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의적인 법 조항.적용 많아...투자 활성화 위해 개선해야

이번 발제문에는 여러 가지 숙고가 필요한 많은 주장을 많이 담고 있고, 또 각 주장과 관련해서 여러 가지 판례들을 제시하고 있기 때문에 포괄적으로 논평을 하기 쉽지 않다. 따라서 여기에서는 두 가지 점에 대해서만 집중적으로 이야기를 하고자 한다.

   
▲ 김두얼 명지대 경제학과 교수

1. ‘업무상 배임죄의 모호성’과 ‘계열사 지원’ 간의 관계

발표자는 배임죄의 모호성에 대해 문제를 제기한 뒤, 계열사 지원 문제를 중심으로 논의를 전개한다. 즉 배임죄의 모호성으로 인해 계열사 지원이 부당하게 불법으로 처벌되고 궁극적으로 기업가들의 경제활동을 위축시킨다고 지적한다.

본 논평자는 우리나라의 배임죄가 발표자의 지적처럼 모호성의 문제, 또 그로 인한 자의적 적용의 문제가 있다는 점은 전적으로 공감한다. 그러나 “계열사 지원”이 이러한 문제점의 대표적 사례이며, 이것이 배임죄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주장에 대해서는 동의하지 않는다.

필자는 그룹 내 계열사에 대한 지원은 법적으로 문제가 있을 뿐 아니라, 법에서 이것을 금지시키는 것은 경제학적으로도 타당하다고 생각한다. 즉 계열사 지원에 대해 처벌하는 것은 법적으로 모호한 측면이 없기 때문이다.

A라는 ‘그룹’에 B와 C라는 두 계열 회사가 있을 때, B의 돈을 어려운 상태에 있는 C에게 지원하는 행위는 명백하게 B사 주주들에 대한 배임행위이다. 법적으로는 아무런 모호함 없이 B와 C는 서로 다른 회사이기 때문이다. 현재 발표자의 원고처럼 “어려움에 처한 계열사를 다른 계열사가 돕는 것은 자연스러운 행위”라고 이야기하기 위해서는 B, C 모두가 그룹 총수가 주식을 100% 보유하고 있을 때나 성립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된다.

이 문제와 관련한 발표자의 논리 전개도 선뜻 받아들이기 어렵다. 발표문을 읽어보면 발표자는 계열사 지원에 대해 배임 또는 횡령으로 처벌하는 것이 문제가 있는 이유로 “법의 모호함”이 아니라 “관행”을 제시하고 있다. “관행”이라는 항변은 가능할 수는 있습니다. 하지만 법의 모호성 문제와 관행이 어떻게 연결되는 것인지는 이해하기 어렵다.

만일 과거로부터의 “관행”이라는 항변을 통해 배임죄 적용이 부당하다는 주장을 한다면, 이것은 세상 어떤 것도 바꿀 수 없다는 극단적 논리가 될 위험이 있다고 생각한다. 즉 옛날에 통용되던 것이었기 때문에 계속 허용되어야 한다는 식의 주장은 받아들이기 어렵다는 뜻이다. 법에 저촉되는 계열사 지원은 과거에는 관행적으로 행해졌더라도 경제가 선진화되는 과정에서는 당연히 사라지도록 해야 할 것이다.

   
▲ 23일 열린 <업무상 배임, 어떻게 볼 것인가> 토론회에서 김두얼 명지대 경제학과 교수가 발표를 하고 있다.

2. 배임죄의 존재 이유

본 논평자가 발표문을 읽으면서 보다 근본적으로 따져보아야 한다고 생각한 문제는 배임죄의 존재 이유이다.

발표자를 위시해서 적지 않은 분들은 배임죄로 인한 기업활동의 제약, 그리고 이에 따른 부정적 부수효과를 지적하고 배임죄를 비판한다.

하지만 많은 세상의 현상들처럼 법 역시 내생적으로 태어나고 사라진다는 점, 그리고 어떤 법이나 제도이건 간에 부정적 측면만큼이나 기대하지 않은 긍정적 부수효과 또는 파생효과도 있음을 동시에 생각할 필요가 있다.

기업가와 투자자가 투자에 대한 계약을 체결할 때, 투자자는 기업가가 자신을 배신하지 않고 기업활동을 위해 최선의 노력을 해서 투자에 대한 이득을 많이 거두어주기를 기대한다. 하지만 기업가의 “선의”를 장담할 수 없기 때문에 투자자는 계약 단계에서 이것을 통제하고자 하는데, 이것을 가능하게 하는 계약을 체결하는 것은 많은 비용이 들 수 있으며, 궁극적으로는 계약의 어려움 때문에 원활한 투자가 이루어지지 못할 수 있다.

배임죄라는 법률을 통해 국가라는 제3자가 투자자와 기업가 간의 계약에 ‘개입’을 하는 것은 소위 “commitment” 문제를 해결해줌으로써 계약을 촉진하는 역할을 해줄 수 있다. 즉 투자자는 기업가가 하지 않았으면 하고 기대하는 많은 행동들이 법에 의해 원천적으로 차단될 경우 더 많은 투자를 할 의향이 생긴다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기업가 입장에서도 배임죄의 존재는 투자자들을 설득하는 좋은 도구일 수 있다. 절대로 하지 않는다고 아무리 각서를 써도 투자자가 믿지 않을 부분을 법이 해결해 주기 때문이다. 이것이 바로 배임죄라는 법이 생겨난 이유에 대한 내생적 설명 혹은 가설이라고 할 수 있다.

결국 배임죄를 폐지해야 한다는 주장은 1) 투자와 관련된 가장 본질적인 문제를 당사자간 계약만으로 해결해야 하는 세상, 그리고 2) 국가라는 제3자가 법을 통해 commitment를 credible하게 만들어주는 세상, 이 둘 가운데 전자가 후자보다 더 낫다 (즉 보다 효율적이다)는 주장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저는 이러한 주장에 쉽게 동의하기 어렵다.

결론적으로, 본 논평자는 현재 우리나라의 배임 관련 법조항 그리고 이것의 적용에는 자의적인 측면이 많이 있으며 개선의 여지가 많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발표자의 논지처럼 계열사 지원이 배임죄에 해당하지 않는다거나, 배임죄를 두는 것보다 폐지하는 것이 낫다는 주장은 동의하지 않는다.

필자 생각에 우리나라에서 배임죄를 가장 잘못 적용한 대표적인 사례는 사실 이 발표문에 나와 있지 않으며, 이 점은 매우 아쉽다. 그 경우는 바로 KBS 정연주 사장 해임 사건입니다. 법원의 건의를 받아들여 국세청과 법원에서 조정을 한 것을 배임으로 기소한 것은 국가권력을 정치적으로 남용한 최악의 사례이며, 이 사건이 우리나라 공직사회에 미친 악영향은 이루 말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이 글은 자유경제원-미디어펜 공동주최로 23일 개최된 <업무상 배임, 어떻게 볼 것인가> 토론회에서 김두얼 명지대 경제학과 교수의 토론문을 토대로 한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