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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 서초구 서초동 소재 서울고등법원./사진=연합뉴스 |
[미디어펜=박규빈 기자] '골목 상권 지키기'를 명분으로 대형 유통업체의 출점을 막아온 중소벤처기업부 행정에 제동이 걸렸다. 법원이 유통업체의 손을 들어줬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주먹구구식이었다는 정부 행정에 변화가 있을지 이목이 집중된다.
2일 유통업계와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고등법원은 지난달 25일 유진그룹 계열사 EHC가 박영선 중기부 장관을 상대로 낸 개점연기 권고 처분 취소 소송에서 1심과 같이 원고 승소 판결을 내렸다. 이는 유통 대기업의 신규 출점을 엄격히 제한하고 있는 현 정부의 정책에 법원이 처음으로 기업의 편을 들어준 사례이기 때문에 관련 업계의 관심을 한 몸에 받고 있다.
EHC와 정부 간 갈등은 지난해 6월 4일 EHC가 서울 금천구 시흥동에 홈 인테리어·건축 자재 전문 브랜드 '에이스 홈센터'를 개점하며 본격 촉발됐다. 중기부는 출점지 주변 상인들의 피해를 우려해 개점 시기를 2021년 3월로 연기하라고 통보했다. 이에 EHC는 상인들과 조율에 나섰으나 합의를 이루지 못했고, 중기부 사업조정심의회는 중소기업연구원 등의 보고서를 살펴본 후 소상공인들의 입장을 수용했다.
사업조정심의회는 정부 추천 인사 3명, 외부 인사 7명으로 구성되고 사업 연기 권한도 갖고 있을 정도로 권한이 막강하다. 심의회에 참석했던 9명의 위원들은 전원 개점 연기 의견을 냈을 정도로 중기부가 강력한 의지를 표명했다. EHC는 이에 불복해 소송을 제기했다.
중기부는 EHC가 에이스 홈센터를 열 경우 시흥동 인근 상인들의 매출 피해액이 87억5000만원에 달할 것으로 추산했다. 이 같은 산출값은 중기부 산하 중기연구원이 피해를 입었다고 주장하는 상인들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만을 통해 얻어낸 것이다. 그러나 막상 EHC가 개장하고 보니 월 매출은 2억7000만원에 불과했다. 이런 결과 중기부가 조사를 제대로 하지 않았다는 것이 드러났다.
심의회에 참여했던 한 위원은 법정에서 "예상 피해액 추정값이 과산된 것을 알고 있었지만 참고 자료일 뿐이라고만 여겼다"고 발언해 빈축을 샀다. 이와 관련, 서울고법은 "심의회가 최소한 수긍할 수 있는 피해 추정치를 산정하려는 노력조차 없이 눈대중으로만 매겼다"고 판시했다.
아울러 2심 재판부는 "EHC가 출점 규제를 피하고자 문제가 될 수 있는 거리가 아닌 2.6㎞ 떨어진 곳에 1765㎡ 규모로 개점했음에도 불구하고 중기부가 지나친 잣대를 들이댔다"며 "유통시장 내 대기업 출점 제한은 기업 경영 자유와 조화를 이뤄야 한다"고 했다. 현행 유통산업발전법은 매장 면적 330~3000㎡에 대해선 준대규모 점포로 규정해 반경 500m까지를 상권영향 분석 범위로 본다.
유통업계는 이번 판결을 대단히 큰 의미로 받아들이고 있다. 롯데·신세계이마트·코스트코 등이 신규 출점 등에 있어 정부 및 지방자치단체들과 갈등을 빚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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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코스트코 코리아가 위치한 코스트코 광명점 전경/사진=코스트코 코리아 |
지난 4월 25일 중기부는 코스트코가 하남점을 열겠다고 표명하자 중소 도소매업 상공인들과의 자율합의 또는 정부권고안 통보시까지 개점을 일시정지하라고 권고하기도 했다. 하지만 코스트코 코리아는 예정대로 하남점을 개점했고, 이에 5000만원 이하의 과태료를 물리는 등 강력한 행정조치를 하겠다며 코스트코 측을 압박한 바 있다.
한술 더 떠 중기부는 보도자료를 통해 "코스트코가 사업조정안을 따르지 않으면 상생법 제33조에 따라 공표 및 이행 명령을 내리고, 명령 불이행시에는 2년 이하의 징역 또는 1억5000만원 이하의 벌금 등을 적용받게 된다"며 초강수를 두겠다고 예고한 적도 있다.
김영훈 바른사회시민회의 경제실장은 "판결문에서도 확인할 수 있듯, 법원은 기업 경영의 자유와 규제 사이의 조화를 중시했다"며 "법원의 이 같은 결정을 환영한다"고 밝혔다. 김 실장은 "유통산업발전법은 정부 허가 없이는 출점을 할 수 없도록 한 제도이기 때문에 유통사업의 불확실성을 높이는 요인으로 작용한다"며 "이번 판결은 해당 법이 모호하다는 것을 증명하는 사례"라고 꼬집었다.
그는 "중기부 사업조정심의회에 참석하는 위원들의 전문성 등 여러 측면에서도 문제 제기가 돼왔다"며 "이 기회에 유통산업발전법 폐지에 대한 논의가 이뤄져야 출점 제한 논란이 생기지 않을 것"이라고 진단했다.
[미디어펜=박규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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