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거일 "징병제는 '자유' 침해...지원병 늘리고 용병도입해야'

   
▲ 복거일 소설가, 문화미래포럼 대표
이 글은 김진항 장군의 <군대의 진화: 모병제냐 징병제냐>를 읽고서 쓴 짧은 소회다. (아쉽게도, 또 한 분의 발표자인 조갑제 선생님의 글을 아직 받지 못했다.)
 

김 장군은 이번에 모병제로 전환하자는 주장이 나온 상황을 먼저 살펴야 한다고 지적한다. 실제로 모병제는 병영에서 끊임없이 터져 나오는 갖가지 문제들을 단숨에 풀 수 있는 방안으로 거론되었다. 징병제의 본질적이거나 실제적 문제들에서 모병제로의 전환이 거론된 것이 아니다.
 

총기 사고나 후임병 학대는 특수한 조직인 병영에서 나오는 문제들로 뿌리가 여럿이고 깊다. 혈기 왕성한 젊은이들을 한데 모아놓고 힘들고 위험하고 단조로운 일들을 오랫동안 강제로 시키면, 갖가지 문제들이 나오고 사고들이 터질 수밖에 없다. 특히 병영은 서열을 중시하는 조직이므로, 구성원이 ‘쪼는 순서(pecking order)’를 정하는 과정에 늘 참여하게 되고 신참들에 대한 가혹한 길들이기(hazing)가 보편적이다.
 

군대는 바깥 사회와 완전히 격리된 섬이 아니다. 인적 자원, 물적 자원, 그리고 정보를 바깥 사회로부터 공급받는다. 당연히, 바깥 사회의 빠르고 큰 변화들에 실시간으로 영향을 받는다. 우리 사회는 아주 빠르게 자유화가 되고 모든 권위들이 약화되어 간다. 그러한 사회에서 자라난 젊은이들이 갑자기 군대처럼 더할 나위 없이 권위주의적인 조직에 적응하기는 힘들다.
 

따라서 지원병들로 이루어진 군대에서 그런 문제들이 크게 줄어들리라고 기대하기는 어렵다. 설령 줄어든다 하더라도, 충원 방식을 갑자기 바꾸는 일은 워낙 큰 사업이라서, 그런 고려사항만으로 시작할 일은 아니다. 직업 군인으로서 오랫동안 복무하면서 큰 부대들을 지휘한 경험을 지닌 김 장군의 글은 모병제로의 전환이 얼마나 크고 어려운 사업인가 잘 일깨워 준다.

사정이 그러하므로, 병영 문제들을 풀기 위한 방안으로 모병제로 전환하는 것은 현실적 제안이기 어렵다. 무엇보다도, 그렇게 방대한 사업을 추진할 만한 정치적 의지를 시민들이 만들어낼 수 없다. 그러나 그런 사정이 모병제로의 전환을 미루어야 한다는 주장으로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다. 세상이 진화하면, 군대도 진화해야 한다.
 

무엇보다도, 징집은 우리 사회의 구성원리인 자유주의를 본질적으로 거스른다. 세상엔 군대가 성격에 맞는 사람들도 있지만, 도저히 군대에 적응할 수 없는 사람들도 있다. 그런 사람들을 강제로 병영에 가두고 힘들고 위험한 일들을 지루하게 되풀이하도록 하는 일이 어떻게 자유주의의 이상에 맞겠는가?
 

모병제를 시행해서 지원병들로 이루어진 군대는 현대 자유주의 사회에 여러 모로 잘 어울리고 효율적이다. 베트남 전쟁에서 패배해서 위기에 처한 미군을 구한 것이 모병제라는 사실을 우리는 새겨야 한다. 그 방안을 제시한 사람이 자유주의 경제학자 밀튼 프리드먼이라는 사실도 함께.
 

   
▲ 총기 사고나 후임병 학대 등 병영사고가 끊이지 않고 있다. 우리사회도 이제는 '자유'에 반하는 징병제도를 모병제로 바꾸는 것을 심각하게 고려해 보아야 할 시점이다.
따라서 가장 합리적인 방안은 우리 군대에서 지원병들이 차지하는 몫을 꾸준히 늘리는 것이다. 이미 장교와 부사관은 전적으로 그렇게 충원되고 특수병과의 요원들도 점점 더 그렇게 충원된다. 정교한 장비들을 다루는 임무들이 늘어나서 숙련된 기술을 지닌 병사들이 점점 많이 필요하다는 사실은 지원병들의 비율이 늘어나리라는 것을 가리킨다.
 

모병제를 어렵게 하는 요인들 가운데 점점 중요해지리라고 예상되는 것은 가용 인력의 부족이다. 이 어려움을 극복하는 방안들 가운데 덜 중요하지만 요긴한 것 하나는 용병의 도입이다.
 

용병에 대한 우리 사회의 인식은 무척 부정적이다. 거의 모든 사람들은 용병을 돈밖에 모르는 사람으로 여긴다. 그래서 ‘애국심에서 무기를 든 군인들이 국경을 지켜야지, 어떻게 돈을 받고 싸우는 사람들에게 나라의 안보를 맡길 수 있는가?’라고 생각한다. 하긴 용병을 높이는 사회들은 동서고금을 가리지 않고 많지 않았다. 그러나 그런 부정적 인식은 용병에 대한 무지에서 나온 부분이 크다.
 

크세노폰의 고전 <북방으로의 행군(Anabasis)>에 나온 유명한 ‘1만 명의 그리스인 용병들’부터 현대 프랑스의 외인부대에 이르기까지 역사는 용병들이 잘 싸울 뿐 아니라 신의도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따지고 보면, 강대한 로마군을 거듭 깨뜨린 하니발의 군대는 거의 다 용병들로 이루어졌었다.
 

인류 문명이 하나로 통합되고 인적 교류가 점점 늘어나는 현대에서 외국인들을 노동자들로 받아들이는 일은 점점 중요해진다. 시민들이 기피하는 더럽고, 단조롭고, 위험한 일들을 뒤진 나라들에서 온 외국인 노동자들이 대신 하는 일은 이미 우리 사회에서도 관행으로 자리잡았다. 더럽고, 단조롭고, 위험하기로야 군대보다 더한 직업이 있겠는가? /복거일 소설가, 문화미래포럼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