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화의 계열사 지원, KT의 정직한 저가 매각은 죄악 아니다
   
▲ 김정호 프리덤팩토리 대표

웬만한 기업의 경영자들이라면 누구나 업무상 배임죄가 두려울 것이다. 경영행위와 관련하여 유죄판결을 받은 기업인이라면 대개 이 죄목이 포함되어 있다. 최근에 부도난 강덕수(STX), 윤석금(웅진), 현재현(동양그룹) 등이 모두 배임죄로 유죄판결을 받았거나 혐의를 받고 있다.

1. 업무상 배임죄의 모호성

그들을 두려움에 떨게 하는 것은 배임죄가 피하기가 어려운 죄라는 사실이다. 검찰이 배임죄를 기소하는 기준도, 법원이 배임죄 판결을 내리는 기준도 분명히 드러나 있지 않다. 해야 할 일을 하지 않아도 배임죄이고 하지 말아야 할 일을 한 것도 배임죄라는 식의 기준이 적용되는 것이 배임죄이다.

대법원은 2011년 10월 27일 선고 2009도14464 판결에서 ‘당연히 하여야 할 것으로 기대되는 행위를 하지 않거나 하지 않아야 할 것으로 기대되는 행위를 하면 배임죄가 성립한다’고 판시하고 있다. 문제는 무엇이 기대되는 행위이고 무엇이 그렇지 않은지를 누구도 알기 힘들다는 것이다. 한화의 김승연 회장은 부도 위기에 처한 계열사를 지원했다고 배임죄 유죄판결을 받았다. 하지 말아야 할 일인 계열사 지원을 했다는 이유에서다. 하지만 그 반대로 지원을 안해서 그 회사를 부도낸다면 그것 역시 배임죄가 될 수도 있는 일이다. 당연히 해야 할 것으로 기대되는 행위를 안했으니 말이다. KT의 이석채 회장은 자산을 저가 매각한 것이 문제되어 배임죄로 고발을 당했지만, 고가를 받겠다고 미적거리느라 매각에 실패해서 회사의 재무구조를 악화시켰다면 그것 역시 배임죄가 될 수 있는 것이다.

   
▲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 

법은 사전에 명확히 알려져 있어서 누구나 무엇이 합법이고 무엇이 불법인지를 명확히 알 수 있어야 한다는 법치의 중요한 원리가 배임죄에는 적용되지 않고 있는 것이다. 이런 상태에서는 왕성한 기업활동을 기대하기 어렵고 경제성장을 이루기도 어렵다.

2. 외환위기와 업무상 배임죄

그 모호함 때문이었는지 주로 기업인이 적용대상인 형법상의 업무상 배임죄는 거의 쓰이지 않았었다. 배임죄는 주로 부동산 이중매매처럼 타인의 재산을 관리하던 사람이 명백히 신의를 저버리고 재산을 처분하는 행동 같은 것을 대상으로 했다.

그러던 것이 지금처럼 기업인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대상으로 떠오른 것은 1998년 외환위기 때부터다. 검찰은 기아자동차의 김선홍 회장을 필두로 부도가 난 재벌그룹의 총수들을 대부분 배임죄로 기소했고, 법원은 비록 대부분 집행유예이긴 하지만 유죄판결을 내렸다. 그 후로 배임죄는 기업인의 경영행위를 단죄하는 단골 죄목이 되었다.

외환위기로 인한 기업의 연쇄부도 당시 검찰이 총수들을 기소한 것은 이들의 잘못이 있든 없던 환란의 책임을 이들에게 묻기 위함이었다는 느낌이 강하게 든다. 최소한 결과적으로 그렇게 되었다. 하지만 환란의 책임은 민간보다는 오히려 정부에 있다고 보는 편이 더 나을 것이다. 김영삼 대통령은 OECD 가입을 위해 외환당국의 원화 고평가를 부추겼고, 그 결과 경상수지는 악화되었다. 한국은행은 마지막 순간까지 가용한 외화가 얼마인지도 모르고 있었다.

   
▲ 이석채 전 회장/뉴시스 자료사진 

기업은 어쩌면 잘못된 경제정책의 피해자일 가능성이 높다. 그런데도 부도기업의 총수들을 애매하기 짝이 없는 배임죄로 단죄를 받게 되었다. 대기업 총수들 외에는 관료, 정치인, 노동자 누구도 환란에 대하여 법적 책임을 졌다는 말을 들어보지 못했다. 그렇게 시작된 배임죄의 확대 적용이 이제는 부도난 기업의 경영자들이 당연히 짊어져야 하는 멍에가 되어 버렸다.

3. 계열사 지원이 배임죄가 된 이유

그들의 죄목은 부도위기에 처한 계열사를 지원하기 위해 다른 계열사들을 동원한 것이다. 그것이 왜 배임죄를 구성하는지 살펴보자.

형법 제355조의 2항이 규정하고 있는 배임죄는 “타인의 사무를 처리하는 자가 그 임무에 위배하는 행위로써 재산상의 이익을 취득하거나 제삼자로 하여금 이를 취득하게 하여 본인에게 손해를 가한 때에는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1천5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를 내용으로 한다. 그 임무가 업무상의 임무(반복적으로 계속되는 임무)일 경우는 10년 이하의 징역 또는 3천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356조).

계열사 A로 하여금 어려움에 처한 계열사 B를 돕게 했는데 위기를 이겨내지 못하고 결국 A와 B가 모두 부도가 났다고 해보자. 이 기업의 경영자는 A에게 손해를 가하면서 제3자인 B로 하여금 이익을 취득하게 했기 때문에 배임죄가 된다. 외환위기 이후에도 강덕수, 윤석금, 현재현이 모두 자금난에 처한 계열사를 구하려는 과정이 배임죄의 적용을 받았다.

   
▲ 한국의 기업인들은 애매모호하기 짝이 없는 배임죄로 인해 매일 교도소 담장위를 걷는 심정이라고 하소연한다. 선진국들은 기업인이 선량한 관리자로서 의무를 다할 경우 형서처벌을 하지 않고 있다. 박근혜대통령과 국회는 창조경제 실현과 성장회복을 위해선 기업인들을 과도하게 옥죄는 배임죄 관련법을 시급히 개선해야 한다. 기업인의 정당한 의사결정과 경영판단에 대해선 배임죄 적용을 배제해야 한다. 그래야 기업인이 위축되지 않고 역동적인 기업가정신을 발휘할 수 있다. 박근혜대통령이 2013년 12월 중순 전경련 회관 준공식에 참석, 허창수 회장 등 전경련 회장단과 창조경제 실현과 규제완화 방안에 대해 언급하고 있다. 

4. 계열사 지원은 죄악이 아니다

부도난 기업 총수들을 범죄자로 낙인찍은 것은 법치의 원리에 어긋난다. 법치의 핵심 가운데 하나는 어떤 행위가 불법인지를 사전에 분명히 알 수 있어야 한다는 요건이다. 그런데 계열사에 대한 지원 행위를 배임죄로 다스리는 새로운 사법 관행은 그런 요건을 충족하지 못했다. 그룹 형태를 취하고 있는 우리나라의 기업들에서 어려움에 처한 계열사를 다른 계열사가 돕는 것은 자연스러운 행위였다. 비록 나중에 부도로 끝나긴 했지만 계열사 지원이 범죄가 되리라고 예상한 총수는 아무도 없었을 것이다. 어려움에 처한 계열사를 지원하는 것은 대기업이든 중견기업이든 그룹형태를 가진 우리나라의 기업들에서 공통으로 나타난 자생적인 경영방식이었던 셈이다. 그런데 환란 이후부터 대기업의 총수에게는 자연스럽던 그 행위가 배임죄라는 범죄행위가 되어 버린 것이다.

물론 기업의 총수가 회사의 재산을 가로채서 사익을 추구한 행위를 단죄하는 것은 법을 엄히 세우는 일이고 법치의 원리에 부합한다. 어떤 경영자라도 사익을 위해 계열사를 동원하는 일이 나쁜 짓이라는 자각을 가지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계열사지원 행위 같은 것을 범죄로 인식할 사람이 얼마나 될까.

경제학적으로 보면 경영자의 정직한 지원행위는 사회적으로 이로운 행위로 보는 것이 옳다. 만약 지원의 대상이 부도가 날 것이 확실하다면 계열사 지원을 할 리가 없다. 오히려 빨리 잘라내 버리려고 할 것이다. 부도를 피할 수 있다고 보기 때문에, 또는 다른 계열사로의 부도가 전이되는 것을 막을 수 있다고 예상하기 때문에 다른 계열사를 통한 지원을 결정하게 되는 것이다. 비록 사후적으로는 부도가 날 수 있지만 최소한 사전적으로는 부도를 피할 수 있다고 여기기 때문에 그런 행동을 했다고 봐야 한다. 그런 행동을 배임이라는 잣대로 평가한다면 우리나라에서 그룹 형태의 기업을 하기는 매우 어려워진다. 검사나 판사들이 배임죄를 그런 식으로 적용할 것이면 경영자들은 어떻게 해야 하는가라는 질문에 답해야 한다. 어떤 계열사가 부도 위기에 처했을 때 전체 그룹의 경영자는 그 계열사가 그냥 부도나도록 방치하는 것이 옳다는 것인가.

5. 정직한 저가 매각은 죄악이 아니다

이석채 전 KT 회장의 경우에서처럼 자산 저가 매각에 배임죄를 적용하는 것도 무리가 있다고 본다. 회사의 사옥 건물 같은 경우 누구나 인정하는 시가가 형성되어 있는 것도 아니어서 가격이라는 것이 상대방에 따라 천차만별일 수밖에 없다. 그런 상태에서 빨리 팔려면 가격을 낮춰야 할 것이고 값을 올리면 팔기가 쉽지 않을 것이다. 자산 매각 행위에 배임이라는 형사처벌의 잣대를 들이댄다면 어떤 경영자도 자신있게 자산 거래를 할 수 없을 것이다. 사익을 위한 것이 아니라면 매각 가격 같은 것을 형사처벌의 대상으로 삼는 것은 부적절하다.

6. 배임죄, 이렇게 하자

법치주의를 바로 세우기 위하여 지금이라도 배임죄를 손봐야 한다. 무엇보다 예측 가능하게 만들어야 한다. 경영을 잘 하기 위해 또는 회사를 부도에서 구하기 위해 한 행동이었는데, 나중에 범죄로 처벌받을 수도 있는 법이라면 제대로 된 법이 아니다. 경영자가 사익을 위해서 한 행동이 아니라면 설령 결과가 나쁘더라도 법의 잣대로 단죄해서는 안된다. 또 회사의 자산을 저가에 매각했다는 등의 사실도 경영자 자신의 사익을 위한 것이 아니라면 형사처벌의 대상으로 삼는 것이 불합리하다.

미국의 경우 이런 일은 ‘경영판단의 법칙(Business Judgement Rule)’을 적용하여 아예 민사재판의 대상으로도 삼지 않는다. 하물며 한국은 형사처벌의 대상으로 삼고 있는 것이다. 형사처벌은 경영자가 자신의 사익을 취하기 위해서 회사를 악용한 경우로 한정해야 한다. 사익추구가 분명치 않은 경우들은 외환위기 이전처럼 업무상 배임죄의 적용 대상으로 삼지 말아야 한다.

형량도 합리화해야 한다. 관련된 모든 행위들을 공히 무겁게 처벌하면 작은 불법행위로 끝날 일도 불법성이 큰 행동으로 번진게 만든다. 계열사 지원 행위처럼 불법성이 작은 행위는 낮은 형량으로 다루고 사익을 챙기는 등 불법성이 큰 행동은 무거운 형량으로 다뤄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계열사 지원으로 끝날 행위가 사적인 횡령으로까지 이어질 가능성이 생긴다. 어차피 높은 형량인만큼 사익을 취한다고 별로 달라질 것이 없기 때문이다. 배임죄의 형량이 강도나 살인 같은 악성 범죄의 형량에 근접하는 것은 넌센스다. 애매하기 짝이 없는 배임죄에 무기징역형을 두는 것은 지나침을 넘어 경영자로 하여금 더욱 큰 범죄, 사익추구의 마음을 갖도록 유도한다.

죄질에 따라 형량을 차별화해야 할 필요성은 횡령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예를 들어 회사의 돈을 빼다 돌려놓은 행위는 완전히 착복한 행동과는 전혀 다르게 취급해야 한다. 둘 사이의 차이를 두지 않는다면 기왕 빼낸 것이니 돌려놓기보다 그냥 착복하는 쪽을 택할 가능성이 높아진다.

유전유죄 유전무죄는 분명 문제다. 법치주의에도 어긋나는 일이다. 그러나 돈이 있어 보인다고 배임죄처럼 애매하기 짝이 없는 잣대를 들어대는 것도 법치주의에 어긋난다. 경영자에 대한 처벌은 사익추구 행위로 제한해야 한다.

(이 글은 자유경제원-미디어펜 공동주최로 23일 개최된 <업무상 배임, 어떻게 볼 것인가> 토론회에서 김정호 프리덤팩토리 대표가 주제발표한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