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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허희영 한국항공대 경영학부 교수 |
주가는 얼마나 예측이 가능할까? 기업의 안팎에서 작용하는 수많은 요인들에 의해 끊임없이 영향을 받아 매순간 생물처럼 움직이는 게 주가다. 기업의 가치를 평가하는 일은 그래서 쉽지 않다. 오늘 좋은 주식을 사는 것은 내일 주가가 오를 거라는 믿음에 따른 행동이지만 파는 쪽의 믿음은 이와 정반대다. 주가예측이 어렵고, 주식투자가 불확실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
최초의 주식회사는 17세기 네덜란드에서 처음 설립된 동인도회사였다. 당시 식민지 개척의 성공으로 큰돈을 번 주주들은 투자한 돈을 모두 날릴 수도 있는 도박을 감수한 결과였다. 높은 수익률을 원한다면 그만큼 높은 위험을 감수해야 하고, 안전한 투자를 원한다면 기대수익률도 낮춰야 한다. 위험과 수익성의 트레이드 관계는 변함없는 세상의 이치다.
현실적으로 가장 효율적 시장은 증권시장이다. 단, 불확실성이 전제된다. 그래서 투자의 귀재인 워런 버핏도 투자에서 종종 헛다리를 짚는다. 주식시장에서는 불규칙한 물리적 입자의 움직임처럼 예측이 불가능하다는 랜덤 워크(random walk) 가설이 오히려 설득력을 갖는다. 증권시장의 효율성에 대한 수십년간의 실증연구결과들도 펀드나 기관투자자가 일반투자자보다 더 높은 수익을 올릴 거라는 믿음을 지지하지 않는다.
최근 보건복지부는 국민연금의 주주권 행사에 대한 가이드라인을 제시했다. 투자한 기업에 대한 주주권 행사를 통해 시장의 불확실성을 제거하고 예측 가능성을 높이겠다는 발상이다. 이게 자유로운 시장경제에서 가능한 일일까. 기업의 경영은 불확실한 상황을 전제로 하는 일련의 의사결정과정이다. 한치 앞을 내다보기 힘든 경제상황을 늘 직면하는 현실에서 주식시장의 예측가능성을 높일 수 있다는 생각은 규제적 사고이자 시장의 작동원리에 대한 도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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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민연금은 국민들의 노후자금의 수익률극대화에 초점을 맞춘 운용을 해야 한다. 국민연금이 정권에 휘둘리지 않도록 지배구조의 독립성과 자율성제고가 긴요하다. 박능후 복지부장관(오른쪽)과 김영주 국민연금 이사장. 사진=연합뉴스 |
지난 13일 정부가 내놓은 가이드라인에 따르면 횡령·배임 등의 법령 위반으로 기업가치가 훼손되거나 주주권익이 침해될 경우, 국민연금이 임시 주총을 열어 이사 해임을 요구할 수 있도록 했다. 기업의 배당정책, 임원보수의 적정성, 법령위반 우려 등이 있는 중점관리 기업이나 책임투자 평가의 결과가 불량한 기업에 대해서도 주주권을 행사한다는 것이다.
투자의 결과는 전적으로 투자자의 책임이다. 기업가치나 주주의 권익이 훼손될 가능성이 있는 기업에 대해서는 투자를 하지 않으면 되는 일이다. 지난 3월 한진칼 주주총회에서 정관 변경을 요구하며 국민연금이 주주권을 행사한 것은 경영참여의 시작이었던 셈이다.
국민연금은 국민의 노후자금을 관리하는 집사(steward)다. 국민이 맡긴 원금부터 안전하게 보전하고 투자의 수익률을 높이는 일이 집사의 본업이다. 국민연금은 작년 한 해 국내 상장기업에 투자해서 마이너스 16.77%의 수익률로 모두 22조 1600억 원의 원금을 날렸다. 투자에도 책임이 뒤따르지만 주주권 행사를 논의하기에 앞서 국민연금이 투자기업의 경영을 판단할 전문성을 갖췄는가는 중요한 문제다.
국민연금공단에는 최고 의사결정기구로 기금운용위원회와 주주권행사여부를 결정하는 수탁자책임전문위원회를 두고 있지만, 기금운용위원 20명 중 5명이 현직 장차관이고, 위원장은 공단의 이사장인 보건복지부 장관이 맡는다. 이들이 기금운용의 전문성을 갖추었는가. 더구나 스튜어드십 코드로 경영참여가 확대될수록 국민연금이 경영개입과 규제의 수단으로 이용될 여지가 커질 수밖에 없는 구조다.
세계적 연기금 사례들과 같이 정치권의 개입 소지를 차단하면서 독립성과 전문성을 강화하는 법제화가 더 시급하다. 국민연금은 투자기업에 대한 경영에 개입보다는 기금운용은 위탁운영사가 책임지고 운용토록 하는 재무적 투자자의 역할에만 충실하면 된다.
"국민연금은 국민의 자산이므로 국민적 동의하에 주주권 행사가 이루어져야 한다." 보건복지부 차관의 말이다. 맞는 말이다. 그러나 그 대상과 절차, 내용을 사전에 규정하기에 앞서 국민적 동의부터 구해야 한다. 적극적인 주주권행사는 대기업들의 경영권을 장악해 '국민의 기업'으로 만들 수 있고, 결국 연금을 수단으로 사회주의경제가 가능해진다는 사실 말이다. /허희영 한국항공대 경영학부 교수
[허희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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