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황교안 법무부 장관이 경제살리기 차원에서 현재 구속·수감중인 대기업 총수들에 대한 가석방을 시사한 가운데 그의 발언을 두고 재계의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국내외적으로 장기 경기침체의 우려가 나오고 있는 상황에서 국민 여론 역시 기업에 대한 지원을 통해 일자리 창출과 투자 등을 늘려 경제 활성화를 이뤄 내야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시점에서 지난 24일 황교안 장관은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구속된 대기업 총수들이 경제살리기에 헌신적인 노력을 한다면 기회를 줄 수도 있다”고 말해 관심이 쏠리고 있다.
그는 “기업인이라고 가석방이 안 되는 건 아니다”면서 “잘못한 기업인도 여건이 조성되고 국민여론이 형성된다면 다시 기회를 줄 수 있다”고 덧붙혔다.
또 “지금은 경제에 국민적 관심이 많으니 경제살리기에 도움이 되는 케이스라면 일부러 (기업인들의 사면이나 가석방을) 차단할 필요는 없지 않나”라며 “지금은 그런 검토를 심도 있게 할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다.
최경환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도 황교안 장관의 대기업 총수 가석방 가능성 발언에 힘을 보태면서 재계에 화색이 깃든 모양새다.
최경환 부총리는 25일 정부세종청사 기자실을 방문한 자리에서 “기업인이라고 지나치게 엄하게 법 집행을 하는 것은 경제살리기 관점에서 도움이 안된다고 생각한다”며 전날 황교안 법무부 장관의 기업인 사면 관련 발언에 동의한다는 뜻을 밝혔다.
최경환 부총리는 “기업인들도 죄를 지었으면 처벌을 받는 것은 당연하다”면서 “(기업의) 투자 지연 때문에 경제가 회복되지 않고 있는 데 법을 집행하는 법무장관이 그런 지적을 해준 것에 대해 전적으로 공감한다”고 말했다.
경영공백 SK·CJ 등 선처 가능성에 촉각
장기불황 예고 속 기업 '기 살리기' 탄력
황 장관의 이번 발언이 구속된 일부 기업 총수에 대한 선처 가능성을 언급한 것으로 확산되면서 사실상 경영공백을 이어가고 있는 해당 대기업은 이에 화색을 보이고 있는 상황이다.
만약 기업인에 대한 가석방이나 사면·복권이 이뤄질 경우 현재 형량이 확정돼 구속 수감 중인 최태원 SK그룹 회장, 최재원 SK그룹 부회장, 구본상 LIG넥스원 부회장, 구본엽 전 LIG건설 부사장 등이 대상에 오를 수 있을 것으로 점쳐지고 있다.
또 2심에서 징역 3년형을 선고받고 대법원에 상고한 이재현 CJ그룹 회장을 비롯해 변론공판이 진행 중인 조석래 효성 회장, 보석 허가를 받아 병원에서 간 이식 수술을 기다리고 있는 이호진 태광그룹 회장, 복역 중 건강상의 이유로 형집행정지 결정을 받은 이 회장의 모친 태광그룹 이선애 전 상무 등이 물망에 오를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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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K그룹 최태원 회장과 동생 최재원 수석부회장 / 뉴시스 |
특히 재계는 오는 2017년 1월까지 교도소에서 수감생활을 해야 하는 최태원 SK그룹 회장에 대한 선처 가능성에 관심을 쏟고 있다.
최태원 회장은 동생 최재원 SK그룹 수석부회장 등과 공모해 2008년 10~11월 SK텔레콤 등 계열사로부터 베넥스인베스트먼트 펀드 출자금 선지급금 명목으로 465억원을 빼돌린 혐의 등으로 기소돼 1·2심에서 징역 4년을 선고받고 현재 수감중이다.
지난 2월부터 시작된 최태원 회장의 공백이 1년 8개월 넘게 이어지면서 SK그룹의 신성장 사업을 이끌 리더십 부재가 부정적인 영향을 주고 있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총수의 공백이 당장 기업의 실적에 큰 영향을 미치지는 않지만 중장기적인 투자 결정이나 전략적 방향 등을 결정하는 데 있어서는 그룹 총수의 부재가 큰 타격으로 작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SK그룹은 올해 초 태양광전지 사업에서 철수한데 이어 최근 차세대 연료전지 사업도 중단했다. 태양광전지와 연료전지 사업이 수익을 내는 등 본 궤도에 오르려면 대규모 투자가 이뤄져야 하는데, 이를 극복하기 어렵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특히 최 회장의 부재가 장기간 이어지면서 신성장 사업에 대한 대규모 투자를 단행하지 못한 것이 큰 영향을 미쳤다는 분석이다.
앞서 SK그룹은 지난 2010년 3대 신성장 사업에 향후 10년간 17조5000억원을 투자한다는 계획을 발표한 바 있다.
SK그룹의 3대 신성장 사업은 신 에너지자원 확보, 스마트 환경 구축(Environment), 산업혁신기술 개발(Enabler)이다. 미래 에너지 사업은 2차전지, 태양광, 바이오연료로 구성되며, 이 분야에 향후 10년간 4조5000억원을 투자하기로 했다.
SK그룹 측은 “3대 신성장 사업을 육성하기 위해서는 대규모 투자를 단행해야 그 결실을 볼 수 있지만, 현재 리더십 부재로 인해 이 같은 컨트롤 타워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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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재현 CJ그룹 회장이 지난달 12일 오후 서초동 서울고등법원에서 열린 항소심 선고공판에서 실형 3년을 선고 받고 나오고 있다. / 뉴시스 |
CJ그룹의 경우 최악의 건강상태를 보이며 시한부 인생에 가까운 삶을 살고 있는 이재현 회장을 살리기 위해 그룹 전체가 총력을 다하고 있다.
최근 결심 공판에서 나와 “살고 싶다”고 발언한 이재현 회장은 재판부에 선처를 호소했으나 받아지지 않은 상황이이서 이번 황교안 장관의 발언에 더욱 큰 기대를 하고 있는 상황이다.
CJ그룹은 이번 황교안 장관의 발언에 대해 매우 반가운 입장을 보이면서 “그동안 서비스나 문화콘텐츠 사업에서 일자리 창출이나 재고용 등을 위해 노력한 만큼 앞으로도 이런 기조를 이어갈 것”이라고 밝혔다.
실제로 CJ룹은 이미 올해 상반기 중단되거나 지연된 투자액만 약 4800억원에 달한다. 당초 계획했던 투자액 1조3700억원 가운데 약 35%에 해당하는 규모다.
CJ그룹은 2010년 1조3200억원, 2011년 1조7000억원, 2012년 2조9000억원 등 해마다 투자 규모를 늘려왔다. 지난해 이재현 회장의 공백 사태가 빚어지면서 투자는 계획대비 20% 미달한 2조6000억원에 머물렀다.
재계 한 관계자는 “경제를 위해서 죄를 지은 사람을 무조건 풀어줘야 한다는 말은 맞지 않다”면서도 “법의 테두리 안에서 관용을 베푼다면 경제가 어려운 상황에서 기업들이 기업가 정신을 고취해 힘든 경제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힘쓸 것”이라고 진단했다.
한편 정부의 경제 살리기 정책에 기업들의 협조를 유도하는 동시에 기업인의 가석방이나 사면·복권에 대한 여론의 추이를 살피기 위한 목적이 있는 것 아니냐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이와 관련해 법무부는 가석방 등 법집행에 있어 ‘특혜 없는 공정한 법집행’ 기조에는 전혀 변함이 없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정부가 경제 살리기에 총력전을 펼치고 있는 만큼 기업인을 대상으로 하는 가석방이나 사면·복권에 대한 법무부의 후속 조치가 이뤄질 가능성은 배제할 수 없는 상황이다. [미디어펜=김세헌 기자]