한 복판에 마로니에 나무들이 우뚝하고, 그 왼쪽 아르코예술극장(서울미래유산)과 아르코미술관 역시 김수근의 심혈이 녹아 든 작품이다. 그 앞 '서울대학교 유지 기념비'가 이 곳에 있던 옛 서울대 캠퍼스의 모습을 대변해 준다.

공원 한쪽 구석에는 일제 종로경찰서에 폭탄을 전지고, 혼자서 일경 400여명과 시가전을 벌이다 자결, 순국한 '의결단원' 김상옥(金相玉) 의사의 동상이 있는데, 분명 무장투쟁을 한 '의사'를 비무장투쟁의 '열사'로 잘못 새겨놓아 눈살을 찌푸리게 한다.

공원 남쪽 붉은 벽돌조의 위풍당당한 건물이 바로 구 서울대 본관이다.

사적 제278호인 이 건물은 1930~1931년 사이 한국인 최초의 서양식 건축가인 박길룡(朴吉龍)이 설계했다. 벽돌 외벽에 다시 붉은 타일을 붙인 특이한 양식으로, 3층과 중앙 출입구엔 반원형 아치가 있다. 현재 한국문화예술위원회가 입주해 있으며, ‘예술가의 집으로 불린다.

여기서 방송통신대 캠퍼스와 서울사대부설 여중을 지나면, 서울사대부설 초등학교가 있다. 여기는 원래 서울대 법대가 있던 자리로, 교문 안 소나무 밑에 그 표석이 있다.

1975년 이 자리로 옮겨 온 이 초등학교 교문 기둥은 양쪽에 2개씩이다. 원래 탑골공원 대문기둥이었는데, 19693.150주년을 기념해 서울시가 나라사랑의 정신을 엘리트 대학생들에게 심어주고자, 이 기둥 4개를 서울대 법대 교문 기둥으로 기증, 현재에 이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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