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 3년 전에 끝난 두 후보지의 사업성

가덕도와 밀양. PK와 TK의 맞대결. 국가권력의 산실인 두 지역이 최소 10조원이 넘는 국책사업을 놓고 사활을 거는 한판 대결이 펼치고 있다. 그동안의 유치경쟁도 이미 충분히 볼거리를 제공했다. 한쪽에서 신공항 유치기원 마라톤대회가 여는가 하면 다른 한쪽에서는 천만 명 서명운동이 벌인다. 두 지역의 국회의원들은 목소리를 높인다. 관전자에게는 흥미롭다. 그런데 국책사업이다 보니 이대로 두었다가는 사업실패의 손실을 국민들이 뒤집어쓸 판이다. 두 지역의 유치경쟁으로 인한 최대 피해자는 국민들이 되는 것이다.

사실 동남권 신공항 건설공약은 2002년 노무현 대통령후보 때부터다. 그 후 대통령이 된 후에 슬그머니 거두었는데, 이어서 이명박 대통령후보가 다시 공약으로 내걸었다. 기대가 컸던 만큼 후보지 경쟁이 제대로 불붙었다. 2011년 3월 30일 정부는 두 곳 후보지에 대한 타당성 평가 끝에 건설계획을 백지화하기로 했다. 사업의 실패가능성이 높았기 때문이다. 대신 기존의 김해공항을 확장해서 수용력을 개선하는 쪽으로 가닥을 잡았다. 그런데 이번에 다시 쟁점으로 부상했다. 2년 전 박근혜 대통령후보가 재검토를 약속했던 것이다. 정치적으로 촉발된 상황이 재연되고 있다. 불과 3년 전에 내린 결정이 이번이라고 달라지겠는가.


미리 정해놓고 진행되는 국책사업의 오류

 

물론 현재의 수요증가 추세라면, 향후 10년 이내에 김해공항의 수용력은 포화상태에 달할 것이라는 데에는 별 이견이 없다. 국토교통부는 이 지역의 수요를 예측하는데 1년 가까운 기간 동안 7억 원이 넘는 예산을 썼다. 지역별 항공수요 예측은 과거에도 몇 차례나 있었기 때문에 이번 정부의 발표가 새로울 것도 없다. 문제는 국책사업의 타당성을 살피는 순서가 거꾸로 진행되고 있다는 점이다. 미리 후보지를 두 곳으로 정해 놓고 뒤늦게 전체수요를 파악했다. 더구나 경상남북도의 총체적 수요가 두 곳 공항후보지 중 한 곳으로 흡수될 가능성은 적다는 사실이 문제다.

 

동남권역의 수요가 2030년에 이르러 연간 2천만 명이 넘는다는 것을 확인하고 나서 두 곳 가운데 한 곳을 결정하려는 수순은 국민의 판단을 흐리게 하는 모순이 있다.

 

왜 하필 섬을 메워야 하는 가덕도이어야 하고, 산을 깎아내는 밀양이어야만 하는가. 영남권역에는 이들 두 곳 후보지 밖에는 없다는 말인가? 제2의 허브공항이 경상남북도의 수요를 흡수할 것이라는 환상이 출발부터 판단의 오류를 낳고 있다. 허브공항이란 편리하게 비행기를 갈아탈 수 있을 만큼의 풍부한 장·단거리 노선, 글로벌 항공사들의 빈도 높은 취항이 있어야 한다. 공항이 연결기능이 성패를 좌우한다. 지금 동북아지역에서 치열한 경쟁을 벌이고 있는 인천공항은 세계 55개국의 190개 도시를 82개의 외국항공사와 6개 국적항공사가 연간 4천 만 명 이상의 여객을 실어 나르고 있다. 그러나 환승객의 비율은 아직도 20%를 크게 밑돈다. 그래서 제2의 허브공항은 베이징과 푸동, 나리타, 하네다와 타이페이 공항과 허브공항 경쟁을 하고 있는 인천공항의 경쟁력마저 위협할 수 있다.


 

문제의 원점에 대안이 있다

 

문제의 출발점으로 되돌아가 보면, 해법은 보인다. 신공항의 필요성은 2002년 4월 김해공항에서 있었던 중국민항기의 착륙사고에서 제기되었다. 공항의 안전성을 개선하고 늘어나는 수요를 충족할 방안이 문제의 핵심이었다. 그래서 처음부터 김해공항의 항행안전을 개선하면서 공항의 수용력을 확대하는 방안에 집중했어야 했다. 그런데 당시 대선공약을 이용해 한몫 챙기려는 지역의 집단이기심이 발동했다.

다시 수면위로 부상한 동남권 신공항, 어떻게 풀 것인가? 몇 가지 대안을 생각해 본다. 우선, 지형적 여건이 유사한 인천공항이나 홍콩공항처럼 인근해역 매립을 통한 김해공항의 확장 방안을 검토해 볼 수 있을 것이다. 바다 메우고, 산을 깎는 것보다는 기존의 활주로를 연장하고 각도를 변경하는 것이 훨씬 경제적인 방법이다. 또 다른 대안으로는 현재 김해공항의 민군 겸용 기능을 분리하는 방안도 생각해 볼 수 있다. 한국전쟁 직후 한미방위조약에 근거한 양륙공항으로서의 군사적 기능을 대체할 수 있는 군용공항의 대체공항을 모색해 볼 수 있을 것이다. 또한 김해공항의 수용력을 보완할 국내선 공항을 인접지역에 건설하는 방안도 생각해 볼 수 있다. 지자체들이 나서 가덕도와 밀양 두 곳을 미리 점찍으면서 지역 간의 유치경쟁으로 왜곡되는 동안 주무부처인 국토교통부는 청와대와 정치권의 눈치를 살피느라 제3의 대안을 심도 있게 검토한 적도 없었다.

 

부산역과 대구역에서 탑승수속을 끝내고 KTX를 타면, 3시간과 2시간 반 만에 인천공항의 출국장에 도착한다. 내년부터 동남권역의 여행객들에게 더 가깝게 다가오는 인천공항의 얘기다. 정부의 동남권 신공항 딜레마는 스스로 표심을 얻으려고 자초한 일이다. 최소한 양양국제공항 건설의 30배가 넘는 천문학적인 국책사업. 일단 유치해 놓기만 하면 될 일인가. 개점도 못하고 휴업 중인 울진공항, 적막감이 감도는 무안국제공항. 모두 신공항을 일단 만들어 놓고 보자는 지역이기주의가 낳은 산물이다. 지금부터라도 원점으로 돌아가 대안을 찾자. 김해공항은 그나마 국제선 청사라도 증설하는 중이지만 만만치 않게 수요가 증가하는 제주공항의 수용력 확충도 시급하기는 마찬가지다. /허희영 한국항공대 경영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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